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야기

도장을 찾으시는 할머니

큰가방 2001. 9. 4. 16:42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날씨라고는 하지만 한낮에는 여름을 방불케하는 뜨거운 햇볕이 여전히 우리를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틈인지 피어난 가을꽃들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습니다.
언제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렸는지는 모르지만 해 맑은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는 가을꽃 한 그루와 그 향기가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할머니 도장 한번 찍어 주실래요? 서울에서 돈이 왔는데요!"
"응 그래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어! 오늘 돈이 올 거라고 으디 가지 말고 집이서 기다리라고 딸한테서 전화가 왔드만 그래서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어!"
"예 그러세요 할머니 도장 좀 주실래요?"
"응 조금만 기다려 잉 내 금방 갖고오께!"
하시며 집안으로 들어가신 할머니께서 이제나저제나 기다려도 도통 도장을 가지고 나오실 기미가 없습니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늦으실까?" 하면서 집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할머니 아직 도장 못 찾으셨어요?"
"응 아까 내가 도장을 찾아서 으따가 놔 뒀는디 암만 찾아도 없어 이상하네 늙으문 죽어야 쓴디 내가 늙어논께 정신이 없어 그나저나 얼런 도장을 찾아야 하꺼인디 참말로 이상하네!" 하시는 할머니의 방을 살며시 들여다보니 온갖 살림살이를 다 뒤지셨는지 방안이 엉망입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는 여기저기를 뒤지시느라 정신이 없으십니다.
"할머니 도장이 없으시면요 이리 오셔서 그냥 지장 찍으세요!"
"아니 그라문 안돼 우체국에 돈 찾을라 문 도장이 있어야 한께 생각 났을 때 찾아야제
지금 못찾으문 언제 찾을거여 그랑께 조금만 기다려 잉!"
하시는 할머니께 제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할머니 그럼 천천히 찾으세요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께요!" 하였더니
"응 조금만 기다려 잉!"
하시며 도장 찾기에 열중이십니다.
방안을 조금 들여다보니 장농속에 책상서랍 등 온통 가재도구를 다 꺼내어 도장을 찾으시는데 정말 도와드릴수도 없고 그런데 마루에 걸터앉아 가만히 보니 마루 끝에 조그만 지갑 하나가 보입니다.
그래서 그 지갑을 열어보았더니 그 지갑 안에 도장하고 주민등록증이 들어있는겁니다. 옛말에 업은 아기 삼년 찾는다고 했던가요?
"할머니 도장하고 주민등록증 여기에 있는데요!"
"어디가 있어? 마루에가 있다고?"
"예 할머니 아까 도장하고 주민등록증을 찾아서 여기다 두시지 않았어요?"
하는 저의 물음에
"아이고 내정신 좀 봐아 그렁께 늙으문 죽어야 쓴 당께 아까 아저씨 오문 줄라고 착실하게 찾아서 여기다 놔두고는 이라고 찾고 있었으니 그나저나 이놈의 살림살이를 언제 다 치우껏이여 아이고 큰일났네!"
하시는 겁니다.
"할머니 그래서 제가 천천히 찾아보시라고 했지 않습니까 이제 살림은 천천히 치우세요 덕분에 방안 청소 한번 했다고 생각하시면 되지요!"
하는 저의 말에 "대차 아저씨 말이 맞어 늙은이가 언제 방 청소하고 살았으껏이여 오늘이나 아저씨 덕분에 청소 한번 해야제"하시는 겁니다.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저 갑니다."
하면서 그 할머니 댁의 대문 밖을 나서는데 웬일인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제는 계절은 완연한 가을의 계절로 들어섰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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