농촌이야기

팔넷의 의미

큰가방 2003. 8. 10. 12:41
장마가 지나간 후 시작된 무더운 날씨는 오늘도 그칠줄을 모르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더위 속에서도 보성 차밭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성읍 봉산리 덕정마을 입구에서부터 늘어선 기나긴 차량의 행렬은 덕정마을에 우편물 배
달을 끝내고 다음마을로 이동할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어 제가 생각하기에는 무척이
나 답답한 마음인데 그러나 한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차들은 방향을 바꾸기도 쉽지 않는 상
황이어서 정말 죄송한 마음입니다.
보성읍 봉산리 노루목 마을로 들어가려는 제가 소형버스에게 잠시 길을 내어줄 것을 요청하
듯 손을 들자 제가 지나갈 길을 얼른 내어줍니다.
노루목 마을에서부터는 계속해서 농로 길을 이용하여 마을로 이동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
으나 봉산리 삼산 마을에서부터는 다시 도로를 이용하여 차밭으로 향하기 때문에 도로의 갓
길을 이용하여 차밭이 있는 다원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삼산마을을 조금 지나다 보니 아까 노루목 마을 앞에서 저에게 길을 내어 주었던 소
형버스를 다시 만났습니다.
제가 봉산리 우편물을 모두 배달하는 동안 약 3km밖에 전진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약2km 만 더가면 차밭입니다! 이제 고생은 거의 끝나갑니다! 수고하세요!”
라고 안내를 하고서는 계속해서 다원(茶園)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다원의 우편물을 배달을 끝내고 돌아서는 저의 발길은 그토록 가벼울 수가 없습니
다.
그래도 반대편 차선은 그렇게 막히지 않아서 쉽게 다른 마을로 이동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
다.
보성읍 옥평리 세동 마을로 접어들면서 “아! 오늘의 고생은 이것으로 끝이다!” 하는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깊은 심호흡을 합니다.
옥평리 세동마을을 첫 번째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집 앞에 있는 마을의 정자에서는 할머니
들께서 모여 앉아 무슨 즐거운 이야기를 하시는지 마을이 시끄러울 정도로 웃으시다가 저를
보시더니 부르십니다.
“아저씨 이리 좀 와봐!” 그래서 저도 모르게 “예 잠시만요!” 하고서는 첫 번째 집의 우편물
을 우편 수취함에 넣어두고는 할머니들이 계시는 정자 옆으로 다가가자
“아저씨 아직 점심 안자셨제? 여그 밀가루 죽이 있응께 한그럭 잡숫고 가 잉!” 하십니다.
그때서야 시계를 보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2시가 다 되어갑니다.
사실 다원에도 식당이 있기는 합니다 만 식당이 그렇게 대형식당이 아니어서 몰려드는 관광
객들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미흡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차밭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가 힘이 들어 보성읍내의 식당에서 식
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밀가루 죽을 먹고 가라는데 사양지심 손해지심이라고 했던가요?.
“예 한 그릇 주세요!” 하고서 정자에 걸터앉았는데 “반찬이 읍어서 으짜까!” 하십니다.
“여름에 반찬은 무슨 반찬이 있답니까? 반찬 걱정은 마시고 그냥 한 그릇 주시면 되요!”
하였더니 김치와 양념한 깻잎과 함께 죽을 한 그릇 담아주시며
“거시기 팥이랑 많이 넣갖고 맛있게 썼응께 으디 한번 자셔봐!” 하십니다.
사실 여름에는 풋고추와 된장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은 뚝딱 해치우는 저의 성격에 김치와 깻
잎은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그래도 맛있는 반찬거리여서 정말 맛있게 죽을 먹고 있는데
저의 옆에 앉아 계신 할머니께서 조그만 통에서 무언가를 수저로 떠내어 커피 잔에 나누어 담습
니다.
그 순간 “무엇을 나누어 담으시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래서 물었지요.
“할머니 지금 무엇하고 계세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 저를 보고 빙그레 웃으시더니
“지금 커피 타고 있어 젊은것들은 가만히 있고 나보고 자꼬 커피를 타라고 그래싼께 성가시
당께!”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젊은것들이란 제가 보기에는 아무리 보아도 칠십이 넘으신 할
머니들 이신데 젊은것들이라니 그래서 할머니께 “할머니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하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저의 말이 잘 안 들리시는지 “뭐시라고?” 하십니다.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시냐고요~오!” 하고 큰소리로 물었더니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아 올해 파렛이여!” 하시는 겁니다.
‘아니 파렛이라니? 파렛은 또 무슨 소린가?‘ 그래서 다시 한번 묻습니다.
“할머니 그게 아니고요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냐고요~오?” 하였더니 여전히 할머니께서는
“아! 금메 파렛이란께!” 하시는 겁니다.
그러자 옆에 계신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따 참말로 말도 징하게 못알아 묵네 파렛이 아니고 팔 넷 그랑께 올해 팔십 네 살이라
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든 네살을 팔 넷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파렛이라고 알아들었으니 핀잔을 받아도
마땅(?) 하겠지요?
그런데 왜 하필 나이를 가장 많이 드신 할머니께 커피를 타시라고 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래서
“할머니 왜 할머니가 커피를 타세요?” 하고 물었더니 옆에 계신 할머니께서
“저 노인은 다른 사람이 커피를 타 주문 맛이 없다고 안자셔 그랑께 당신이 직접 타서 자
셔” 하시는 겁니다.
‘아니 여든이 넘으신 노인이 커피를 얼마나 세련되게 드시기에 당신이 직접 커피를 타서 드
시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할머니 왜 다른 사람이 커피를 타드리면 안 드세요?” 하고 물었더니
“먼자 참에 읍에 으디 다방 애기가 와갖고 커피를 타준디 커피가 으째 맛이 한나도 읍데
그래서 나는 그냥 커피 사다가 집이서 타묵는디 오늘은 작것들이 나한테 기연히 커피를
타라고 안 한다고 이따가 아저씨도 한잔 마셔봐 그래도 내가 커피 타서 주문 모다들 다 맛
있다고 그라드만!“ 하십니다.
여든 네 살이나 드신 할머니께서 타주시는 커피의 맛은 과연 어떨까?
맛있는 죽을 두 그릇을 거뜬히 비우고 나서 할머니께서 저에게 마시라고 놓아둔 커피 잔을
한 손에 들고 커피를 한 모금 입안에 삼키자 그때서야 왜 할머니께 커피를 타시라고 한 이
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제가 시골 마을로 우편물을 배달하다 보면 할머니들께서 가끔씩 커피를 한잔 타 주시
기도합니다.
그러나 커피 맛은 솔직히 말해서 영 그렇거든요.
그러나 오늘 마셔본 커피는 다른 어느 때 마셔본 커피 중에 제일 맛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다 누가 할머니 커피 타라고 스카우트 해 가면 어쩌지?
그럼 다음에 세동마을에서 커피는 누가 타주지? 이건 비밀로 해야하는데 괜히 이야기 한 것
인가?
참 갈등생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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