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가족 같은 개(犬)

큰가방 2009. 11. 28. 19:44

 

가족 같은 개(犬)

 

입동(立冬)이 지났어도 좀처럼 찾아올 것 같지 않던 추위가 11월 중순에 접어들자 강한 바람과 함께 쳐들어오더니 길가에 몇 장 밖에 붙어있지 않은 가로수 잎들을 모두 빼앗아 하늘 높이 날려 보내고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어젯밤 하얀 서리를 뿌려놓고 지나가자 조용하기만 하던 시골들녘의 쪽파 밭에서는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김장철을 맞아 많은 아낙네들이 쪽파수확에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배고픈 까치 두 마리는 높은 감나무가지에 금방이라도 떨어질듯 빨갛게 매달려있는 서너 개의 홍시를 연신 쪼아대고 있었다.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러 가는 길. 내가 전남 보성 회천면 회령리 5일 시장(市場)에 있는 커다란 정자나무 아래를 지나가려고 할 때 건너 마을에 살고 있는 할머니께서 "아저씨! 아저씨!" 하고 나를 불러 "할머니! 무슨 부탁하실 일이라도 있나요?" 하고 빨간 오토바이를 잠시 세우자 "아저씨는 마을마다 돌아댕긴께 잘 알것네 잉!" "할머니 얼굴을 보니 근심이 가득한 것처럼 보이는데 무슨 걱정거리라도 생겼나요?" "아니~이! 다른 것이 아니고

 

아저씨는 우리 집에 자주 댕긴께 개(犬)가 우추고 생겼는지 알고 있제? 잉!" 하더니 갑자기 '후~우!' 하며 길게 한숨을 내 쉬고 계신다. "할머니 개는 약간 덩치 큰 하얀 개 아닌가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우리 개가 어저께 집을 나가 아직 안 들어오고 있단께 그래서 내가 꺽정이 되야 찾을라고 나왔는디 으디로 가부렇는고 아무리 찾아도 없단께!" "개 이름이 무엇인데요?" "개 이름? 몰라! 개 이름도 없이 그냥 키웠어!" "그러면 어떻게 잃어버리셨는데요?"

 

"그저께부터 개고리가 자꼬 끌러져 싸서 장에 가문 한 개 사다 채워야 쓰것다! 그랬는디 어저께 저녁에 쪽파 밭에서 일하고 집에 들어가본께 개가 우드로 가 불고 안보여! 그래서 밤에는 들어 올란다냐? 하고 지달렸는디 밤에도 안 오고, 오늘 아침까지도 안 들어오고 있어서 동네 으디가 있는가 싶어 돌아 댕겨 봤는디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것단께! 그것이 으드로 가부렇으까 잉!" "그러면 개 이름은 불러보셨나요?" "개 이름이 없응께 그냥 '개야!'하고 불렇는디 으디가 있는고 대답도 안 하네!

 

그래도 내가 일 끝나고 집에 들어가문 젤로 먼저 알아보고 꼬리치고 반갑다고 그란디 개가 없어져 분께 집이 휑하니 비어버린 것 같어서 오늘 쪽파 밭에 일도 안 나가고 찾으로 나왔는디 암만 여기저기를 돌아댕겨 봐도 못 찾것단께! 이일을 우추고 하문 좋으까?" "그러면 개가 할머니와 함께 밖에 마실 다녀본 적은 있었나요?" "집에 묶어놓고 키운 개가 은제 모실은 댕겨봤것어? 그냥 집에만 묶어져 갖고 있었제!" "그러면 개고리가 길게 끊어졌던가요? 아니면 짧게 끊어졌던가요?"

 

"짤라진 것이 아니고 말뚝이 빠져 부렇어! 그란디 그것은 뭣할라고 물어 싸?" "자주 마실을 다녀본 개라면 자신의 집 위치를 기억하기 때문에 잘 찾아오는데 그렇지 않은 개들은 집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못 찾아오거든요." "테레비서 보문 개가 석 달 만에도 집을 찾아오고 그라든디 못 찾아오까?" "그것은 아주 영리한 개들이나 훈련을 받은 특수 견들이 그렇다는 이야기지 할머니처럼 기르는 일반 개들은 그렇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아무리 사나운 개라도 사람이

 

자신의 목줄을 잡고 끌고 가면 주인인줄 알고 그냥 따라가게 되어 있어요!" "그라문 우리 개도 다른 사람이 잡아가 부렇단 말이여?"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요. 제가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혹시 발견하면 연락 해 드리겠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아이고! 이일을 우추고 하문 좋으까? 그래도 그것이 나한테는 식구 같은 개였는디!" "안타깝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요! 며칠 더 기다려보시고 정 안 돌아오면 다 잊고 다른 개를 키우셔야지요."

 

 

 11월 하순의 하루 해는 짧기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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