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누가 보낸 돼지고기여?"

큰가방 2005. 9. 19. 15:07
 

“누가 보낸 돼지고기여?”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이 가까워질수록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들은 도시에서 고향의 부모님께 또는 친척에게 보내드리는 크고 작은 선물을 배달하느라 평소보다 훨씬 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부피가 큰 소포는 일단 우체국에 보관하고 부피가 작은 소포와 등기 그리고 일반우편물을 가득 싣고 열심히 시골마을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시골마을의 한적한 도로나 마을의 공터에는 밭에서 뽑아온 콩대를 가지런히 늘어놓고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며 이미 바짝 마른 콩대는 경운기나 화물차로 콩 대위를 자꾸 왔다 갔다 하면서 콩알 털어내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바짝 마른 콩대위에 경운기나 화물차가 지나가면 노랗게 잘 익은 콩알들이“톡! 톡!”소리를 내며 튀어나오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저의 마음은 왠지 모를 즐거움과 가을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되며 시골마을로 향하는 농로 옆 잡초 밭에 어느새 커다랗게 키가 커버린 억새의 하얀 솜털이 수줍은 듯 피어나 지나가는 바람결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어 이미 우리 곁에 찾아온 가을이 점차 익어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합니다.  저는 오늘도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열심히 우편물을 배달하다 보니 전남 보성 회천면 봉강리 모원 마을로 들어섭니다.


그리고 모원 마을의 우편물 배달이 거의 끝나갈 무렵 마을의 위쪽에서 살고 계시는 백춘선 씨 댁에 부산에서 보내온 현금이 들어있는 등기편지를 배달하려고 마당으로 들어가 “빵! 빵!”하고 오토바이 소리를 내 보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큰소리로“계십니까? 아무도 안 계세요?”하고 주인을 불러보았지만 역시 대답이 없습니다. “요즘처럼 바쁜 때 집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그나저나 어떻게 하지? 내일 모레가 추석인데 올해 추석이 빠른데다 농작물 수확이 늦어 돈이 필요하실 것 같은데!


그렇다고 현금을 문이 활짝 열려있는 방에 함부로 놓아둘 수도 없고?”하는 생각을 하다 우편물 도착통지서를 작성하여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두고 다음 마을로 향합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우편물 배달을 끝내고 우체국에 돌아와 다시 부피가 큰 소포 우편물을 배달하려고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소포를 가득 싣고 우체국에서 가까운 마을부터 소포를 배달하다보니 저는 또 다시 봉강리 모원 마을로 들어섰습니다. 모원 마을에서 소포 배달을 끝내고 나서“참! 백춘선 씨 댁에 현금등기가 있었지!”하는 생각을 하고


다시 백춘선 씨 댁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영감님께서“아니! 아까 등기가 있어 왔다 갔다고 뭣을 써 놓고 갔드만 또 왔는가? 요새 명절 땀새 바쁘제? 고생해 쌓네!”하시며 활짝 웃는 얼굴로 저를 반기십니다. “아까는 어디 가셨어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 우편물 도착통지서를 써 놓았거든요!” “그랬는가? 요 위에 비닐하우스에서 풍로 질을 하고 있었는디!” “그러셨어요? 제가 오토바이로 빵빵 소리를 냈는데 그러면 밖으로 좀 나와 보시지 그러셨어요?”


“금메! 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는 해서 내다 봤는디 암도 안보여! 그래서 도로 하우스로 들어가 부렇제~에!” “어르신! 부산에서 김진숙 씨가 돈을 보냈네요! 10만원이 맞는지 세어보세요!” “아따~아! 잘 맞것제~에! 우리 제수씨가 올 추석에는 바뻐서 못 와 미안하다고 돈 쪼금 보낸다고 전화왔드만 오늘 돈이 왔는 갑구만!”하시며 돈을 세는 영감님의 얼굴에는 돈이 왔다는 즐거움 보다 동생이 추석에 고향에 찾아올 수 없다는 서운함이 더 큰 것 같은 어두운 얼굴입니다. “어르신! 저 그만 가 볼게요! 즐겁고 편안한 추석되세요!”


“고맙네! 술이라도 한 잔하고 가문 좋을 것인디! 오토바이 타고 댕긴께 술도 못 권하고 미안하시!”하시는 영감님의 전송을 받으며 저는 또 다시 부피가 큰 소포를 몇 차례 더 배달하고 나서야 우체국에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우체국에 귀국한 후 배달하지 못한 등기와 소포는 담당자에게 인계하고 오늘 배달이 끝난 등기와 소포는 전산자료에 입력하고 있는데 갑자기 저의 핸드폰의 벨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예~에! 류상진입니다!” 하고 전화를 받는 순간 목소리가 컬컬한 영감님께서


“어이~이! 나여~어! 나~아!” “예~에? 누구신데요?” “아~이 사람아! 나란 말이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나 여그 봉강리 모원 사는 백춘선이여!” “예~에! 어르신!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아까 자네가 부산서 우리 제수씨가 보낸 돈 갖다 주고 갔제?” “예! 그런데요? 혹시 돈이 틀리던가요?” “아니~이! 그것이 아니고 자네가 왔다 간 뒤로 뭔 되야지 고기하고 술이 우리 집 마루에 있드란 마시! 그란디 그것은 누가 보낸 것이여?” “예~에? 저는 돼지고기와 술은 배달한 적 없는데요!


혹시 어르신이 잘못 알고 계신 것 아닌가요?” “아니여! 자네가 왔다간 뒤로 내가 다시 비닐하우스에 갔다 왔는디 갖다 와서 본께 되야지 고기하고 술이 마루에 있드란 마시! 그란디 그것을 누가 보냈는지 알 수가 없어! 혹시 자네는 알고 있는가 싶어 전화해 보네!” “그랬어요? 그런데 어르신! 저는 돼지고기와 술은 배달한 일이 없거든요! 다른 택배회사 직원이 배달해 놓고 갔는지 모르겠네요!” “그러까? 그란디 이것을 누가 보냈는지 알 수가 있어야제?” “어르신 그러면 돼지고기 포장지는 버리지 마시고 우선 보관해 놓으세요!


내일 제가 그쪽으로 우편물 배달 나가면서 한번 들려볼게요! 아시겠어요?” “그라문 그럴란가?” “예! 그렇게 하세요! 안녕히 계세요!”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약 5분이 지난 후 또 다시 핸드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예~에! 류상진입니다!” “나~여! 나! 여그 봉강리 모원 사는 백춘선이여! 나 알것제?” “예! 방금 전에 전화하셨던 어르신이시지요? 그런데 무슨 일로 또 전화하셨어요?” “으~응! 다름이 아니고 금방 내가 말한 되야지 고기하고 술은 우리 집사람이 낼 모레 추석에 쓸라고 사다 놨다고 그라드만!”


“그럼 할머니께서 사다 놓은 술과 돼지고기였어요?” “금메! 그란다 그러네! 그랑께 낼 자네 우리 집에 안와도 되것네! 알것제? 바쁜디 무단히 전화를 자꾸 해서 미안하시!” “예! 알았습니다!” 하고 전화는 끊겼습니다. 밤 8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아직 퇴근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저에게 시골마을 영감님에게 걸려온 전화는 귀찮다는 생각보다 아직도 집배원들은 시골마을의 연세가 많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에게는 늘 가족과 같은 마음편한 상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오늘 하루의 일과도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저의 정원에서 촬영한 긴 꼬리 제비나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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