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불쌍한 고양이

큰가방 2009. 12. 5. 19:39

불쌍한 고양이

 

11월 말이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날씨는 별로 추위가 느껴지지 않은 온화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지만 지난번 반짝 추위가 찾아오면서 시작된 김장철 때문에 오늘도 시골 들녘에서는 많은 아낙네들이 모여 쪽파 수확에 여념이 없는데 시골마을로 길게 이어지는 농로길 옆 한적한 곳에 서있는 억새는 지난번 강하게 불어대던 찬바람에 곱게 빗은 하얀 머리를 모두 빼앗기고 앙상한 뼈대만 남은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어 내가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오늘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시골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다보니 전남 보성 회천면 화죽리 서동 아랫마을 입구에 접어들어 천천히 윗마을 쪽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할머니 한분께서 애잔한 표정을 지으며 "고양이가 치에 걸렸는디 영 불쌍하네!" 하신다. "고양이가 덫에 걸렸어요? 지금 어디 있는데요?" "여그 아래 안 있어?" 하며 손가락으로 고양이 쪽을 가리키신 후 아랫마을 쪽을 향하여 부산하게 가시는 것을 보고 길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더니 조그만 강아지크기의 검은고양이 한 마리가

 

노루 같은 산짐승 잡을 때 사용하는 덫에 뒷발이 걸려있었다. "고양이야! 그러니까 평소에 조심해야지 어쩌다 이렇게 덫에 걸려 고생하고 있냐? 잠시만 기다려라!" 하고 두 손으로 덫을 풀려고 하는데 갑자기 고양이는 두 눈에 불을 켜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캬~~아~~악!" 하는 독기 서린 외마디 소리와 함께 발톱을 세운 앞발로 사정없이 내 손을 후려치면서 덫에서 풀려나려는 듯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얌마! 조금 기다리면 내가 풀어준다니까 그러면 되겠냐?" 하였지만

 

고양이는 내 말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욱 사나운 기세로 몸부림을 치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이러다 고양이 발톱에 맞기라도 하는 날에는 큰일 나겠는데!" 하며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려 적당한 길이의 대 작대기를 찾아 덫 한쪽은 발로 밟고 한쪽은 대 작대기로 꼭 누른 후 "고양이야! 빨리 가거라! 그리고 다음부터는 덫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 하였더니 덫에서 빠진 고양이는 쪽파 밭 사이로 쏜살같이 달려가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녀석도 참! 아무리 바빠도 고맙다는 인사는 하고 가야지!

 

인사도 안하고 가면 되겠냐?" 하며 모처럼 좋은 일을 하였다는 흐뭇한 마음으로 윗마을 우편물 배달을 마치고 반대편 길을 통하여 다음 마을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데 방금 고양이를 풀어준 곳에서 영감님 한분이 "어~이! 자네 이리 잔 와 보소!" 하며 나를 부르시기에 얼른 오토바이를 돌려 영감님 곁으로 달려가 "어르신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하였더니 갑자기 험한 표정으로 변하신 영감님. "자네! 금방 여그 있든 고양이 풀어줬제?" 하신다. "예! 풀어줬는데 왜 그러세요?"

 

"아니 자네는 왜 시키도 않한 일을 하고 댕긴가? 엉? 내가 자네에게 고양이 풀어주라고 시키던가?" 하며 노발대발 야단이시다. "어르신! 그게요! 저~어! 저기 아랫집 할머니께서 '고양이가 불쌍하다!' 고 해서 풀어줬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나요?" "이 사람아! 잘못되야도 많이 잘못되얐제! 내가 약(藥)에 쓸라고 몇날 며칠을 종구다가 오늘 겨우 한 마리 잡었는디 자네가 풀어줬으니 인자 으짜문 쓰것는가?" 하신다. "고양이를 약에 쓴다고요? 무슨 약에 쓰는데요?"

 

"내가 신경통하고 관절이 안 좋아서 약으로 쓸라고 했는디 인자는 자네 땀새 다 틀렸네! 다 틀렸어!" "고양이를 약에 쓰려면 덫에 걸렸을 때 바로 처리하셔야지 그냥 놔두니까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치잖아요." "나도 죽이려고 했는디 고양이가 불쌍해서 안 되것드란 말이시! 그래서 그냥 죽으라고 거그다 놔뒀제~에!" "그런다고 고양이가 금방 죽겠어요? 죽으려면 며칠은 기다려야지요. 그나저나 어르신 약이 없어졌으니 미안해서 어쩌지요?" "할 수 없제! 으짜껏인가? 그것도 다 고양이가 오래 살라는 복(福)이네! 복이여!"

 

고양이 뒷발이 걸려있던 덫인데 조금 무시무시하게 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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