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들의 IMF
2000/03/31
아침부터 컴컴하던 하늘이 드디어 소나기를 퍼붓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소나기도 잠시 어느새 언제 소나기를 퍼부었냐는 듯 다시 맑은 하늘로 돌아와 있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성함이 조종순 씨가 맞지요?" 하는 저의 물음에 할머니께서는 "예! 내가 조종순인디라 잉!" 하십니다.
"서울 김정수 씨가 누구 되세요? 돈(통화등기)이 왔네요! 도장을 한번 찍어주세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 해지면서
"누구한테 돈이 왔다고? "김정수 한테서 돈이 왔다고?" 하시며 깜짝 놀라는 표정입니다.
"예! 할머니 김정수 씨가 돈 삼만 원을 보냈는데요!" 하였더니
"그래라 잉! 봉투 속에 편지 혹시안 들었소?" 하시며 물으십니다
"예! 편지가 있네요!" 하였더니 "아저씨 그라문 편지 좀 읽어주씨요 내가 까막눈이라 글을 알아야제!" 하십니다.
"예 그러면 제가 읽어 드릴게요" 하면서 읽어드린 할머니의 편지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었습니다.
먼저 이 편지를 우리 어머니께 읽어 주실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달 4월 3일은 우리 어머니 72세 생신이 되는 날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된 도리로서 마땅히 제가 어머니를 찾아뵙고 생신 상을 차려드려야 되는 것이 도리인줄 알지만 지난번 IMF로인하여 제가 그만 실직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취직을 해보려고 노력을 하였지만 아직까지 취직을 하지 못하고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때문에 어머니께 가지를 못하고 작으나마 돈 삼만 원을 보내드립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두신 우리 어머님으로서는 얼마나 실망이 크시겠습니까 마는 그러나 저의 처지가 어머니께 갈 수 없는 처지이오니 선생님께서 저의 어머니에게 저는 지난달부터 취직을 하여 회사에 잘 나가고 있으며 이제 막 들어간 회사인지라 회사일 때문에 바빠서 못 간다는 말씀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적은 돈이나마 이 돈으로 고깃국이라도 끓여서 마을 사람들과 같이 나눠 잡수시라고 말씀을 드려 주십시요.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4월3일날 저라도 그 할머니의 아드님 대신 생일케이크이라도 하나 보내드릴까 합니다.
그리고 그 할머니의 아드님이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여 내년에는 할머니의 생신 때 아드님 이 정성 들여 차려주시는 생신 상을 받았으면 합니다.
다시 하늘이 컴컴해지기 시작합니다. 다시 소나기가 내리려나 봅니다.
왠지 모를 우울한 저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 것처럼.
"할머니 부디 건강하세요! 그리고 내년에는 아드님께서 정성들이여 차려드리는 생일상을 꼭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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