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저는 언제나 저와 함께하는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새로운 주인을 찾아 지난밤을 꼬박 세워 달려온 행복이 가득 담겨있는 우편물을 싣고 우체국 문을 천천히 나서봅니다. 6월 하순에 접어들면서 날씨는 이미 한 여름을 방불케 하듯 뜨거운 날씨로 변해있는데 시골마을을 향하여 달려가는 길 옆 가로수는 오늘도 푸른 잎이 가득한 가지를 기다랗게 늘어뜨리고 언제나 저를 반갑게 맞이하는 듯 정다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한 여름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데이트를 즐기는 하얀 나비 두 마리가 양 날개를 팔랑거리며
도로 옆 밭 주위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더니 저의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 가까이 다가와 제 주위를 한바퀴 빙 돌고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어디론가 멀리 멀리 날아갑니다. “에~말이요! 우체부 아저씨! 여그 녹차탕이 으디가 있소?” 제가 전남 보성 회천면 벽교리 명교마을 앞 솔밭 근처 도로를 천천히 달려가고 있는데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노부부께서 한여름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회천면 회령리 쪽으로 걸어가다 무엇인가 묻고 싶은 것이 있다는 듯 지나가는 저에게 멈추어 달라는 손짓을 하더니
제가 빨간 오토바이를 잠시 멈추자 가까이 다가와서는 잠시 머뭇거리다 아주머니께서 저에게 묻는 말입니다. “녹차탕(綠茶湯)이라면 목욕하는 해수녹차탕(海水綠茶湯)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 아들 말로는 버스에서 내리문 바로 그 옆에 녹차탕이 있다고 하든디 아무리 찾아도 없네!” “지금 율포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걸어오시는 길인가요?” “보성에서 군내버스 타고 율포에서 내려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아무리 봐도 녹차탕이 안보여! 우리가 잘못왔으까?” “예! 잘못 찾아오셨어요! 녹차탕은 율포에 있는 버스정류장
그 근처에 있거든요.”모처럼 회천면에 있는 녹차탕을 찾으신 노부부께서는 버스정류장 반대편 약 300m 거리에 있는 녹차탕을 두고 2km 쯤 되는 거리를 땀을 뻘뻘 흘리며 그냥 걸어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다고 대답하는 순간 갑자기 아저씨께서 아주머니를 흘겨보면서“아! 그렁께 내가 뭐라 그랬어? 아까 쩌기서 물어보고 가자니까! 여자가 남자 말을 안 들어!”하는 아저씨 말씀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아주머니께서 아저씨에게 눈을 흘기면서“아니! 그런 것을 남자가 물어 봐야제 여자가 물어 본다요? 잉?
다른 남자들은 다 자기들이 알아서 잘 물어보고 찾아다니고 그러드만 우리 집 남자는 큰소리 칠 줄 만 알제 어디 가서 뭣 좀 물어보고 그러면 어디가 덧이난가 어쩐가 통 물어볼 줄을 몰라! 왜? 그런가 몰르것어!” “그러니까! 내가 아까 뭐라 그랬어? 버스에서 내려 물어보고 가자니까 물어볼 것도 없이 그냥 가면 찾는다고 했어? 안 했어? 여자가 남자 말은 안 듣고 자꾸 고집만 피우니까 그러는 것이제~에! 안 그래?” “그래도 물어볼 것은 물어 봐야제 내가 그란다고 물어 보도 안하고 여그까지 그냥 와 분다요?”
“여자가 남자 말도 잔 듣고 해야 쓰꺼인디 통 남자 말은 안들라고 그랑께 그라제 어채!” “잠시 만요! 제가 한 가지 물어 볼 것이 있는데요!”저에게 녹차탕 위치를 묻고 나서 계속 토닥토닥 다투고 계시는 노부부에게 제가 한마디 하였더니 ‘뭣을 물어보려고 그래?’하는 얼굴로 저를 빤히 쳐다보십니다. “아저씨! 녹차탕은 가지 않고 계속 여기서 다투고만 계실건가요?”하였더니“다투기는 누가 다퉈?”하시며 겸연쩍은 웃음을 웃으십니다. “여기서 다시 오던 길로 약 2km 쯤 가셔서 버스정류장 아시지요? 버스정류장
맞은편에 계란 색 5층 건물이 있을 겁니다. 그 건물이 해수녹차탕 건물이거든요. 그러니까 다시 그쪽으로 가세요! 아시겠지요?” “아이고! 그나저나 날은 더운디 언제 거기까지 또 걸어가?”하고 짜증을 내는 아주머니께“아주머니! 제가 좋은 방법이 하나있는데 가르쳐 드릴까요?”하였더니 두 눈을 반짝이며 “무슨 방법인디요?” “두 분이 손 한번 잡아보세요!” “아니? 대낮부터 왜? 손은 잡으라는 것이여? 사람들 보고 있는디!”하는 아저씨의 대답에“남남이라면 모르지만 부부사이인데 사람들이 보면 어때요? 혹시 남남이세요?”
“남남은 무슨 남남이여? 아니여!”하더니 어색하게 못이기는 척 가만히 손을 잡습니다. “그렇게 두 분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이야기도 나누고 데이트를 즐기면서 천천히 걸어가시면 녹차 탕까지는 금방가실 수 있어요! 아시겠지요?” “헛! 헛! 허! 그런가?” “그럼 잘 다녀가세요!” “고맙소! 잉!”하며 활짝 웃는 노부부를 뒤로 하고 저는 우편물을 배달 할 마을을 향하여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잠시 후 빨간 오토바이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때까지도 그 노부부께서는 손을 놓지 않고 계속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늘 녹색을 띠고 있는 보성의 녹차 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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