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입만 드실래요?"
오늘은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전남 보성 회천면 소재지(所在地) 우편물을 배달하는 날인데 요즘 들어 날씨가 많이 추워진데다 신종 플루의 유행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는 경향이 있어 녹차 밭을 찾는 관광객들이 줄어드는 바람에 소재지의 횟집이나 식당에 손님들이 별로 없어 불경기를 피해가지 못하고 왠지 모를 썰렁함을 느끼고 있지만 우편물은 11월 하순이 가까워지면서 전화 요금 고지서와 같은 각종 공과금. 청첩장. 모임 안내 등 오늘 배달해야 할 많은 우편물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어 부지런히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고 있는데 "날씨도 추운디 고생이 많으시네! 때가 되얏는디 식사는 하셨는가?" 하는 마을 영감님의 말씀에 "바쁘게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배고픈 줄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벌써 점심때가 되었나요?" 하고 시계를 보았더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늘 점심은 무엇으로 먹을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좋겠는데!' 하는 순간 바로 근처의 중화요리 음식점에서 고소한 자장소스 볶는 냄새가 솔솔 풍겨 나오며 입안에 군침이 가득 고이기 시작하였다.
"옳지! 오늘은 오랜만에 자장면을 먹어야겠다!" 하고 중화요리 집으로 들어가 자장면 한 그릇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식당에는 봉강리에서 살고 계시는 영감님 한분이 앉아 계셨다. "어르신! 잘 계셨어요? 그런데 오늘은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시려나 봐요?" 하였더니 "응! 오늘 면(面)에 볼일이 있어 나왔다 때가 되어 이리 왔네!" "그럼 할머니는 어떻게 하시고요?" "안 사람이사 집에서 묵것제! 우추고 밥 한 그럭 묵자고 여그까지 오라고 하것는가?"
"그렇기도 하겠네요. 그런데 금년에 쪽파 심어 얼마나 재미 좀 보셨어요?" "쪽파? 아이고! 말고 말게! 작년에는 그런대로 재미 좀 보았는데 금년에는 너도나도 심는 바람에 천지(天地)가 쪽파 밭인데다 가물어야 한꺼번에 자라지 않도록 물로 조절하여 키우는데 금년에는 비가 자주 내려 쪽파들이 자고나면 쑥쑥 자라는 바람에 너무 웃자란 데다 날씨마저 얼른 추워지지 않으니까 도시에서 김장을 미루고 있어! 그러니 가격이 폭락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인자 재미 보기는 다 틀린 것 같어!"
"농촌은 그것이 문제라니까요! 농산물이 과잉 생산되지 않도록 하고 또 한꺼번에 출하되지 않도록 조절을 할 수 있으면 정말 좋은데 그렇게 할 수도 없으니 결국 손해 보는 사람은 농민들이지요."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농사꾼들이 밭에 아무것도 심지 않고 그냥 놀릴 수는 없는 일인데!"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빨간 국물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짬뽕 한 그릇이 놓이자 영감님께서는 땀을 펄펄 흘리며 맛있게 잡숫고 계셨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앞에도 자장면이 담긴 그릇이 놓여 지며 "맛있게 드세요!" 하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씀에 "예! 고맙습니다." 하고 젓가락을 집어 들었는데 짬뽕을 맛있게 드시던 영감님께서 힐끗 내 자장면 그릇을 보더니 "나도 첨에 짜장면을 묵을라고 했는디 그만 짬뽕을 시켰지 뭔가!" 하며 무언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러면 처음에 자장면을 시키시지 왜 짬뽕을 시키셨어요?" "그란디 갑자기 짜장면 이름이 생각이 안 나더란 말이시! 그래서 결국 짬뽕을 시키고 말았어!" "그래도 짬뽕을 아주 맛있게 드시던데요!"
"내말은 짬뽕이 맛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처음에 짜장면을 시켜서 묵을라고 했는디 짬뽕을 시켰다는 말이여! 그란디 자네 자장면을 본께 참말로 맛있게 보인다 그말이시 알것는가?" "그럼 어떻게 하지요? 제가 자장면 한 그릇 사 드릴까요?" 하였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으신 영감님 "인자는 배가 불러 더는 못 묵어! 그라고 늙은 체구에 짬뽕 한그럭 묵었으문 되얐제 더 묵으문 쓰간디!" 하면서도 여전히 서운한 듯 자장면 그릇에 눈을 떼지 못하고 계신다. "어르신! 그러면 제 자장면 한 입만 드실래요?"
자장면이 정말 맛있게 생겼나요?
'따스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마운 사람들 (0) | 2009.12.26 |
---|---|
낯익은 이름 (0) | 2009.12.19 |
불쌍한 고양이 (0) | 2009.12.05 |
가족 같은 개(犬) (0) | 2009.11.28 |
먼저 가야 할 사람 (0) | 2009.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