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님과 주스
전남 보성 회천면 두곡마을 가운데 집에 우편물을 배달하려고 마당으로 들어서자 영감님께서 “아이고~메! 날도 징하게 더운디 우추고 배달은 댕겨싼가?
암만 바뻐도 이루와 짼깐 쉬었다 가소!”하며 반기신다. “제 생각에는 오늘이 금년 중 제일 더운 날 같아요.”
“그랑께 말이시! 나는 그늘에서 선풍기를 틀고 있어도 더운디 자네는 한종일 쬐약 볕에서 오투바이 타고 댕긴디 을마나 더우까?”
“오토바이를 타고 갈 때는 잘 모르는데 가다가 서면 더위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아 엄청 무덥거든요.”
“그라제 잉! 그란디 으째 날씨가 가문 갈수록 더 무덥고 더 뜨구와지드랑께! 그란디 오늘은 멋을 갖고 왔는가?”
“문중(門中)에서 우편물이 한 통 왔네요.” “그랬어? 아마 우리 집안에 모임 있다고 안내장 보냈는 갑구만.” 하시더니
“어야! 내가 자네한태 주스를 한잔 맹글어 주꺼잉께 째깐 지달려 보소 잉!” “주스를 만들어 주신다고요?”
“금방 맹글아 주꺼잉께 째깐 지달리고 있어!”하고 주방으로 들어가자 옆에 계신 할머니께서“아니 저 양반이 바쁜 사람 잡어노코 멋을 할라고 저라까?”하며
곤란한 표정을 지으신다. “어르신! 저 오늘은 조금 바쁜데 주스는 다음에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이 사람아! 째끄만 지달리문 되꺼인디 그것을 못 참고 그래싼가? 지왕 지달렸는께 쪼끄만 더 지달려 봐!”하며
믹서로 무엇을 하는지‘들! 들! 들! 들!’소리가 들리는데 옆에 계신 할머니의 표정은 갈수록 더 굳어지신다.
“지금 어르신이 무슨 주스를 만들고 계시나요?” “나도 몰라! 영감이 있다가문 이상한 짓거리를 해 싼께! 오늘은 또 먼 쥬스를 맹근다고
저 야단을 쳐싼고!”말씀이 끝나자마자 “어이! 인자 다 되얏네 한잔 마셔보소!”하며 믹서기를 가져와 컵에 따르셨다.
“어르신! 조금만 주세요! 금방 아랫마을에서 냉수를 한 컵 마시고 왔거든요.” “이 사람아! 기왕 얻어 묵을라문 한 컵 주라고 해서 마셔!
이러나저러나 얻어 묵기는 마찬가지 아닌가?”하셨다. “주스 맛이 참 좋네요.” “참말로 존가? 그라문 주스에서 먼 맛이 난 것 같은가?”
“참외 맛이 나는 것 같은데요.” “그래~에! 그라고 또 다른 맛은 읍는가?” “수박 맛도 약간 난 것도 같은데 잘 모르겠네요.”
“자네가 잘 알구만 그래! 내가 첨에 참외를 믹서에다 갈았는디 색이 흐윽해! 그래서 색깔 이빼지라고 수박을 째깐 넛단마시!
그랑께 맛이 더 조은 것 같제~잉!” “그래서 그런지 조금 단맛이 있네요.” “그란디 멋이 안 씹힌가?” “글쎄요. 씨가 씹히는 것 같은데요.”
“내가 참외씨랑 수박씨랑 내불기 아까와서 너부렇단 마시 그란디 맛이 으짠가?” “씹히는 감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데
씨를 넣으려면 믹서를 몇 바퀴 더 돌리셔야 되겠네요.” “그래 잉! 인자 알았응께 낼은 수박하고 참외를 좀 마니너서 주스를 맹글아 갖고
동네 사람 마시라고 줘야쓰것네!”하시자 옆에 계신 할머니“아니 참외하고 수박은 기양 묵어도 맛있는디 멋할라고
그것을 믹사에다 갈아갖고 동네방네 나나줄라고 그라요? 나나줄라문 기양 주든지 말든지 하제! 영감탱이가 헐 일이 읍응께 별 짓거리를 다하고 있어!”
지금쯤 내고향에는 청포도가 익어가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