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품 삯 3천원

큰가방 2005. 10. 6. 22:37
품 삯 3천원


10월로 접어든지 벌써 5일 째가 되었으나 청명하고 맑은 하늘대신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한 어두컴컴한 하늘에 조금 쌀쌀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10월에는 언제나 맑고 청명한 날씨가 계속되었는데 금년에는 이상한 날씨로 변해버린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은 허리케인 그리고 중국은 태풍 때문에 수많은 이재민이 생겼다는데 그 나라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나라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오늘도 행복이 가득 담긴 우편물을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가득 싣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천천히 달려가는데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 둘 씩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시골마을에서는 갑자기 비상이 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한적한 도로며 마을의 공터 또는 마당에 널어놓은 콩이며 고추 참깨 그리고 벼를 갑자기 내리는 비에 젖기 전 거둬들여야 하기 때문에 곡식에 우선 비가 맞지 않도록 덮어 놓을 비닐을 들고 달려 나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도 계시고 곡식 자루를 가지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마을의 아주머니도 계십니다. 그런데 마을의 한쪽에서는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는데도 벼를 말리려고 기다란 망사를 시멘트 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에 벼를 널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겨울 김장 때 사용할 쪽파가 벌써 많이 자랐네요! 멀리 보이는 산이 일림산이랍니다.


“아니? 이렇게 비가 내리고 있는데 어떻게 하려고 벼를 널고 계십니까?”하고 물었더니 “어쩔 수 없어요! 이 벼는 방금 논에서 수확하였기 때문에 축축한 벼인데 한꺼번에 쌓아놓으면 금방 썩어버릴 수 있거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펴 놓을 수 밖에는 없어요!”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늘에서 농민들에게 기합 주는 날인가 봐요!”하였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하고 대답 하는 사이 어느새 비는 그치고 말았습니다. “정말 오늘은 집배원 아저씨 말처럼 하늘에서 우리에게 기합 주는 날인가?”하시는


시골마을 아저씨의 말씀을 듣고 빙긋이 한번 웃어보면서 도착한 곳은 전남 보성 회천면 객산리 청포마을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저는 청포마을 우편물 배달을 모두 마치고 다음 마을을 향하여 달려가려다 갑자기 무엇인가 빠진 듯한 서운한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상하다? 내가 무엇을 빠뜨렸지?”하고 잠시 생각하다 “참! 저쪽 할머니 약을 안 갖다 드렸구나!”하며 다시 할머니 댁으로 향합니다. 그러니까 어제의 일입니다. 어제도 오늘처럼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이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데다

 

* 담 너머 까지 가지를 길게 늘어 뜨린 단감 나무랍니다.  

 

바람까지 조금씩 불어와 제법 쌀쌀한 기분이 드는 날씨였는데 저의 오토바이가 지나가자 누군가 “에! 말이요! 우체부 아저씨!”하며 부지런히 저의 오토바이 뒤를 쫓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 오토바이를 잠시 세우고 “누가 나를 부르지”하며 뒤를 돌아보았는데 할머니 한 분께서 지팡이를 하늘로 높이 쳐들었다 땅을 짚었다 하시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저에게 달려오시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 제가 그쪽으로 갈 테니까 달려오지 마시고 그냥 거기 서 계세요!”하고 얼른 할머니 앞으로 달려가


“할머니!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하고 물었더니 “내가 아저씨하고 타협할 일이 잔 있어서 그러요!”하십니다. “무엇을 타협하시게요?” “다름이 아니고 내가 천포 보건소에서 약을 타다 먹는 단 말이요! 그란디 요새는 보건소가 문을 닫아 불고 안 열어! 그래서 으짠 일인가? 잔 알아 봐 주시요!”하셔서 “할머니! 보건소 소장님께서 지난 일주일 동안 서울에서 교육이 있었나 봐요! 그래서 교육을 다녀오시느라 문을 열지 못했나 봐요! 오늘은 문을 열었던데요!”하였더니

 

*콩 밭을 지키는 노란 비옷을 입은 허수아비랍니다. 손에는 스치로폼 철퇴를 들고 있는 것 일까요?


“오!~오! 그래 잉! 그랑께 내가 약을 타올라고 몇 번을 보건소에 갔는디 문이 잠가져서 약을 못 타오고 말었단께! 그라문 아저씨가 내일 오면서 내 약을 잔 타다 주문 어짜것소? 내가 아저씨 품삯은 넉넉하니 드릴 랑께 내 약 잔 타다 주씨요!” “할머니께서 무슨 약을 드시는데요?” “보건소 가서 내 이름만 들먹이면 그냥 약은 줄 것 잉께 걱정하지 말고 내 약 잔 타다 줘 잉!” “할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나~아? 나는 김영덕 이여! 보건소 가서 그냥 김영덕 이라고 말 만 하문 약은 줄 것이여!


그라고 약은 2천원 어치만 지어주라고 그라문 되야! 내가 아저씨 품삯은 많이 드리께!” “할머니! 그럼 품삯은 얼마나 주시려고요? 제 품삯은 조금 비싼데!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와따~아! 심바람을 해 주문 당연이 품삯을 줘야 제~에! 그란디 얼마를 주까~아?” “할머니! 제가 할머니 성함을 여기에 적었으니까요! 약은 내일 가져다 드릴께 걱정하지 마시고 집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아시겠어요?” “그란디 아저씨 품삯은 을마를 줘야 되야?” “할머니! 품삯 달라는 말은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이에요!”

 

*회천면 봉강리 봉서동 정자랍니다. 여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점심과 저녁 식사까지 하시던 곳인데 요즘 바쁜 철이다 보니 봉선화 꽃 만 홀로 정자를 지키고 있네요!  

 

“알았어! 그라문 내일 꼭 약을 타다 줘야 되야  잉!”하며 다짐을 받으시기에 “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하고 다음 마을로 향하는 길에 천포리에 있는 보건지소에 들러 “소장님! 객산리 청포마을 김영덕 할머니께서 약을 지어 보내달라고 부탁하시던데 약을 2천원 어치 지어달라고 하시네요!”하였더니 “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하며 전산으로 무엇인가 조회를 하더니 잠시 후 약을 지어가지고 나오면서 “약은 한 달 동안 드실 약이고요! 여기 써 있는 대로 하루에 네 번 드시라고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약값은 9백 원이에요!”하기에 “할머니께서 약을 2천원 어치 지어달라고 하시던데요!”하였더니 보건지소 소장님께서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며 “할머니께서 아마 약을 많이 지어달라고 그러시는 것 같아요! 약이 한 달 분이니까 이 약 다 드시고 나면 전화해 달라고 하세요! 그러면 다시 지어서 보내드릴게요!”하시는 것 입니다. 그래서 약을 지어가지고 왔는데 깜박 잊고 그냥 지나치려다 할머니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얼른 할머니 댁 앞으로 달려갔더니

 

*회천면 봉강리 모원 마을 앞 들판과 야산의 녹차 밭이랍니다. 


할머니께서는 대문 앞 의자에 앉아 저를 기다리고 계시는 중이었습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여기 어제 할머니께서 부탁하신 약 지어가지고 왔어요! 저 무척 예쁘지요?” “아이고! 이쁘고 말고! 그란디 약값은 을마를 받어?” “약값은 9백 원이라고 그러던데요! 그리고 약은 한 달 동안 드실 약인데 하루에 네 번 잡수시면 된다고 하데요!” “네 번 먹는 것은 나도 알아!” “할머니! 여기 약 받으시고요! 그리고 잔돈은 여기 있어요!”하며 할머니의 약과 거스름돈을 할머니 손에 쥐어드리자 할머니께서는 가만히


저의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들어있는 우편물 사이에 무엇인가를 찔러 넣으시는 것입니다. “할머니! 지금 무엇하고 계세요?” “아니~이! 아저씨한테 미안해서 아저씨 가다가 음료수라도 한 잔 사 자시라고 내가 여기다 돈 좀 쪼금 넣었어!” 그래서 할머니께서 우편물 사이에 찔러 넣으신 돈을 꺼내보았더니 꼬깃꼬깃 접어진 천 원짜리 3장이었습니다. “할머니! 이러시면 안돼요! 이 돈은 잘 놔 두셨다가 나중에 할머니 사탕 사서 잡수세요! 아시겠어요?” “그라문 쓰간디 이라고 아저씨가 내 심바람을 해 줬는디 품삯은 줘야제~에!”

 

*회천면 회령리 삼장마을 앞 벼를 베어낸 논에서 겨울 김장용 쪽파 씨 파종이 한창이네요! 

 

“할머니!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시지만 저도 할머니 같은 어머니가 계셨어요! 그리고 제가 할머니를 위해서 해 드릴 수 있는 일은 이런 심부름 밖에는 없어요! 그런데 제가 이 돈을 받으면 되겠어요?” “그라문 내가 서운해서 쓰간디? 돈이 작어서 그래~에?” “할머니! 돈이 작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니까요! 정 이러시면 다음부터 할머니 심부름 절대로 안 해 드립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아니! 그라문 안되제~에! 그라문 다음에 또 아저씨가 내약 지어다 주꺼여?” “할머니! 그런 심부름이라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언제든지 말씀만 하세요! 제가 다 해 드릴게요! 자! 할머니하고 약속!”하며 저의 새끼손가락을 할머니께 내밀었더니 할머니께서는 수줍은 듯 빙그레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내미시더니 다음에 또 심부름을 해 드리기로  약속을 하자 그때서야 안심하셨다는 듯 80살도 훨씬 넘으신 나이에 저의 가슴에도 못 미치는 조그만 키를 이기지 못한 채 금방이라도 땅에 닫을 듯

 

* 저의 어린시절 장난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간식거리가 되었던 탱자가 노란 색으로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굽어진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하신 채 할머니 댁으로 천천히 걸어가시는 모습을 바라보니 문득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애잔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다음에 또 심부름 해 드릴께 걱정하지 마세요! 아시겠지요!”하며 저는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다음 마을을 향하여 천천히 달려갑니다. 그리고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은 짙은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면서 푸른 하늘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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