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제(時祭) 모시던 날
오늘은 증조부, 조모님의 시제모시는 날이어서 아침 9시경 선산(先山)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원래는 매년 4월 한식날이 시제 날인데 모두가 평일은 참석하기 힘들다고 하여 한식 다음 일요일 날로 변경하였고 시제 음식도 문중(門中) 논(畓)천여 평 있어 옛날에는 논농사 짓던 분이 시제음식을 장만하여 주었는데 갈수록 농사짓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농사지을 사람이 없자 아예 논을 팔아 그 돈을 은행에 예금한 뒤 이자를 가지고 우리 형제, 사촌, 육촌형제들이 교대로 음식 장만을 하여
시제를 모시는데 수가 많다보니 한번 유사를 치르고 나면 10 여년을 기다려야 순서가 돌아오므로 모두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장만하는데 지금은 보온밥통이나 물통이 있어 밥이나 국도 산에서 불 피울 필요 없이 따뜻한 음식을 제사상에 올릴 수 있어 ‘정말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서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 명절이나 집안의 행사를 제외하면 형제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어 시제 날 모여 서로 얼굴도 보고 안부를 묻는 어떻게 생각하면
증조부님의 엄숙한 제삿날 보다는 모든 형제들이 모여 우애를 다지는 날로 변화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집에서 출발한지 약 한 시간 후 산소로 올라가는 입구에 도착하였는데 이미 여러 대의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어 다른 형제들은 이미 산소로 올라간 것 같았고 잠시 후 산소에 도착하자 제사 음식을 그릇에 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늦게 왔나요?” “늦기는 뭘 늦어 우리도 방금 왔는걸!” “그동안 별고 없으셨지요?” “응! 자네 집안도 다 무고하시지?”
“예! 수연이는 대학 졸업했지요? 직장은 잡았어요?” “아이고! 말도 말게! 여자는 대학 졸업했으면 직장을 잡아 시집가려고 준비해야 하는데 대학원을 간다고 해서 죽을 지경이네!” “그럼 대학원 졸업하고 직장을 잡으면 되지 않겠어요? 힘이 드시지만 그래도 조카가 공부를 한다는데 어떻게 말리겠어요?” “글쎄! 그것이 걱정일세! 내가 능력만 된다면 딸이 공부 한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나이 60 살이 넘었는데 언제까지 딸자식 뒤 치다꺼리만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니! 헛! 헛! 허!”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느 새 음식이 그릇에 담겨지고 산소 앞에 진설하면서 “그런데 형님! 무슨 음식을 이렇게 많이 장만하셨어요? 음식을 다 먹으려면 한참 걸려야 되겠는데요.” “그래! 그럼 노래방 기계를 한대 빌려다 놓고 노래 부르면서 먹으면 어떨까?” “그럴게 아니라 아예 텐트를 치고 1박 2일로 먹고 놀다 갑시다!” “그런데 증조부님께서 시끄럽다고 화를 내시면 어떻게 하지?” “증손자들이 산소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데 설마 화를 내기야 하시겠어?”하며
어느덧 진설이 끝나고 향(香)을 피우는데 “요즘 산불 때문에 비상이 걸렸으니 향 피울 때는 조심하거라!”하며 의식이 시작되었고 “축을 읽을 테니 모두 앉아라!”하며 “유~우 세차~아!”하는 순간 갑자기 산 아래 도로에서 “면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건조한 날씨로 인하여 산불이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산에서 행사하시는 분들께서는 산불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부탁드립니다.”라는 커다란 확성기 안내방송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산불조심을 잘하고 있는데 중요한 순간에 왜? 저렇게 우리 산소 쪽에 대놓고 야단이야?” “저 사람들이 우리가 산불 조심하는 줄 알기나 하겠어요? 잠시 기다리면 다른 곳으로 가겠지요!”했는데 몇 번을 계속 반복해서 방송을 하자 6촌 형님 한 분이 “아까 누가 증조부님 산소에 노래방 기계 가지고 오자 그랬냐? 그러니까 증조부님이 화가 나서 저 사람들을 부른 거야!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