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한 이야기

벌초하던 날

큰가방 2008. 9. 6. 21:47

벌초하던 날

 

저녁 9시 반 전화벨이 울리면서“시아제! 여기 광주인데 그동안 잘 계셨어요?” “예! 형수님! 그렇지 않아도 전화하려던 참이었는데 이제 퇴근하여 저녁밥 먹고 나니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그런데 벌초는 이번 주 일요일 날이 어떻겠어요?” “8월 31일 일요일 말씀이지요? 형님께서도 그날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던데 그럼 그렇게 전해드릴까요?” “예!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아침 7시까지 작은집에 도착한다고 전해주세요! 제가 먼저 전화를 드려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오전 7시경 도착한 산소에는 온통 풀들이 가득하였습니다.

 

 “늘 바쁘신 줄 뻔히 알고 있는데 미안 해 하지 마세요! 그럼 그때 작은집에서 만나요!”하고 전화는 끊겼다. 일년에 한 번 있는 조상님 산소의 벌초를 벌써 몇 년째 하다보니 어떤 때는 “힘들고 그러니까 사람을 사서 벌초를 해?”하는 생각을 하다 “그래도 우리 조상님 산소인데 남에게 맡길 수는 없지! 그럼 형제들 모두 모여 벌초를 하면 어떨까? 그런데 서울에서 부산에서 마산에서 벌초하러 왔다 가고 또 다시 추석 때 찾아오고! 그것도 안 되겠고! 에라 모르겠다!

 

 

 

*드디어 예초기의 엔진소리와 함께 벌초는 시작었습니다. 

 

 일년에 한번이니 산소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표로 수고하자!”그래서 큰댁 작은 형님과 나는 늘 조상님 산소 벌초를 도맡아 하게 되었는데 금년에도 어김없이 작은 형수에게 전화가 온 것이었다. 해 마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여기저기 양지바른 언덕의 묘에서 예초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벌써 추석이 다가오는구나! 그럼 조상님 산소에 벌초를 해야 하는데 언제쯤 시간을 내지?”하며 벌초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는데 금년에는 8월 31일로 날짜를 잡고

 

 

 

*이번에는 큰가방이 예초기를 짊어지고 벌초를 하였습니다.

 

드디어 그날 아침 일찍 전남 영암 신북면 모산리를 향하여 출발하여 오전 7시경 작은집에서 이미 우리 부부를 기다리던 큰댁 작은 형님. 조카와 함께 산소를 향하여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작은 아버지께서 “나도 같이 가자!”고 하셨다. “작은 아버지는 그냥 집에 계시지 그러세요? 저희들끼리 다녀와도 되는데!” “내가 가자고 하면 아무 소리하지 말고 그냥 가!” “혹시 저희들이 못 미더워서 그러세요?” “못 믿어서 그런다냐? 나도 산소에 가면 다 할 일이 있어! 그랑께 그냥 같이 가자!”고 고집하시는 바람에


*"산소의 봉은 그냥 놔둬라! 내가 예쁘게 할 테니까?" 

*그래서 봉은 놔 두었습니다.

 

숙부님을 모시고 산소로 향하였다. 그리고 도착한 산소에는 지난 7월에 찾아왔을 때만 해도 풀들이 별로 자라지 않았었는데 약 한 달 사이에 엄청나게 자라나 짙은 풀숲을 이루고 있었다. “조상님! 그동안 답답하셨지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저희들이 시원하게 해 드릴게요!” 하며 예초기의 시동을 걸고 처음에는 형님이 그리고 내가 다음은 조카가 예초기를 이용하여 산소 주위의 높이 자란 풀을 베어내고 집사람은 갈퀴로 베어낸 풀을 긁어 한쪽으로 치우다 보니 어느새 말끔히 변해있었다.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지요?

 

그리고 산소의 벌초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작은 아버지께서 “오늘 날씨도 징하게 더운디 벌초하니라고 고생 많이 했다! 그란디 내가‘산소에 같이 가자!’고 하면 느그들은 귀찮하제? 그란디 내가 꼭 산소에 따라다니는 이유를 혹시 알고 있냐?”고 물으셨다. “조카들이 못 미더워서 그러신 것 아닌가요?”하였더니 “느그들도 알다시피 내가 올해 나이 아흔 두 살(92세)이다. 그랑께 인자 힘이 없어 자전거도 못 타겠더라! 그런데 산소는 자주 둘러 봐야겠는데 무더운 날씨에 산소까지 걸어 다닐 수는 없고


 

*산소 아래 쪽은 군에서 갓 제대하여 돌아 온 조카가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살아있을 때 한번이라도 더 산소에 다녀오려고 너희들이 차를 가지고 오면 꼭 따라나서는 것이다. 내가 이제 살면 얼마나 살겠냐? 올해 죽을지 내년에 죽을지 모르는데 내손으로 조상님 산소 벌초는 못하더라도 조카들 벌초하는데 따라와서 구경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자손의 도리인 것 같아 그렇게 한 것이란다. 내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겠지?”하시는 작은 아버지의 말씀에 “아! 그랬었구나!”하며 가슴 한 편이 찡하게 저려오는 아픔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저의 어머니 산소를 마지막으로 모든 벌초 작업은 끝이 났습니다.

 

 

 

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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