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밀감 세 개

큰가방 2005. 10. 13. 00:30
밀감 세 개


10월의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하늘은 청명하고 맑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너무나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흰 구름은 돛대도 없는 하얀 배를 만들고는 지나가는 바람에 맡겨 둔 채 어디론가 정처 없이  떠나가고 있는데 꼬리가 빨간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지나가는 흰 구름을 따라 투명한 날개를 펄럭이며 천천히 따라 가고 있습니다. 오가는 가을바람에 한들거리던 하얀색 연분홍색 그리고 붉은 색 코스모스의 꽃잎들은 천천히 한잎 두잎 예쁜 꽃잎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리며 지나가는 가을을 섭섭해 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검은색 가느다란 꽃씨는 늘어뜨리며 익어가는 가을바람에게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가을바람 아저씨! 왜? 가을은 이렇게 빨리 찾아와 내 하얀색 연분홍색 붉은 색 옷을 모조리 벗겨가는 것일까요? 너무나 빨리 찾아오는 가을이 정말 미워요!” “가을이 빨리 찾아오는 것은 아니란다! 네가 그냥 가을이 빨리 찾아오는 것으로 느끼고 있을 뿐이지! 그리고 네가 가지고 있는 까만 꽃씨는 내년에는 더욱 예쁜 꽃으로 피어날 것 이란다! 너는 그래도 까만 꽃씨라도 남기고 떠나지 않니? 나는 그저 지나가는 바람일 뿐인데!” “아!~아! 그렇군요! 가을바람 아저씨! 고마워요!”하는 코스모스의 속삭임을 들으면서

 

*지금 시골마을에는 벼를 말리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저는 오늘도 행복과 사랑이 담긴 우편물을 빨간 오토바이에 가득 싣고 달려온 곳은 때로는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한가한 시기에는 농사도 지어가며 온 마을 사람들이 마치 한 가족처럼 사이좋게 살고 있는 어촌과 농촌을 겸한 전남 보성 회천면 객산리 청포마을입니다. 그런데 청포 마을입구에서 이상하게 저의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가득 풍겨 나오기 시작합니다. “킁! 킁! 이상하다? 이게 무슨 냄새지? 부침개 냄새 같기는 한데! 요즘처럼 바쁜 농번기 때 누가 부침개를 지지고 있을 리가 없는데 무슨 고소한 냄새지? 내 코가 잘못되었나?”


하며 냄새가 나는 쪽으로 제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아저씨! 어서오씨요~오! 안 그래도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서 혹시 우체부 아저씨가 오신다냐? 어쩐다냐? 하고 아저씨를 기달렸는디 마침 잘 오셨구만! 얼렁 이쪽으로 오씨요!”하시며 청포마을의 할머니와 아주머니 몇 분께서 가스렌지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놓고 그 위에 밀가루 반죽을 하여 갓 뽑아온 어린 쪽파를 가지런히 놓은 다음 맛있게 생긴 부침개를 만들고 계시는 중이었습니다. “아니? 오늘이 무슨 날이에요?

 

* 맑고 청명한 가을 햇살에 고추도 함께 말려야 하겠지요?


 

요즘처럼 바쁜 때 이렇게 마을 사람들이 모여 부침개를 만들고 있다니 이상한데요?” “아저씨~이! 조그만 빨리 오시지~이! 그랬으면 싱싱한 회도 드실 수 있었는데!” “오늘이 무슨 날인데 싱싱한 회가 있고 그래요? 혹시 마을 사람들 모두 가을바람이 나셨나?”하는 저의 너스레에 “아니 가을바람 난 것이 아니고 요새 통 고기가 안 잡히더니 오늘은 고기를 많이 잡았거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기분이 좋아 이렇게 오늘 잡은 고기로 회를 만들어 먹다 조금 부족해서 부침개를 만들고 있는 중이여!


그란디 부침개가 맛이 있을란가 몰르것네? 그나저나 아저씨! 이리 앉어 어서!”하시며 저를 무척 반기십니다. “맛있는 회가 있으면 저의 텔레폰(휴대전화)으로 전화를 하셔야지 저도 없는데 그걸 모두 잡수셨어요?” “와따~아! 오늘 으뜬 양반이 이 동네로 편지 배달하러 올지 알 것이여? 그랑께 전화를 못하제~에! 안 그래?”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에 “할머니! 그건 농담으로 한번 해 본 말이에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런데 부침개는 언제 주실 거 에요? 저 지금 배가 무척 고픈데!” “와따~아! 그새를 못 참고 그래쌓네”하시며

 

* 밝은 가을 햇살에 석류도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넙적한 접시에 노랗고 둥그런 커다란 부침개 한 장을 가져다주십니다. 그래서 젓가락으로 부침개 한 조각을 베어 물었는데 밀가루 반죽에는 김치와 갖가지 양념 그리고 새로 뽑아온 쪽파의 향기가 가득한 아주 맛있는 부침개였습니다. “아저씨! 여그 술도 있는디 술 한 잔 만 하고 가시제?” “맛있는 술도 있어요? 그럼 큰 통에 한 통 담아주세요!” “아니? 왜? 술을 큰 통에 담어?” “지금은 제가 술을 마시면 안 되니까 이따 우편물 배달 끝나고 우체국에 돌아가서 우리 직원들과 함께 나눠마시게요!”


“아이고! 그라고는 없어! 나는 또 뭔 소린고 했네!”하시는 청포마을 할머니들과 맛있는 부침개를 먹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저는 다시 우편물 배달을 하기 위하여 빨간 오토바이가 서 있는 곳으로 돌아왔는데 그 옆에 엊그제 제가 회천 천포 보건진료소에서 약을 지어다 드렸더니 품삯으로 3천원을 저의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찔러 넣으셨던 청포마을의 김영덕 할머니께서 저를 기다리고 계시다 저의 얼굴을 보시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며 “아저씨! 여그 이것!” 하시며 저의 손에 가만히 쥐어주신 것은 꼬깃꼬깃 접어진

 

*보름달 보다 약간 작은 노란 호박이 점점 늙어가고 있네요!


5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였습니다. “아저씨! 먼자는 돈이 너무 적어서 그랬제~에? 그래서 오늘은 돈 5천원을 갖고 왔응께 이 돈으로 아저씨 술이라도 한 잔 자셔! 잉!”하시는 할머니에게 저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나서 “할머니~이! 제가 할머니 심부름을 해 드린 이유는 이런 품삯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저는 그저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아 그냥 심부름을 해 드린 것 뿐이에요! 그런데 자꾸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정 이렇게 하시면 앞으로는 절대로 할머니 심부름을 해 드리지 않을 겁니다! 아시겠어요?”


하고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다 시피 하였더니 할머니의 안색이 갑자기 바뀌면서 “나는 돈이 적어서 그런지 알고 돈 5천원을 갖고 나왔는디 그것이 아닌갑네! 내가 너무 미안하고 서운해서 그랬는디 늙은이가 주책을 부렸는 갑구만!”하시며 거의 울상이십니다. “할머니! 이렇게 하지 않으셔도 저는 할머니 마음 잘 알아요! 그러니까 언제든지 저에게 부탁하실 일이 있으시면 말씀하셔요! 그 대신 이렇게 돈을 주시면 다음부터는 절대로 할머니 심부름 안 해드립니다. 아시겠어요?” 하였더니 잠시 망설이는 듯한 표정으로 서 계시던

 

*아직도 단감 나무에는 단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답니다.

 

할머니께서 갑자기 “그라문 아저씨! 여가 쪼그만 기달려 봐! 잉!”하시며 급히 지팡이를 끌다시피 하시며 할머니 집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아니? 할머니께서 무엇을 하시려고 급히 집으로 들어가시지?”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잠시 후 할머니께서 가지고 나오신 것은 갓난아기 주먹만한 크기의 밀감 세 개였습니다. “내가 암만 생각해도 아저씨한테 줄 것이  없네! 그래서 이것이라도 갖고 왔응께 이것이라도 자셔봐!”하며 저에게 내미는 밀감 세 개를 저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비록 갓난아기의 주먹만한 크기의 밀감 세 개 일지라도 저를 생각하는 할머니의 깊은 마음이 담겨있는 밀감인데 제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할머니! 고맙습니다. 밀감 맛있게 먹을게요! 그리고 다음에 저에게 또 부탁할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우리 예쁜 할머니 제가 한번 업어드릴까?”하는 저의 너스레에 할머니께서는 수줍은 듯 얼굴이 빨개지시며 “아이고! 냅 둬!”하시면서 지금까지의 빚을 모두 벗어버렸다는 듯 홀가분한 표정으로 환히 웃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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