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부부싸움

큰가방 2006. 5. 27. 19:18
 

부부싸움


저는 오늘도 늘 저와 함께하는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사랑과 행복이 가득 담긴 우편물을 싣고 가정으로 배달하기 위하여 우체국을 출발하여 시골마을을 향하여 천천히 달리기 시작합니다. 시골마을로 향하는 길은 언제 달려도 늘 정다운 모습입니다. 길가의 가로수들은 언제 피어났는지 모를 하얀 꽃을 방울방울 매달고 지나가는 바람에 이리저리 한들거리며 활짝 웃는 얼굴로 저를 반겨주고 있는데 어디선가 향기로운 꽃 냄새가 저의 코를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흠! 이게 무슨 꽃향기일까? 아주 오랜만에 맡아보는 꽃향기인데!”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산비탈 아래 수줍은 듯 덩어리진 하얀 꽃을 매달고 서있는 아카시아 꽃이었습니다. 아카시아 꽃! 저에게 아카시아 꽃은 특별한 인연이 있던 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살림살이가 어렵고 가난했던 1960년대 저의 어린시절 그때는 언제나 5월이면 춘궁기라 하여 먹을 것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아카시아 꽃이 피어나면 아카시아 꽃을 한 움큼 따서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 향긋한 꽃향기와 함께 달착지근한 물이 나와 배고픔을 달래주는 꽃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때는 아카시아 나무는 필요 없는


나무라고 하여 모두 베어버리는 바람에 아카시아 나무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는데 아직도 하얗게 피어있는 아카시아 꽃을 바라보다“왜? 이렇게 갑자기 아카시아 꽃이 반가운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달려온 곳은 전남 보성 회천면 군농리 농소마을입니다. 제가 농소마을 이집에서 저 집으로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마을 중앙에 있는 정자 앞을 지나치려고 할 때 초여름 같은 조금 더운 날씨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정자에서 영감님 세 분이 모여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나누시는지 “껄! 껄! 껄!”하며 웃음을 웃다


그중 한분께서 저를 보더니 “어이! 어이! 이리 잔 와봐!”하며 저를 부르십니다. “어르신! 무슨 일이신데요?” “다름이 아니고 세금 잔 받아다 우체국에 갖다 바쳐줘!” “그게 무슨 세금인데요?” “뭣은 뭣이 것는가? 전화세하고 유선방송 세금이라디야 뭣이라디야!” “예~에! 그러세요. 얼마던가요?” “전부 합쳐서 만 8천3백 원이데! 여기 종이돈이 만 5천원이고 동전이 3천 3백원이데 그려 내가 계산해 봤는디 딱 맞드만!”하시며 저에게 만 원짜리 지폐 한 장과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 그리고 동전을 건네주시는데


동전을 막 받으려는 순간 동전을 싼 신문 조각이 찢어지면서 동전이 그만 땅바닥으로 쏟아져 버립니다. 그러자 옆에 계신 영감님께서 “이 사람아! 심바람(심부름)을 시킬라문 돈이나 제대로 줘야지 그라고 땅바닥에 쏟아 부러야 쓰것는가? 엉!”하시며 “껄! 껄! 껄!”웃으십니다. 그러자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신 영감님 “내가 실수를 했는갑네! 미안해서 으짜까?”하고 얼른 정자에서 내려와 동전을 줍기 시작합니다. “어르신! 괜찮아요! 제가 실수로 돈을 잘못 받아 그런 것인데요,”하고 땅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줍고 있는데


그때 정자 바로 앞집에서 나지막한 말씨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투닥 투닥’다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말소리가 커지기 시작합니다. “아니! 내가 한대로 가만 좀 보고 있으문 안 되야~아? 어~엉?” “그것이 일이라고 하고 있소? 아~ 이라고 하문 훨씬 쉬우껏인디 왜? 그라고 당신은 당신 고집만 세우고 야단이요? 그래사 쓰것소? 이~잉?” “아니 여자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많기는 남자가 하고 있으문 카만이 보고 있으란 말이여! 알았어?” “아이고! 남자들은 으째 저라고 여자들 말을 안 들을라고 해 싸까?


여자 말 잘 들으문 누가 잡아간다고 합디여?”하고 말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데 정자에 앉아 계신 영감님 한 분께서 “우메! 저 사람들 싸우는 소리가 조깐(조금) 있으문 서로 뺨 때리게 생겼네!”하며 빙긋이 웃으십니다. “어르신! 옛말에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는데 싸움은 말리셔야지 무엇이 그리 좋아 그렇게 싱글벙글하고 계세요?”하였더니“이 사람아! 부부싸움은 원래 안 말리는 법이여! 알았어?”하십니다. “아니? 왜? 부부싸움은 안 말리는 거예요?” “옛날부터 부부싸움을 하려면 옷을 모두 홀랑 벗고


싸우는 법이거든 그래서 부부싸움은 말리지 않는 거여! 알았어?” “아니 부부싸움을 하는데 왜? 옷을 모두 벗어요? 화가 나서 부부싸움 하는데 옷 벗을 사이가 어디 있어요?” “젊었을 때는 부부싸움을 하다 보면 몸에서 열이 막 나거든 그러다 보면 덥고 그러니까 옷을 벗게 되어있어! 그래서 옷을 홀랑 벗고 부부싸움을 하게 되거든 그러니까 누가 들어가서 싸움을 말리고 싶어도 옷을 모두 벗고 있는데 어떻게 들어가 싸움을 말리겠는가? 그래서 부부싸움은 말리지 못하는 것이여! 알았어?” “어르신 그런데 저 앞집 영감님은 지금 옷을 벗고 싸우는 것 같지 않는데 어서 가서 말리시지 그러세요?”


“걱정하지 말어! 조금 있으면 금방 조용해져!” “아니?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자네도 생각해 보소! 젊었을 때 부부싸움은 젊은 혈기로 서로지지 않으려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부부싸움을 하거든 그래서 살림살이도 때려 부수고 치고 박고 싸우고 그런데 나이를 먹어보게 그런 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져 그리고 부부싸움해서 이기면 뭣하고 지면 뭣하겠는가? 그저 큰소리 몇 번 지르다 안 되겠다! 싶으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말거든 그래서 부부싸움도 젊었을 때 하는 것이지 나이 먹으면 금방 끝나는 것이 부부싸움이여!”


“정말 그렇기는 하겠네요! 그런데 어르신은 부부싸움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이 사람아! 부부싸움에 대해서 내가 잘 아는 것이 뭣이 있어! 그저 내가 젊었을 때 경험으로 봐서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 제~에! 저 사람들도 인자 부부싸움 끝났을 거여!”하시자마자 앞집에서는 금세 싸우는 소리가 멎고 조용해지더니 지금까지 부부싸움을 하셨던 영감님께서 대문을 열고 나오더니 동전을 줍고 있는 저에게“아니? 자네는 편지 배달은 안하고 땅에서 뭣 찾고 있는가? 뭔 맛난 것 떨어졌는가?”하고 물으십니다.

 

*전남 보성 회천면 회령리에 자리 잡고 있는 녹차 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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