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그래! 고맙네!"

큰가방 2009. 3. 7. 18:58

“그래! 고맙네!”


“오늘은 전국이 대체로 맑은 날씨가 되겠으나 남부지방에서는 곳에 따라 강한 돌풍(突風)이 예상되오니 특히 바다를 항해(航海)하는 선박(船舶)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으나 내가 우체국에 출근할 때만 해도 바람은 별로 불지 않았는데 우편물을 정리하여 시골마을을 향하여 출발할 무렵부터 어디서 몰아오기 시작하였는지“위~위~윙!”하는 몹시 화난 휘파람소리와 함께 중심을 잡기 힘들 정도의 강한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였는데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전남 보성 회천 봉강리 봉서동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강한 바람 속에서도 화사하게 피어난 하얀, 빨간색 매화꽃이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내가 일림산(日林山)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흐르는 개천(開川)쪽 4가구가 살고 있는 곳으로 우편물을 배달하러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맞서 천천히 가고 있을 때 개천 옆에 살고 있는 영감님께서 어른 배꼽 정도 높이의 개천가 둑(堤防) 아래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계시기에 별 생각 없이“어르신! 안녕하세요?”하였는데


아무 반응이 없어 “이상하다? 왜? 아무 말씀도 안하시지?”하며 우편 수취함에 우편물을 넣은 다음 되돌아서 영감님의 얼굴을 보았는데 무언가 나에게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참! 저 영감님은 몸이 좋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서도 겨우 몇 걸음 밖에 걷지 못하는 분인데 왜? 저기 내려가 계시지?”하며 급하게 오토바이를 세우고 영감님 곁으로 달려가 “어르신! 왜? 거기 내려가 계세요?”하고 물었으나 아무 대답 없이“어서 나를 여기서 꺼내 달라!”눈빛이어서


주위를 둘러보니 영감님께서 지팡이를 짚고 집에서 밖으로 나오다 강한 바람 때문에 그만 개천 둑 밑으로 구르신 것 같았는데 옷이 젖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다행스럽게 개울물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둑 위로 올라오려고 얼마나 애를 쓰셨는지 옷이며 손, 손톱에 모래와 흙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어르신! 제 손을 잡고 나오시겠어요?”하며 영감님의 손을 잡고 끌어 올리려는데 아무리 잡아 당겨도 도저히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는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하고


둑 밑으로 내려갔더니 흙을 다져 사람들이 쉽게 올라 올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 있어 “어르신! 위로 올라가시려면 우선 이쪽으로 올라와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가슴을 안고 일어서면 따라서 일어나세요!”하였더니 고개를 끄덕거리기에 뒤에서 영감님 가슴을 안고 일어선 다음 흙 위로 올라서서 “어르신! 여기서 제가 길 위로 올라갈 동안만 버티고 계세요?”하고 얼른 길 위로 올라서 영감님 등 뒤에 두 손으로 깍지를 끼고 힘껏 들어올려 어렵사리 길 위로 올라와


영감님의 옷과 손에 묻어있는 흙을 털어내고 “어르신 저에게 업히세요!”하였는데 영감님을 업고는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이럴 때 누가 옆에서 조금만 거들어주면 좋겠는데!’하며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람은 기척도 없어 하는 수 없이 영감님을 껴안고 마루까지 가는데 불과 몇 m 밖에 되지 않은 거리가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는지! 그런데 마루에 다다라 “어르신! 마루에 올라가세요!”하였으나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 가만히 영감님의 엉덩이를 마루에 닿게 한 다음,


왼손은 목에 오른손은 무릎 뒤쪽으로 손을 넣어 살짝 들어올린 듯 하며 빙그르 돌아 마루까지는 올라갔는데 이번에는 또 방문이 닫혀있어 방문을 열고 놓고 영감님의 다리를 먼저 방안에 들여 넣은 다음 뒤에서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고 들어올려 간신히 방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르신! 방이 따뜻하니까. 오늘은 방에서만 계시고 절대 밖에 나가시면 안돼요! 아시겠지요?”하였더니 고개를 끄덕거린 영감님께서“저 바쁘니까 이만 가 볼게요!”하였더니 아주 가느다란 목소리로 “그래! 고맙네!”하며 눈물이 글썽거렸다.


 

꽃 샘 추위 속에서도 하얀 빨간 매화꽃은 활짝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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