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 죽을 뻔했어!”
“아저씨~이!” “예! 왜? 그러세요? 할머니!” “인자 라면을 갖고 오면 어쩔 것이여? 내가 아저씨 기다리다 배가 고파 죽을 뻔했단 말이여~어!” 우리 민족 고유 명절인 설이 가까워지면서 매일 매일 집배원들이 배달해야 할 소포 우편물은 늘어만 갑니다. 멀리 객지에 나가있는 자녀들이 보내준 정성어린 선물을 시골마을 할아버지 할머니께 배달해 드리면“우리 애기가 이렇게 나를 생각한단께! 먼저는 이쁜 옷을 사서 보냈드만 이번에는 가죽장갑을 보냈네!”하시며 자녀가 보내 준 가죽장갑을 꺼내들고 자랑스럽게
저에게 내보이며 행복한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할머니 “이번에도 못 내려 오냐 어쩌냐? 이런 것 보내지 말고 한번 내려왔다 가지!”하시며 명절에도 자녀들이 찾아오지 못할까 하는 마음에 미리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 할아버지“애기들 키우고 살문 즈그들 묵고 살기도 힘든디 뭣하러 이런 것을 보냈을까? 나는 생각 안 해줘도 괜찮한디!”하시며 자녀가 보내준 선물을 받아들고 오히려 자녀를 걱정하시는 할머니도 계십니다. 저는 오늘도 평소보다 훨씬 많은 소포를 비롯한 다른 일반우편물을 배달하려고
저의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우편물을 차곡차곡 실을 수 있는 대로 가득 싣고 우체국 문을 나서기 전 사무실 직원에게 “오토바이에 싣지 못한 큰 소포는 차안에 놔두었으니까 이따 시간 나는 대로 천포에 있는 식당(食堂)으로 가져다 보관 시켜주게!”하는 부탁을 하고 우체국 문을 나섭니다. 그리고 천천히 시골마을을 향하여 달려가는 들판에는 오늘도 시골 아낙네들이 여기저기 모여 앉아 씨감자 파종하는 작업에 여념이 없습니다. “1월의 차가운 겨울 날씨에 봄 감자 씨를 파종하고 있다니!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 지금
봄 감자 씨를 파종하고 있다면 믿어줄까?”하는 생각을 하다 저 혼자“씩!”하는 웃음을 한번 웃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우편물을 배달하다 바라 본 시계는 어느덧 오후 1시 30분이 넘어서고 있습니다.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나? 안되겠다! 우선 점심 식사부터 하고 다시 우편물 배달을 해야겠다!”하고 제가 늘 다니던 단골 식당에 들어가자 어느새 사무실 직원 다녀갔는지 식당 한쪽에 제가 오토바이에 싣고 오지 못한 소포가 가득 쌓여있습니다. 그래서 식당 아주머니께 점심식사 준비를 하여 줄 것을 부탁하고
소포 표면에 적어진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기 시작합니다. “여보세요! 저 집배원입니다. 어르신께 서울에서 소포가 하나왔는데 오늘 배달할 소포가 많아서 아무래도 오후 3시가 넘어야 소포를 배달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 늦게 배달해 드려도 괜찮겠어요?” “할머니! 저 집배원이에요. 오늘 할머니 댁에 소포가 하나 왔는데 아무래도 제가 조금 늦을 것 같아요. 소포를 조금 늦게 갖다드려도 괜찮겠어요?” “와따~아! 늦게 갖고 오면 으쨌간디!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갖고 와! 알았제~에?”하시는데
전남 보성 회천면 화죽리 화당마을 김영순 할머니 댁에 전화를 하였는데 아무리 신호가 가도 전화 받을 기미가 없습니다. “이상하다? 할머니께서 어디 모실을 가셨나? 왜? 전화를 받지 않지? 할머니께서 소포를 무척 기다리고 계실 텐데!”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점심식사가 준비되는 바람에 저는 점심식사를 끝마치고 할머니께 “오늘 소포 배달이 조금 늦겠으니 이해하세요!”하고 전화를 해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깜박 잊고 서둘러 우편물 배달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우편물 배달이 모두 끝나자 이번에는
식당에 보관되어 있던 소포를 배달하기 위하여 식당으로 달려갑니다. “아저씨! 소포 때문에 정말 고생이 많으시네요! 요즘 같으면 명절이 없으면 좋겠지요?” “명절이래야 설과 추석 두 번 있는데 이렇게 바쁠 때도 있어야지요! 그래야 명절 기분이 나는 것 아니겠어요?” “아저씨 말씀을 들어보니 그렇기는 한데 너무 고생이 많으시는 것 같아서요.” “그래도 소포를 배달해드리면 모두들 반갑게 생각하시니까 기분이 좋거든요.” “정말 그러시겠네요! 아저씨! 수고하세요!”하시는 식당 아주머니의 전송을 받으며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소포를 하나 가득 싣고 배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화당 마을 김영순 할머니께 도착한 라면 박스보다 조금 더 큰 소포를 들고 할머니 댁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할머니! 소포 왔네요! 어서 나와 보세요!”하였더니“아저씨~이!” “예! 왜? 그러세요? 할머니!” “인자 라면을 갖고 오면 어쩔 것이여? 내가 아저씨 기다리다 배가 고파 죽을 뻔했단 말이여~어!”하고 할머니께서 방문을 열자마자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할머니! 무슨 라면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제가 라면을 가지고 온다는 이야기는
안 한 것 같은데요!” “내가 요새 통 밥맛이 없고 그래서 우리 아들한테 라면을 사서 보내라고 했드니 오늘이나 도착한다고 그라드만 그래서 라면이 오면 끓여 먹을 라고 아저씨가 이제나 오까? 저제나 오까? 하고 기다리고 있는디 아무리 기다려도 와야 말이제~에!” “할머니! 그런데 이 박스는 라면 박스가 아닌데 아드님이 무슨 라면을 보냈다는 거예요?” “와따~아! 아들한테 라면을 사서 보내라면 아저씨 같으면 라면만 사서 보내것어? 다른 것도 사서 보내제~에!” “그렇겠네요! 그런데 아까 할머니께 소포 배달이 늦겠다고
전화를 했는데 아무리 신호가 가도 전화를 받지 않으시더라고요. 어디 다녀오셨어요?” “아니! 암디도(아무데도) 안가고 집에만 있었는디!” “그랬어요? 이상하다? 그런데 왜? 전화를 안받으셨어요?” “전화? 그라고 본께 아까 내가 밖에 나가서 아저씨를 기달리고 섰는디 전화 벨소리가 나기는 난 것 같드만!”그래서 저는 조금 어리광스럽게“할머니~이! 요즘 설 명절 대목이잖아요! 그래서 배달 할 소포가 무지 많아 소포 배달이 조금 늦겠다고 할머니께 전화를 했는데 아무리 신호가 가도 전화를 안받으시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제가 보고 싶으셨어요?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게!” “아니여! 내가 아저씨 보고 싶다고 했간디?” “그런데 밖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어요?” “라면이 오면 끓여 먹을라고 기다리고 있었단께!”하시며 할머니께서 박스 안에 들어있는 소포의 내용물을 꺼내더니 사탕 몇 개를 집어 저에게 주시며 “고생한 양반한테 화를 내서 미안해! 내가 아저씨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닌께 아저씨가 이해를 해 잉!”하고 빙그레 웃습니다. “할머니! 제가 고의로 소포를 늦게 배달해 드린 것은 아니니까 이해하세요! 아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