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야기

제기(祭器)로 변한 과자

큰가방 2003. 8. 24. 15:05
입추가 지난 날씨인데도 여전히 태양은 뜨겁기만 합니다.
그러나 지나가는 바람은 이제 가을의 향취를 느낄 수 있을 상쾌한 바람으로 변하여 불어오
고 있습니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
그러나 금년은 자주 비가 내려서 고추 같은 밭작물의 수확이 많이 감소될 것 같다는 이야기
가 서민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들판의 벼들은 아직 푸르기만 한데 추석은 서서히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어 금년 추석은
아무래도 힘든 추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저는 전남 보성읍 옥평리 새터마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옥평리 새터마을은 새로 터를 잡았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이름입니다.
옛날에는 이 마을도 30호가 다 되는 제법 큰 마을었습니다 만 이제는 이 마을도 호수(戶數)
모두 합쳐 15여 호 밖에 되지 않은 작은 마을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읍내에는 아파트 같은 건물이 자꾸 생겨나는 대신에 시골마을에는 자꾸 인구가 줄어
들고 그러다 보니 마을의 규모도 자꾸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오늘도 언제나 그랬듯이 이 집 저 집의 우편물을 우편 수취함에 투함을 하면서 마을의 골
목길을 지나가다 이 마을 이매자 할머니 댁의 등기우편물을 배달하려고 할머니 댁의 마당
으로 들어서는 순간 할머니께서는 유리창 문 사이에서 떼어낸 방충망을 들고서 땀을 뻘뻘
흘리시며 무엇인가를 하고 계시다 저를 보시더니 무척 반기십니다.
“아저씨 마침 잘 왔네 이리 와서 요것 좀 찡게 줘 봐!” 하시더니 방충망을 저에게 내미십
니다.
“할머니 왜 방충망을 뜯으셨어요?” 하는 저의 물음에 할머니께서는 조금 쑥스러우신 지
“아니 금메 요것이 하다 디루와서 쪼금 딱어불라고 내가 뜯응게는 금방 뜯어지데 그란디
만날 마칠라고 그라니 안 들어간당께 으째서 안들어가까?“ 하시며 저에게 묻습니다.
그래서 마루에 있는 들보를 보니 들보가 약간 밑으로 쳐져있는 겁니다.
“할머니 여기 들보가 약간 쳐져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안 들어가지요! 혹시 다음에 뜯
어 내서 맞추시려면 이쪽 귀퉁이 있지요? 여기에다 맞추시고 넣으시면 되요!”
하고서는 제가 방충망을 귀퉁이에 맞추어 집어넣자 방충망은 그냥 손쉽게 들어가는 겁니다.
“와따 대차 젊은 사람이라 기술이 좋기는 좋구 만 아까 내가 널라고 할때는 만날 안들어가
서 죽을 욕을 봤는디 그랄지 알았으면 아저씨 올 때까지 기달리고 있으꺼인디 무담시 혼자
고생을 했당께!“ 하시며 빙긋이 웃으시는 겁니다.
“고생했는디 뭐 줄것이 읍어서 으짜까?” 하시며 서운해하시는 이매자 할머니를 뒤로하고 저
는 다음 마을로 또 다음 마을로 이동을 합니다.
그리고는 보성읍 우산리 내현마을로 접어듭니다.
내현마을 입구에 접어든 순간 내현마을에 사시는 안동심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안동심 할머니께서는 저를 보시자 마자 “아제 어저께 우리집이 소포 갖다놨제 잉!” 하시며
저에게 묻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제 과자 남겨두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할머니께서는
“과자는 뭔 과자여! 과자가 아니라 제기(祭器)드만!”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제 안동심 할머니 댁에 내용물이 과자라고 적혀진 조금은 큼직한 박스 하나가
소포로 도착되었던 겁니다.
그러나 우편물이 많은 관계로 한꺼번에 오토바이에 싣지를 못하고 우편물 배달이 끝이 난
후에 소포를 배달하려고 우체국에 놓아두고 나왔는데 안동심 할머니를 만난 겁니다.
그래서 할머니께 “할머니 혹시 이따 5시경 어디가세요?” 하고 물었더니 할머니께서는
“응! 나 으디 좀 나갔다 와야 된디 으째서 그래?” 하고 물으시는 겁니다.
“할머니께 소포가 하나 왔던데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우메 우리 집이 소포 올것이 읍는디 으서 소포가 왔으까 이상하네!” 하시기에
“저기 서울 박동근 씨가 누구 되세요?” 하고 물었더니 “우리 아들이여!” 하시는 겁니다.
“서울 아드님이 무슨 과자를 보내신 것 같던데!” 하는 저의 말에 할머니께서는
“뭔 소리도 읍었는디 뭣을 보내스까? 이상하네!” 하십니다.
그래서 “할머니 내용물에 과자라고 적혀있던데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그라문 과자고 뭐시고 사람 읍으문 그냥 방에다가 너나둬부러도 되야 누가 안 가지간께 꺽
정도 말고!” 하시며 저에게 소포를 방에다 넣어둘 것을 부탁하시기에
“할머니 그럼 저 내일 올 테니까요 과자 내 것 조금 남겨주셔야 해요!” 하고서 약속을 하였
거든요.
그런데 과자(菓子)가 아니고 제기(祭器)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의 생각에는 아마 우체국에서 소포를 접수할 때 우체국 창구 직원이 내용물이 무엇이냐
고 물었을 때 내용물이 제기인데도 과자라고 대답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창구직원은 별 의심 없이 내용물을 과자라고 전산에 입력하여 소포박스에 붙였을 것
이고 저는 그것이 사실인줄 알고 할머니께 과자라고 설명을 드렸고 그런데 할머니께서 내용
물을 확인하여 보니 박스 안에서 나온 것은 과자가 아니고 제기가 나왔고 그래서 저는 혹시
나 오늘 맛있는 과자를 맛 볼 수 있을까 하고 기대를 했으나 괜히 헛물만 들이 켰을 것이고
참!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더니 제 기대가 너무 컸을까요?
그럼 할머니께 과자는 언제 얻어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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