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우편수취함의 이름

큰가방 2007. 3. 4. 12:51
 

우편수취함의 이름


2월이 우리 곁에 그냥 떠나가기 싫었던지 오늘은 약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지만 따스하게 비추는 햇살은 여기저기에 봄을 뿌려놓고 있었다. 양지쪽에 새록새록 돋아나는 이름모를 잡초 사이에, 화사하게 피어있는 붉은 색 매화나무의 꽃망울에서, 시골집 마당 텃밭에서 자라는 싱싱한 상추 잎 속에서, 쪽파를 수확하는 아낙네의 바쁜 속길 속에서, 시냇물이 흐르는 냇가에 한들거리는 버들개지에서도, 봄은 어느새 머리를 내밀고 활짝 웃고 있었다, 오늘도 행복이 가득담긴 우편물을 배달하던


나는 전남 보성 회천면 봉강리 모원마을 우편물 배달이 끝나고 마지막 집에 소포 하나를 배달하려고 대문 앞에 빨간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적재함에서 할머니 약으로 보이는 조그만 소포 하나를 꺼내들고 마당으로 들어가 “계십니까? 할머니! 소포 왔어요!”하며 큰소리로 할머니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어 “오늘도 할머니께서 일 나가셨나? 그럼 소포는 방안에 넣어두고 가야겠다,”하고 현관문을 막 여는 순간 갑자기 방문이“텅!”하고 열리더니 “누구여? 누가 왔어?”하시는 것이다,


“할머니~이! 방안에 계셨으면 대답을 하셔야지 대답도 없이 그렇게 갑자기 방문을 세게 여시니까 제가 깜짝 놀랐잖아요~오!” “이~잉? 우메 우째사 쓰까? 우체부 아제가 온지 몰르고 그냥 문을 열어서!” “그런데 제가 그렇게 큰소리로 불렀어도 모르고 계셨어요?” “아니 배깥에서(밖에서) 뭔 소리가 들리기는 들렸는디 나 불른 소린지는 몰랐제~에!”하며 미안하다는 듯 웃으며 마루로 나오신다, “오늘은 쪽파 밭에 안나가셨네요! 어디 편찮으세요?”


“돈벌러 가기는 가야 쓰것인디 아이고~오! 이놈의 다리가 또 아프기 시작하네!” “그러니까 몸 생각을 하면서 돈을 버셔야지 몸은 생각 않고 돈만 벌려하니까 그렇게 몸이 아프신 거예요!” “그라기는 그래! 근디 내약 왔어? 아까 여수(麗水)서 우리 외손지가 ‘외할머니 약 보냈응께 쪼그만 기달리소! 금방 가껏이네!’하고 전화했드만!” “이 소포가 여수에서 보낸 거니까 할머니 약인가 봐요!” “와따~아! 징하게도 빠르네 잉! 아까 전화를 받었는디 그새 약이 와부러~어?”


“요즘은 우편물이 다 빨리 와요! 그런데 얼른 할머니 몸이 좋아져야하는데 걱정이네요!” “인자 약 묵고 이 삼일 있으문 괜찮해 먼자도 몸이 안 좋아 여수 딸한테 전화했더니 약 보내줘서 묵응께 금방 좋아 지드만!”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리고 몸이 안 좋으시면 쪽파 밭에는 그만 다니세요, 이제 할머니 몸도 생각하셔야지 돈 몇 푼 벌려다 잘못하면 큰일 나는 수도 있어요, 아시겠지요?” “으째 나는 모르간디 그란디 혼자 집에 있을라문 갑갑하고 그랑께! 그래도 쪽파 밭에 나가문 사람들하고 이야기도 하고 어쩌다 보문


하루가 금방 가분디!” “그렇기는 하겠네요. 할머니 저 그만 가볼게요!”하고 대문을 나왔는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나오시더니 “아제한테 부탁이 있는디!” “무슨 부탁인데요? 아주 큰 부탁인가요?”하고 묻자 대문 옆 담벼락에 붙어있는 우편 수취함을 가르치며 “아니~이! 다른 것이 아니고 여그 적어진 이름이 돌아가신 우리 영감 이름이여! 그란디 내 이름으로 다시 써 주문 안되까?” “여기 적어진 이름은 할머니 이름인데요, 할머니 성함이 김현자 씨 맞지요? 지난번에 제가 다시 써 놓았어요!”


“그랬어? 그란디 엊그저께 택배 배달하는 사람이 만날 우리 집을 못 찾고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 세 번 만에 찾았다든가 으쨌다든가! 편지통에 내 이름이 있응께 그것 보문 안다고 해도 못 찾고 돌아 댕겼다고 그라데!” “그 분들은 저희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래요! 저희들이야 매일 다니고 있지만 어쩌다 한번 오는 사람이 쉽게 찾을 수 있겠어요? 그리고 그 분들에게 전화가 오면 집 위치를 잘 가르쳐 주셔야 해요, 할머니 집은 마을 입구에서 보면 우측 끝집이라고 가르쳐 주시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라문 내가 동네 들어 오문 첫 집이라고 갈쳐줘서 못 찾았으까?” “그런 것 같아요! 참! 할머니 나에게 아주 좋은 생각이 있는데!” “무슨 좋은 생각이 있어?” “대문에 ‘김현자!’하고 아주 커다랗게 써 놓으면 어떨까요? 그러면 택배 배달하는 분들도 할머니 집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하였더니 깜짝 놀라는 할머니의 말씀은 “아이고! 안돼야! 차라리 택배를 안 받고 말것네!”


*전남 보성 회천면 회령리에서 바라 본 일림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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