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가 헛일 했어!”
일주일 내내 계속해서 많은 비를 뿌리며 우리를 괴롭히던 장마전선이 잠시 외출을 갔는지 오늘은 하늘에서 밝고 강한 햇볕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모처럼 강한 햇볕은 무더운 여름을 예고라도 하듯 제가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정리하여 시골마을로 배달하기 위해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가득 싣고 우체국을 출발할 무렵부터는 저의 몸에서는 비 오듯 땀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비가 올 때는 제발 해 좀 나왔으면 좋겠네! 하다 오랜만에 해가 뜨니까 푹푹 삶으려는 모양이여!”하시는 시골마을 영감님 말씀에
“정말 그러네요! 이제 장마가 그치면 무더운 여름이 되겠지요?” “날이 무덥더라도 제발 장마 좀 그쳤으면 좋겠네! 계속해서 몇날 며칠을 비가오니 밭에 채소가 남아나는 것이 있어야지!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나겠어!” “그래도 여기는 물난리가 나지 않아 얼마나 다행입니까? 경기도와 강원도 쪽에는 물난리가 나서 야단인데요.” “금년 장마는 유난히 비 오는 날도 많고 비도 많이 내리고 물난리도 많이 나고 그나저나 큰일일세 그려!”하시는 영감님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면서‘이제는 정말 장마전선이 소멸되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하며 저는 오늘도 부지런히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우편물을 배달하며 달려온 곳은 전남 보성 회천면 동율리 만수마을입니다. 저는 만수 마을 중간쯤에 살고계시는 영감님 댁 마당으로 들어가 몸이 불편하여 늘 마루에 자리를 깔고 앉아 밖을 내다보고 계시는 영감님께“어르신! 안녕하세요? 어제 충남 공주로 보내달라고 부탁하신 소포 영수증하고 잔돈 그리고 소포의 주소 가져왔거든요! 잔돈 한번 세어보시겠어요?”하였더니 “으응! 고맙네! 날씨도 안 좋고 그런디 자꾸 자네한테 심바람 만 시켜싸서 미안하시!”하고
대답하는 영감님 얼굴이 평소처럼 활짝 웃는 얼굴이 아닙니다. “어르신! 무엇이 잘못되었어요? 안색이 별로 좋지 않네요!” “왜? 안색이 안 좋아? 내 얼굴이 항상 이렇지!” “그게 아닌 것 같은데요! 다른 때 같으면 활짝 웃고 그러시는데 오늘은 무슨 근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허! 허! 헛! 그런가? 그런디 소포 언제 보냈는가?” “어제 보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나요?” “사실은 내가 주소를 잘못 가르쳐 주었어 그래서 자네가 헛일했어! 헛일!” “예~에? 헛일을 해요?”
“나도 나이를 묵어 논께 이라고 정신이 없단 마시! 그나저나 수고했네!”하십니다. 그러니까 어제의 일입니다. 어제도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며 많은 비가 쏟아 붓다 소강상태를 보이다 이슬비가 내리다 하는 굿은 날씨였는데 영감님 집 앞을 지나갈 때 쯤에는 갑자기 소나기처럼 많은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어~이! 나 좀 보고가~아!”하고 부르기에 뒤를 돌아보았더니 영감님께서 한손에는 지팡이를 땅에 짚고 한손에는 우산을 들고 불편한 몸으로 마당에 서서 저를 부르고 계시는 중이었습니다.
“어르신! 왜? 그러세요?” “내가 자네한테 부탁할 것이 있단 마시!” “무엇인데요? 또 녹차 보내시게요?”하는 저의 대답에 “내가 부탁할 것이 무엇이 있것는가? 녹차 밖에 더 있것는가?”하며 빙그레 웃으시기에 “또 녹차 주문 들어왔어요? 오늘은 어디로 보내시려고요?”하며 영감님 댁 토방으로 들어섰더니 영감님께서는 지난 봄 집 주위에 심어 놓은 차나무에서 부부가 함께 차 잎을 채취하여 손수 녹차를 만든 다음 비닐봉지에 잘 싸서 보관하여 놓은 100g들이 녹차 세 봉지를 꺼내 놓으며
“잠깐 기다려 보소! 주소를 찾아야 소포를 보내제! 그란디 녹차를 넣어 보낼만한 빈 박스가 없는디 우체국에 가문 빈 박스가 있을란가 몰르것네?” “빈 박스는 우체국에 가면 늘 준비되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데 녹차 담을 큰 비닐봉지 하나 없을까요? 오늘 따라 비가 많이 오는데 혹시 녹차에 비라도 맞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큰 비니루 봉투? 조금 기다려 봐!”하시더니 아래쪽이 약간 찢어져버린 제법 큰 비닐봉지를 가져오셔서 녹차 세 봉지와 영감님께서 건네주신 주소 소포요금을 비닐봉지에 넣고 묶은 다음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실었는데 “그란디 오늘 소포가 발송될란가 몰것네?” “어르신! 오늘 발송은 조금 힘들겠네요! 제가 오후4시 이전에 우체국에 들어가야 하는데 오늘 배달할 우편물이 조금 많거든요. 내일 발송하면 안 되겠어요?” “오늘 발송하나 내일 발송하나 마찬가진데 소포를 받을 사람 마음은 그렇지 않거든 받을 것은 빨리 받고 싶어 하거든 그래서 그런 거여! 그러면 내일 발송해주게! 그나저나 비까지 이렇게 많이 오는데 늘 수고를 끼쳐서 미안하시! 그리고 소포 보내고 주소는 다시 써야 하니까 잊어버리지 말고
꼭 가져다주게!”하셔서 “예! 잘 알았습니다.”하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우편물을 배달하다 생각해 보니 “날씨가 좋을 때 같으면 녹차를 오토바이에 싣고 다녀도 별 문제가 없겠지만 오늘 같이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비를 맞거나 봉지가 터지는 경우 녹차가 변질될 수도 있겠구나! 안되겠는걸!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녹차를 먼저 발송하고 난 후 우편물을 배달해야겠다!”하고 영감님께서 건네주신 녹차를 우체국 사무실로 가지고 가서 사무실 직원에게 녹차를 빈 박스에 넣고 잘 포장하여 발송하여 줄 것을
부탁하고 다음 마을로 우편물을 배달하러 갔었습니다. 그리고 우편물 배달이 끝나고 우체국에 돌아와 소포 접수 영수증과 잔돈 소포 수취인 주소를 챙겨 놓았다 영감님께 가져다 드렸는데 그 소포가 그만 주소를 잘못 쓰는 바람에 엉뚱한 곳으로 배달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녹차가 엉뚱한 곳으로 배달된 것은 어떻게 아셨어요?” “아까 녹차 받은 사람이 전화를 했드만 녹차를 보내줘서 고맙다고 잘 묵것다고 그 사람은 내가 자기한테 녹차를 선물로 보내준 것으로 알고 전화를 했는 모양이여!
그란디 다시 보내달라고 할 수도 없고!” “정말 그러시겠네요! 그런데 어쩌지요? 이제 다시 녹차를 돌려달라고 할 수도 없는데!” “이미 이렇게 된 일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잘못해서 그런 일이 생겼는데 그나저나 자네에게 심부름 해준 것도 고마운데 괜한 소리를 해서 미안허시!” “어르신! 제가 죄송합니다. 심부름을 잘해야 하는데요!”하면서 빨간 오토바이가 세워진 곳으로 걸어 나오며 바라 본 녹차 나무는 장마기간 동안에도 녹색 잎이 무성하게 쑥쑥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장마가 오래 계속되었어도 오이 꽃과 도라지 꽃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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