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우메! 으째사 쓰까?"

큰가방 2006. 6. 22. 22:05
“우메! 으째사 쓰까?”


6월이 시작되면서 찾아온 초여름 날씨는 어느새 무더운 한 여름을 향하여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6월 초순의 무더운 날씨. 그러나 제가 저의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우편물을 가득 싣고 우체국 문을 출발하자 어느새 바다에서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제가 전남 보성 회천면 면소재지 율포리 우편물을 배달하는 날이기 때문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율포리의 상가 우편물부터 천천히 배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율포리 샛터 마을로 막 들어선 순간 누군가 저의 뒤에서 “아저씨~이!”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 이상하다! 내가 잘못 들었나!”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보는 순간 “에~말이요! 우체부 아저씨! 나 잔 보고가~아!”하며 할머니 한 분이 좁은 골목에서 급하게 뛰어나오십니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거시기 다른 것이 아니고 이리 와서 이것 잔 봐주고 가씨요!” “무엇을 봐달라는 말씀이세요?” “거가 잔 있어봐 잉! 내가 금방 갖고 나오께!” “무엇을 가지고 나오시는데요?” “금메! 금방 갖고 나온단께!”하고 좁은 골목길을 통하여 집으로 들어가신


할머니께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실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할머니 뭐하고 계세요? 저 지금 바쁜데!”좁은 골목길에서 할머니를 기다리다 못한 제가 잠시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할머니 댁 마당으로 들어가 할머니에게 물었더니 “내가 금방 여그다 놔 뒀는디 이상하게 아무리 찾아도 없네!” “그게 무엇인데요?” “거시기 핸드퐁이라디야 뭣이라디야! 손에 갖고 댕김서 전화하는 전화기 안 있어? 그것이 없단께!” “휴대전화 말씀이세요?” “잉! 그것이 첨에는 전화가 오문 이쁜 색시가 나와서 ‘할머니! 전화 받으씨요!’하다가


그래도 전화를 안 받으문 노래가 나오고 그란디 요새는 이상하게‘들 들 들’소리만 나고 말이 안 나와 그래서 아저씨 한테 쪼간 보여 볼라고 그란디 이상하게 전화가 으디 가불고 안보이네! 으짜까? 아저씨 바쁜디!” “그럼 천천히 찾아보세요!” “그란디 전화가 으디를  가부렇어! 이상하네~에! 금방 여가 있었는디! 주방에 놔 뒀다냐?”하고 안방에서 주방으로 건너가시는 할머니를 바라보다 제가 마루에 막 걸터앉으려는 순간 마루에 놓아둔 일반 전화기 옆 기둥에 휴대전화기 한대가 기다란 목줄에 연결된 채 달랑거리며 걸려있습니다.


“할머니! 혹시 여기 기둥에 걸려있는 전화기 찾으시는 것 아닌가요?” “엉? 거가 전화가 있어?”하시며 얼른 주방에서 나오신 할머니 “아이고! 내가 이라고 정신이 없당께! 그란디 으째서 전화가‘들 들 들’소리만 나고 말이 안나와?” “그래서 전화를 못하셨어요?” “아니~이! 그것이 아니고 말은 잘 들린디 첨에 우리 아들이 전화를 보냈을 때는 전화가 오문 이쁜 색시가 ‘할머니! 전화 받으씨요! 전화 받으씨요!’하다가 전화를 안 받으문 노래 소리가 나오고 그랬는디 요새 갑자기 이상하게 그런 소리는 안나고


그냥 ‘들 들 들’ 소리만 난단께! 으째사 쓰까? 고장 나부렇으문!” “할머니 그건 고장이 아니고 전화기를 진동으로 바꾸어 놓아서 그래요! 그리고 이쪽에 있는 해제 버튼을 누르면 종전과 같이 예쁜 아가씨가 ‘할머니 전화 받으세요!’할거예요!”하고 진동 해제 버튼을 눌렀는데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상하게 진동해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 이상하다! 내가 버튼을 잘못 눌렀나?”하고 다시 진동해제 버튼을 누른 다음 할머니 휴대전화에 전화를 걸어봅니다. 그러나 여전히 예쁜 아가씨 목소리는 나지 않고


진동음만  들려 올 뿐입니다. “아저씨! 혹시 전화가 으디 고장난 것 아니여? 그라문 으째사 쓰까? 우리 아들이 전화 사준지 인자 보름뿐이 안됐는디 그새 고장이 나불문 큰일인디!” “할머니 이건 고장 나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할머니께서 진동 버튼을 눌러서 그런다니까요! 걱정하지 마시고 조금 기다려 보세요!”하고 이 버튼 저 버튼을 모두 다 눌러도 진동해제가 되지 않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이게 왜? 진동 해제가 되지 않지?’하다 ‘옳지! 전원을  잠시 껐다 켜면 되겠구나!’하고 전화기 종료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러자 전화기는 꺼졌는데 이번에는 다시 종료 버튼을 눌렀는데도 전화기가 켜지지 않습니다. “우메! 으째사 쓰까? 전화가 고장나 부렇으문! 우리 아들이 전화 사준지 인자 보름뿐이 안되얏는디! 큰일 났네! 으째사 쓰까?”제가 이 버튼 저 버튼을 만지는 사이 할머니께서는 제가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전화가 고장 났을까 봐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자꾸 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할머니! 전화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니까요! 잠시만 기다리고 계세요!”그리고 다시 이 버튼 저 버튼을 누르며‘아니? 이것이 또 어떻게 된 일이냐?


왜? 이렇게 전화기가 말썽을 부리는 것이여?’하지만 여전히 전화기는 켜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인자 큰일 났네! 그나마 전화가 안 살아나문 우리 아들이랑 딸이랑 사위랑 손자들이랑 나한테 전화하꺼인디 만약에 내가 전화를 안받고 있으문 으디 아파서 전화 안받는지 알고 난리가 나껏인디 으째사 쓰까? 그라고 으디 놀러도 못가고 우리 집 전화기 옆에서 꼭 붙어있어야 쓰꺼인디!”할머니의 걱정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갑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련한데는 약도 없다더니 나도 어지간히


정신이 없구나! 이럴 때는 장갑을 벗고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장갑 낀 두툼한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고 있었으니 버튼이 제대로 눌러질 수가 있나?”그래서 이번에는 지금까지 손에 끼고 있던 하얀 장갑을 벗고 버튼을 누르자 어느새 전화기는 맑은 음악소리가 나더니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 이젠 됐어요! 그리고 전화 한번 받아보세요!”하고 저의 휴대전화로 할머니 전화기에 전화를 걸어봅니다. 그러자‘전화 왔습니다. 전화 받으세요!’하는 상냥한 목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메! 으째사 쓰까?”는 “어머나! 어떻게 해야 하지?”의 전라도 방언입니다.

*늘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보성의 녹차 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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