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어르신! 위험해요~오!"

큰가방 2006. 7. 15. 21:30
 

“어르신! 위험해요~오!


어제 강한 바람과 폭우를 동반한 태풍 에위니아가 제가 살고 있는 보성에는 다행스럽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고 물러가고 모처럼 밝은 햇살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제가 시골마을로 배달할 우편물을 정리하여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가득 싣고 우체국을 출발할 무렵부터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첫 번째 시골마을에 도착하여 우편물을 배달하기 시작하였을 때부터는 많은 비가 주룩주룩 하염없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하느님은 우편물 배달을 한번도 하지 않으셨나 봐! 어제 태풍 때문에 우편물 배달을 못하는


바람에 오늘 배달할 우편물은 평소의 두 배 정도 되는데 하필 오늘 같은 날 많은 비를 내리게 하시다니!”하고 잠시 하느님을 원망하다 “아~참! 내가 큰일 날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괜시리 하느님이 내말을 듣고 노하신다면?”하는 생각을 하며 괜스레 저 혼자 한번‘씨~익!’웃으며 도착한 마을은 전남 보성 회천면 전일리 외래마을인데 제가 외래마을로 막 들어서는 순간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영감님 한 분께서 지붕위에서 무엇인가를 만지고 계시다 저를 보더니 큰소리로“어이! 자네 그쪽에 ...!”하십니다.


“어르신! 뭐라고요?” “그쪽에 지금 전깃줄이...!” “전깃줄이 어쩐다고요? 빗소리에 잘 안 들려요! 그런데 어르신! 지금 지붕위에서 무엇하고 계세요?” “지금 전기 줄이 끓어져서 우리 집에 불이 ...!” “예~에? 뭣을 하고 계신다고요?” “이 사람아 보문! 몰르것는가? 전깃줄이 끓어져서 내가 고치고 있단께!” “어르신! 위험하니까! 빨리 지붕위에서 내려오세요! 빨리요!” “뭐시라고?” “어르신! 위험해요~오! 빨리 지붕위에서 내려오시라니까요~오!” “아니? 뭣이 위험하다는 것이여?”


“그러니까. 우선 지붕위에서 내려오세요! 어서요~오!” “알았어! 지금 내려가께!”하시더니 영감님께서는 금세 지붕위에서 내려오십니다. “어르신! 지붕위에서 무엇을 고치고 계셨어요?” “다른 것이 아니고 저쪽 전봇대에서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전깃줄이 지붕위에 걸쳐있었거든 그래갖고 바람이 불고 그라문 전깃줄이 흔들흔들 왔다갔다 하드만! 그란디 아침나절에 우리 집 지붕위에서 무엇이 번쩍하더니 전깃불이 나가버렸어! 그래서 밖에 나와 보니까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전깃줄이 짤라져 버렸데!


전깃줄이 우리 집 지붕위에 걸쳐져 흔들흔들 왔다 갔다 하다 전기선이 껍질이 벗겨져 합선 된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전깃줄을 좀 이어(연결해) 볼라고 지붕위에 올라 갔는디 비가 오고 그랑께 힘드네!” “어르신! 평소에도 전선을 함부로 만지는 것은 무척 위험하거든요! 특히 오늘 같이 많은 비가 오는 날은  전류(電流)가 물을 타고 흐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데 왜? 전선을 함부로 만지세요? 그리고 비가 오는 날은 지붕위에 이끼 같은 게 많아 무척 미끄러운데 만약에 어르신이 지붕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고 계세요? 전선이 끓어지면 한전(韓電)으로 연락하시면 되잖아요!”하는 저의 말에 영감님께서 안타까운 눈으로 저를 보시더니 “내가 한전에 연락 할 줄 몰라서 안 한줄 아는가? 한전에 연락을 하고 싶어도 전화번호를 모르는데 어떻게 연락을 할 것인가?” “전화번호를 모르시면 114에 물어보시면 되잖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114에 물어봤어! 그래갖고 한전에 전화를 했는디 전화를 하니까 사람은 안나오고 무슨 이상한 소리만 나오데 그래서 몇 번 전화하다 결국 못하고 말았어!”


“그러셨어요? 전화번호부 책에도 한전 전화번호가 나와 있는데 전화번호부 책을 보고 전화하시지 그러셨어요!” “나도 전화번호부 책도 찾아봤제~에! 그란디 못 찾고 말았어!” “그래요? 이상하네요! 모든 공공기관의 전화번호는 전화번호부 책에 기본적으로 나와 있는 것인데!” “자네도 생각해 보소! 두 늙은이만 사는 집에 전깃불이 나가버렸으니 비가 많이 와서 방은 차가운데 보일러를 넣고 싶어도 넣을 수가 있는가? 테레비를 볼 수가 있는가? 또 전깃불이 나가버려서 냉장고 안에 있는 것은 모두 녹기 시작한디


냉장고를 돌릴 수가 있는가?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어떻게 손을 좀 보려고 지붕 위에 올라간 것이여!” 하시는 영감님의 얼굴은 마치 굳은 결심이라도 하신 듯 비장하게 보였습니다. “어르신! 제가 한전으로 연락을 해 드릴게요! 우선 집안으로 들어가시게요!”하고 잠시 영감님 댁으로 들어가 전화번호 책에서 한전의 전화번호를 찾아 막 전화를 하려는 순간 “그란디! 한전 전화번호가 어떤 것이여?”하고 영감님께서 물으십니다. “여기 한국전력(韓國電力)이라고 크게 나와 있지 않습니까?”하는 저의 말에


“오~오! 그것이 한전이었구만! 나는 전화번호 책에 한전(韓電) 만 찾으려고 하니 찾을 수가 있어야지!”하며 빙그레 웃으십니다. “여보세요! 저는 보성우체국 집배원 류상진입니다. 제가 오늘 회천면 전일리 외래 마을에 우편물 배달을 나왔는데!”하며 그간의 이야기를 설명하고 “지금 영감님께서 전기가 끓기는 바람에 상당히 고통을 많이 받고 계십니다. 가능하면 빨리 보수하여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하였더니 한전의 상담원께서“비도 많이 오고 바쁘신데 이렇게 전화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기왕에 선생님께 신세를 진 김에 한 가지 부탁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슨 부탁입니까?” “지금 비도 많이 오고 그러는데 전선이 끓어져 있으면 그 부근은 사람이 접근하면 굉장히 위험합니다. 전류는 물기를 타고 흐르기 때문에 잘못하면 감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선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접근하지 않도록 영감님께 당부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들이 최대한 빨리 출동하여 수리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잘 알았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하고 전화는 끊겼습니다. 그리고


“어르신! 지금 비가 오는 관계로 끊어진 전선 옆에 가시면 굉장히 위험하다고 하네요! 전기는 물기를 따라 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자칫 끊어진 전선 옆에 가면 감전 사고를 당할 수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한전에서 사람들이 올 때까지 전선 옆에는 아예 가지 마세요! 그리고 혹시 한전에서 어르신 댁을 찾지 못하여 전화를 걸어올지도 모르니까 전화 잘 받고 계세요! 아시겠지요?” 하였더니 “내가 그것도 모르는 사람인줄 아는가? 나도 그 정도는 알아!”하시며 마치 큰 짐을 벗어 홀가분하다는 표정으로 활짝 웃고 계셨습니다.

 

*해가 떠오를 무렵 보성의 녹차 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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