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는 재미
전남 보성 회천면 삼장 아랫마을 첫 번째 집에 조금은 크고 무거운 아이스박스 택배 하나를 배달하려고 마당으로 들어서며
“계세요? 택배가 왔네요.”하고 큰소리로 주인을 부르자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신 할머니 “우메! 오늘은 먼일로 이라고 택배가 자꼬 와 싼다냐?”하며
빙그레 웃으며 손을 내미신다. “그동안 잘 계셨어요? 그런데 지금 택배 받으려고 손을 내미시는 거예요?” “그라고 무건 것을 여그까지 갖고 왔응께
내가 바더야 쓰꺼인디!” “이건 무거워서 할머니께서 들기 힘드시니 제가 마루까지 가져다 드릴게요.” “우메! 그라문 참말로 고맙제~에!
안 그래도 요새 내가 밭으로 쪽파 작업을 째깐하로 댕겼드니 허리가 아퍼서 죽것당께!” “그러니까 일도 힘 알아서 하셔야지 너무 무리하니까
그렇게 허리가 아프시지요. 그러다 나중에 약값이 더 들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랑께 말이여! 그래서 오늘은 일도 안 나가고 집이서 쉬고 있는디
통 요새 집안 청소도 안 했드만 사방천지가 일껀지네! 그래서 여그저그 째깐 치고 있는디 누가 막 대문을 뚜둘어 싸서‘누가 와서 그래쌋소?’
했드니‘택배 왔응께 문 좀 여씨요!’글드랑께!” “그래서 대문을 열어주셨어요?” “잉! 그래 갖고 대문을 열어준께 생전 첨본 사람이
‘이것 택밴께 받으씨요!’그라고 방문 앞에다가 놨두고는 뒷도 안 돌아보고 가불데!” “아마 민영 택배회사 직원이 바빠서 택배만 놔두고 그냥 갔나 보네요.”
“그랬쓰까? 그란디 으째 그 사람은 사람을 보고도 인사도 안하고 말도 잘 안하고 그라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누가 얼마나 웃겠어요?
그런데 아까 택배는 누가 보낸 것이던가요?” “내 딸들이 부산서 다섯이나 살고 있어!” “따님 다섯 명이 부산에서 산다고요?”
“그란디 엊그저께 우리 시짜 딸한태서 전화가 왔드랑께!” “뭐라고 왔는데요?” “요새 엄니 반찬은 있는가?
그래서 나는 요새 마당에 있는 배추랑 쪽파랑 캐갖고 반찬 맹글어서 묵고 있다. 그랬드니 그라문 내가 반찬 잔 만들어 보내주께!
글드니 반찬을 아홉 가지나 맹글아 가꼬 보냈드랑께!” “그랬으면 정말 기쁘셨겠네요.” “그란디 딸들이 다섯이라도 다 나를 생각한 것이 아니고
우리 시짜 딸이 젤로 나를 생각하고 나머지 딸들은 기양 글드랑께!” “그러면 전화를 하셔서‘셋째는 이렇게 나를 생각하고 있는데
너희들은 무엇하고 있냐? 너희들도 셋째처럼 나를 좀 생각해 봐라!’하시지 그러셨어요?” “아이고! 생각 안하문 말제! 즈그들도
애기들 학교 보내고 그랑께 돈도 마니 드꺼인디 무담시 전화해 가꼬 딸들 성가시게 하문 쓰간디!” “정말 그렇지요? 아마도
제 생각에는 따님들이 엄마 생각을 할 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무슨 사정이 있어 그럴 거예요.” “몰라! 그래서 그랑가 으짠가?”하시더니
방금 내려놓은 택배를 가르키며 “그란디 금방 갖다 논 여그 이것은 누가 보낸 택배여?” “이건 경기도 구리에서 김영란 씨가 보냈네요.”
“영란이가 보냈다고? 김영란이가 우리 며느리여!” “그러면 며느님께서도 반찬을 보냈을까요?”
“내가 혈압약을 묵고 있응께 달달이 아들이 약을 사서 보낸디 그것을 보냄시로 반찬도 몇 가지해서 보내주고 글드랑께!”
“할머니는 좋으시겠네요. 따님이 생각하지 며느리가 생각하지.”하였더니 방금 따님들의 서운한 감정은 잊었는지
“그랑께 내가 그 재미로 살제 안 그라문 먼 재미로 사꺼시여!”하며 빙그레 웃고 계신다.
"촌에가 한가할 때가 있간디! 항상 바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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