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핸드폰
경칩이 다가오면서 갑자기 찾아온 꽃샘추위가 연일 계속해서 맹위(猛威)를 떨치더니 오늘은 살며시 봄 날씨에게 자리를 내 주었는지 차갑게 불어대던 바람은 어느새 그치고 따뜻한 봄볕이 포근하게 내리쬐면서 양지쪽에 자리 잡은 조그만 텃밭 한구석에서 그동안 추위 때문에 웅크리고 있던 성냥 꼴만큼 작은 이름모를 노란 꽃들이 기지개를 활짝 펴더니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행복이 가득 담긴 우편물을 싣고 시골마을로 배달하기 위하여 천천히 달려가는 나를 환하게 웃는 얼굴로 정답게 맞이하고 있다.
전남 보성 회천면 회령리 도당마을에서 오늘 배달할 우편물 중 수취인의 집을 몰라 배달하지 못한 소포의 주인을 찾으려고 때 마침 만난 마을의 영감님께“어르신! 혹시 이 마을에 김연희 라는 사람아시겠어요?”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던 영감님께서“김연희? 김연희가 남자 이름이여? 여자 이름이여?” “이름으로 봐서 여자 이름인 것 같은데 혹시 모르시겠어요?” “금메~에! 나는 첨 듣는 이름인디! 김연희가 누구까? 부인 이름이여? 애기 이름이여?”
“부인 이름은 아닌 것 같고 제 생각에는 학생 이름 같기는 한데! 누군지를 잘 모르겠거든요!” “그래~잉! 나도 잘 모르것는디 주소가 회령리 몇 번지로 되어있는가?” “번지는 없고 그냥 회령리 도당마을로 되어있어요!” “그래~에! 으째 사람들이 소포를 보내면서 번지도 안 쓰고 보냈으까? 그라문 혹시 전화번호는 없는가?” “전화번호가 있으면 뭣 하러 어르신께 물어보겠어요? 그냥 전화해서 물어보면 간단한데!” “참말로 그라것네 잉! 내가 알문 갈쳐 주껏인디 누군지를 모르것네! 으짜까 미안해서!”하는
영감님을 뒤로하고‘마을에서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가 없으니 이걸 누구에게 물어본다?’하고 잠시 궁리를 하고 있는데 마침 초등학교 6학년 혜영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는 것이 보여 “혜영아! 너 혹시 김연희라고 알겠니?”하고 물었더니 “고등학교에 다니는 연희 언니요? 알아요! 근데 왜 그러세요?” “연희에게 소포가 하나왔는데 아저씨가 연희네 집을 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연희 언니는 저쪽 골목길 높은 집에서 할머니하고 살아요!”하며 혜영이가 손가락으로 가르쳐 준 집으로 소포를 가지고 들어가
마침 방문을 열고 나온 할머니께“여기가 김연희 집이 맞나요?”하고 물었더니“아이고~오! 저 썩을 것이 기연히 즈그 어메(엄마)를 성가시게 했구만!”하며 내가 묻는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손녀에게 화부터 내고 있었다. “할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누가 엄마를 성가시게 했다는 말씀이세요?” “아제가 갖고 온 것이 우리 손지(손녀) 핸드퐁(핸드폰)인가 뭣하고 책가방이여! 즈그 어메한테 날마다 핸드퐁 사 내라고 전화를 해 쌋드만 즈그 어메가 연희를 못 해 보고 말았는 갑구만!”
“할머니! 그러니까 제가 가지고 온 이 소포에 연희의 핸드폰과 가방이 들어있다는 말씀이세요?” “진작부터 즈그 친구들은 다 핸드퐁이 있는디 지만 없다고 나 보고 핸드퐁 사내라고 볶아 싼디 내가 돈이 있어야제! 그래서 못 사주고 있었는디 인자 고등학교를 간께 핸드퐁이 있어야 된다고 날이면 날마다 즈그 어메한테 전화를 해쌓데! 그라드만 결국 핸드퐁이 오고 말었는 갑구만!” “할머니! 연희도 핸드폰이 필요하니까 사달라고 했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사 달라고 했겠어요?”
“공부하는 애기들이 무슨 핸드퐁이 필요해? 전화 갖고 장난할 시간에 공부를 부지런히 해야제!”“그렇기는 하네요! 그런데 요즘은 초등학교 아이들도 휴대폰을 가지고 다닌다는데 이제 연희는 고등학생이 되었다면서요! 그러면 보성읍에 있는 학교에서 집까지 통학을 해야 하잖아요? 그러면 밤에 늦게 돌아올 수도 있는데 여고생이 혹시 늦게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어떻게 연희에게 연락을 하려고 그러세요?” “아제 말을 들어 본께 그라기는 그란디 없는 살림에 전화요금은 누가 줄것이여? 그랑께 내가 그러제~에!”하는
할머니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은 얼굴이었다.“할머니! 휴대전화는 많이 사용하지 만 않으면 요금이 그렇게 비싸지는 않으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하면서 연희가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엄마에게 받은 핸드폰을 함부로 사용하여 많은 요금을 지불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았다.
*양지 쪽에 피어있는 성냥 꼴 만큼 작은 노란 꽃인데 이름이 무엇일까요?
*양지쪽 언덕에 피어있는 제비꽃입니다.
'빨간자전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잘못적은 전화번호 (0) | 2007.04.01 |
---|---|
옥(玉) 장판 소동 (0) | 2007.03.24 |
"아저씨! 나 알아요?" (0) | 2007.03.11 |
우편수취함의 이름 (0) | 2007.03.04 |
"코렌 밀레니엄?" (0) | 2007.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