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누가 아순가 보자!

큰가방 2012. 6. 9. 17:16

 

“누가 아순가 보자!”

 

6월이 가까워지면서 시골 들녘에는 오늘도 많은 농부들이 지난 1월에 파종하여 어느새 어른 주먹만큼 튼실하게 자라난 봄 감자를 수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전남 보성 회천면 화당마을 입구에 들어섰는데 할머니께서 반갑게 손을 흔드신다. 그리고 “아제 오늘은 으째 이라고 늦었어?”하고 물으셨다. “배달할 우편물이 많으면 자연히 늦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에? 나는 그란 것도 몰르고 아제를 만날라고 아까 낮 2시부터 지금까지 세 시간이나 지달리고 있었는디 암만 지달려도 안 오데~에! 그래서 우리 동네를 안 올라고 그란갑다! 그라고 인자 집에 갈라고 그랬는디 오늘은 별라도 늦게 오네 잉!”

 

“오늘은 건강보험 고지서를 배달하는 날이라서 늦을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원래 사람을 기다리면 더 안 오는 법이거든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세 시간 동안이나 기다고 계셨어요?”

“아니 이것 잔 부칠라고!”하며 조그만 박스 하나를 내 놓으신다. “박스 안에 무엇이 들었는데요?” “깐난 애기 젖병이여! 젖병!” “예~에? 젖병이라고요? 아니 할머니 댁에 무슨 갓난아기 젖병이 있어요?”

 

“그란 것이 아니고 엊그저께 토요일하고 일요일 그라고 부처님 오신 날까지 3일 동안 쉰다고 우리 막내아들이 애기들을 데꼬 왔다 갔는디 ‘빠진 것 있는 가 잘 봐서 챙겨 갖고 가그라 잉!’했는디 아침에 전화가 왔어! 젖병 놔두고 왔응께 얼렁 잔 부쳐주라고! 으째 요새 절문 애기들은 그라고 정신이 읍는가 몰르것서!”

 

“보나마나 할머니께서 막내아들 왔다고 이것저것 챙겨주시니까 거기에 신경 쓰다보면 젖병 정도는 잊어먹겠지요. 안 그래요?” “아따~아! 내가 챙겨 줄 것이나 뭐시 있것어? 즈그들이 다 알아서 갖고 가제!”

 

“그래도 오랜만에 아드님이 고향에 왔을 것 아니에요? 더군다나 젖 먹는 손자까지 데리고 왔으니 얼마나 예뻤을까?”하였더니 갑자기 할머니 눈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우리 손지가 즈그 아베 보다 더 잘 생겼드란께! 그래 갖고 이뻐 죽것서!”하며 행복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그란디 그것을 부칠라문 돈을 을마를 줘여 되야?”

 

“택배는 무게에 따라 다른데 이건 가볍고 또 광주(光州)로 가는 것이니까 3천 5백 원 주시면 되요.” “그래~에! 그라문 이것 4천 원잉께 5백 원 남은 것 갖고 막걸리 한 잔 사 자셔!” “예~에? 막걸리 사 먹으라고요? 그건 안돼요!” “으째 안 된다고 그래싸?” “세상에 막걸리가 5백 원짜리가 어디 있어요? 최소한 5천원은 주셔야지요!”

 

“그라문 내가 5천원 더 주껏잉께 막걸리 사 자셔!” “그래도 안돼요!” “으째 또 안 된다고 그래싸~아!” “율포 소재지에는 막걸리 집이 없는데 어디서 마시겠어요?” “아! 그라문 보성읍에 가서 마시문 되제 어채!” “그래도 안돼요! 막걸리 마시고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면 큰일인데 어떻게 마셔요!”

“와따~아! 안된것도 징허게 만네! 그라문 냅둬! 누가 아순가 보자!”하며 화가 난 듯 뒤돌아서는 할머니가 웃고 계신지 자꾸 어깨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도로가에 활짝 피어있는 이 꽃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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