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애들아!”
전남 보성 회천면 서동마을 가운데쯤 할머니 댁에 영수증과 잔돈이 들어있는 편지봉투 하나를 우편 수취함에 넣고 돌아섰는데 갑자기‘푸드득’소리와 함께 봉투가 이리저리 왔다갔다 들썩 거리기 시작하였다.
“어? 이게 웬일이지? 편지가 살았나?”하는 순간 급하게 수취함을 빠져나온 새 한 마리가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버린다.
“아차! 큰일 났다!”하고 얼른 봉투를 빼냈는데 갑자기 할머니의 화난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어제 오후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바람이 잘 통하는 나무 그늘 아래 쪼그리고 앉아“편지 아자씨! 이리 잔 와봐~아!”하고 부르셨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이것이 뭣인가 잔 봐 줘!”하며 꼬깃꼬깃 접어진 종이 한 장을 내미셨다. “이것은 2009년도 재산세 독촉장인데 아직까지 납부하지 않으셨어요?” “머시라고 작년. 재작년 재산세라고?”
“예~에! 독촉장이 나왔네요!” “그랬어? 내가 안 바치문 바칠 사람이 업응께 그랬는갑구만! 그라문 을마나 나왔어?” “2만 3천 8백 원이네요.” “그래~에! 그라문 2만 5천원 주문 쓰것구만!” “그러면 잔돈하고 영수증은 내일 댁으로 가져다 드릴게요.”
“영수증을 지금 해 주문 안돼야?” “납기일이 4월 30일까지라서 면사무소에서 다시 고지서를 재발급 받아야 납부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잔돈하고 영수증은 할머니 댁 우편함에 넣어둘게요.”하였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거그다 너문 안 되야!” “왜 안 된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 집 편지통에 애기들이 있응께 안 되야!” “수취함에 아기들이 있다고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와따~아! 말 귀도 징허게 못 알아 묵네! 새가 새끼를 까놓고 있는디 거그다 그런 것을 너문 쓰것어?”
“그러면 수취함 속에 새 새끼가 있다는 말씀이세요?” “금메 그란당께! 다른 집이 더 크고 넙고 이쁜 편지통도 만은디 해필 우리 집이 째깐한 통에다 새끼를 까논께 안 좁은 가 몰르것네!”
“새들이 사람처럼 크고 넓고 좋은 집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그저 새끼들만 잘 자랄 수 있으면 그만이겠지요.”
“그런 것을 보문 사람도 욕심이 업시 살아야 쓴 것인디 으째 그라고 아등바등 사는지 참말로 모르것서! 그라고 새들을 보문 내가 미안하드란께! 그랄지 알았으문 쬐깐 더 큰 통을 달아노꺼인디!”
“할머니의 고운 마음을 새들이 다 알고 있으니 비좁더라고 그곳에 둥지를 틀었겠지요. 안 그래요?”
“그란께 잊어 불지 말고 영수증은 우리 집 말레다 갖다 놔둬 잉!”하신 것을 깜박 잊고 수취함에 영수증을 넣었는데
사람이라면 봉투 한 장 무게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조그만 우편수취함 속의 새 새끼들에게는 아마 커다란 바위 돌 같은 무게였을 것이다. “미안하다! 애들아!”그리고 새의 새끼들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나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기를 기원해 본다.
다 낡은 우편수취함 속에 아기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여섯마리 새 새끼들이 있었습니다.
먹이를 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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