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나쁜 사람들!"

큰가방 2005. 9. 29. 21:58
“나쁜 사람들!”


9월 하순으로 접어들면서 하늘은 점점 더 청명하고 아름다운 가을 색을 띠기 시작합니다. 도로가에 하얀색 연분홍색 붉은색 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내고 바람에 살랑대는 코스모스의 예쁜 미소를 바라보며 어느새 가을이 성큼 우리 곁에 찾아왔음을 느껴봅니다. 시골마을로 향하는 넓은 들판에서 지나가는 고추잠자리를 불러 세워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가 다르게 누런빛으로 변해가는 벼를 바라보며 가을이 천천히 익어가고 있음을 느껴봅니다. 시골마을 입구에 하늘 높이 서있는 단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하루가 다르게 수줍은 색시 마냥 조금씩 노란색으로 변해가는 단감을 바라보며


가을이 우리 곁에 살며시 찾아와 웃고 있음을 느껴봅니다. 시골집 마당에 빨갛게 잘 익은 고추를 널어 말리는 할머니의 잦은 손놀림을 바라보며 풍요롭고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 할머니의 손끝에 걸려있음을 느껴봅니다. “가을보다 더 좋은 계절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저는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우편물을 가득 싣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열심히 달리다 보니 어느새 전남 보성 회천면 봉강리 봉서동 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봉서동 마을 중간쯤에 살고 계시는 할아버지 댁 대문 앞에 오토바이를 세운 다음 “빵! 빵!”하고 오토바이 소리를 내자 얼른 할아버지께서 대문을 열고 나오십니다.

 

*가을의 모습!  들판의 누렇게 익은 벼를 콤바인을 이용하여 수확하고 있네요! 늘 가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어? 오늘이 토요일인데도 편지 배달을 하는가? 공무원들은 토요일 날 쉰다고 하던데?” “원래는 쉬어야 하는데 집배원들이 토요일이라고 모두 다 쉬어버리면 우편물은 누가 배달하겠어요? 그래서 교대로 쉬는 사람은 쉬고 배달하는 사람은 배달하고 그래요!” “그나저나 쉬는 날인데 고생해쌌네!” “어르신 댁에 소포가 두 개 왔네요!”하며 오토바이 적재함에 들어있는 조그만 박스 두개를 꺼내어 할아버지 댁 마당으로 들어서자 마당 한쪽에서 잘 말린 굵디굵은 붉은 고추를 손질하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우리 딸이 어지께 소포를 보낸다고 하드만 금방 와부렇네!”하시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저를 반기십니다. “할머니! 저 기다리고 계셨지요? 그렇지요?” “아니여! 공무원들은 토요일 날 쉰다고 그래서 소포가 낼 모레나 올란가? 그라고 있었제~에!” “에~이! 아닌 것 같은데! 할머니! 속으로는 저를 기다리고 계셨지요? 그렇지요?” “아니랑께~에!” “할머니! 고추가 정말 굵고 좋네요! 그런데 그 고추 시장에 내다 파실 건가요?” “아니여! 인자 고추방아 찧어서 우리 아들도 주고 딸한테도 조금 보내고 그래야제~에!” “고추 말리시느라 정말 고생하셨겠네요?” “고생은 뭔 고생이간디?”하고 대답하시는 할머니의 손은 연신 붉은 고추 꼭지 따내는 작업이 한창이십니다.

 

*가을이면 언제나 우리를 반겨주던 코스모스가 금년에도 어김없이 예쁜 꽃을 활짝피워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습니다.


“어르신! 소포가 두개 왔거든요! 여기 마루에 두고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하고 대문 밖으로 막 나오려는데 할아버지께서 “어이! 그란디 소포 한개는 우리 딸이 보낸 것이 분명한디 한개는 으디서 왔으까?” 하고 물으십니다.  그래서 소포 보낸 사람 이름을 살펴보았더니 ‘00인삼 조합’이라는 이름이 써있어 “어르신 건강보조 식품 회사에서 보낸 것 같네요!”하였더니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께 “당신 혹시 누구한테 뭔 약 보내라고 그랬어?”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금방까지도 싱글벙글 미소를 짓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엊그저께 으디서 전화가 왔는디 약을 석 달 만 묵으면 허리도 펴지고 몸도 건강해지고 그란다고 묵어보라 그래서 그라문 한번 보내라고 했는디 그 약이 왔는 갑구만!”하십니다. 그러자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화를 버럭 내시더니 “아니!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 전화가 왔다고 약을 보내라고 그래? 자식들이 사다 준 약은 아무리 묵어 봐도 소용없다고 안 묵고 차근차근 챙여 놓고 전화로 약을 사라 그란께 약을 보내라고 그래! 그 따위로 하니까 허리가 자꾸 더 굽어지고 그러제~에! 이 약 좀 먹는다고 굽어진 허리가 펴질 것 같아? 으째 이라고 사람이 깝깝하까? 그 따위로 하니까 허리가 더 굽어지는 거여! 알았어?

 

*봉선화 꽃 씨도 주렁주렁 열려 있어 더 풍요로운 가을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라고 그 사람들 정말 나쁜 사람들이여! 약도 되지도 않은 것을 만병통치약 같이 선전을 해 갖고 팔아먹는 사람들 말이여! 그나저나 인자 약이 와 부렇는디 어떻게 할 것이여? 잉?”하시며 마구 할머니를 나무라십니다. “어르신! 왜 할머니께 그렇게 야단을 치세요? 제가 보기에는 할머니께서 잘못하신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전화가 와서 약 광고를 했다면 누구든지 속아 넘어가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자꾸 할머니께 야단만 치시면 어떻게 합니까? 할머니 너무 야단치지 마세요!” “내가 자네한테 하는 소리가 아닌께 자네는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소!”


“어르신! 저도 알아요! 그런데 할머니께서 허리가 굽어지고 싶어서 굽어지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할머니 허리가 굽어졌네! 어쨌네! 하시며 야단을 치시면 할머니께서 얼마나 서운하시겠어요?” “아니 내가 화를 내는 이유는 약값이 아까워서가 아니고 우리 애기들이 즈그 엄마 생각한다고 좋다는 약은 다 사서 보낸단 마시 그란디 그 약은 묵어봐야 소용없다고 안 묵어! 그러면서 다른데서 약을 사다 묵는디 무슨 효과가 있어야 말이지! 그렇게 속았으면 이제는 안 속아야지! 그런데 또 약이 왔으니 이일을 어떻게 하문 좋겠는가?” “할머니께서도 오죽 답답하시면 그러시겠어요?

 

*비닐 하우스 안에는 아직도 붉은 고추가 주렁 주렁 매달려 있네요!


어르신 이 소포는 제가 다시 우체국에 가지고 가서 반송시켜 드릴게요! 그러면 되겠지요? 그리고 할머니! 다음에 또 전화가 와서 몸이 잘 낫는 약이라며 사라고 하면 절대로 사지 마세요! 그 사람들이 정말 할아버지나 할머니들 몸에 잘 듣는 좋은 약을 판매한다면 뭐 하러 전화를 하겠어요? 가만있어도 소문을 듣고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구름처럼 모여들 텐데요! 안 그래요? 할머니!” “아저씨 말을 들어  본께 아저씨 말이 맞구만! 그란디 그 사람들 말을 들어 보문 내가 아픈 데는 다 잘 낫는다고 그라데 그래서 약을 보내라고 그랬제~에!”


“하여튼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그리고 이 소포는 제가 다시 가지고 갈게요! 아시겠어요?” “참말로 그래도 된단가? 그라문 우리는 손해 안볼까?” “아니 약을 받기 싫어 안받고 그냥 반송시키는데 무슨 손해를 보겠어요?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아니! 그래도 왜? 약을 보내라 그래놓고 약을 다시 반송했소? 그란께 약 값 내놓으시오! 그라문 어짜까?” “그럴 수는 없어요! 그것은 법으로도 금지되어 있거든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 그만 가 볼게요! 안녕히 계세요!”하고 할아버지 댁 대문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는 하얀 뭉게구름이 예쁜 미소를 지으며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산은 아직도 푸른데 가을을 맞은 들깨는 점점 누런 색으로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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