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어느 여름날(1)
1970년대 중반 무렵 어느 무더운 여름날, 그날도 어김없이 집배원 아저씨는 빨간 자전거에 기쁜 소식이 가득 담겨 있는 편지를 담은 큰 가방을 싣고 전남 보성 회천면 동율리 동촌마을로 들어와 동촌마을에 살고 있는 예쁜 아가씨 집 앞에 빨간 자전거를 세우더니 아가씨의 큰오빠에게
“어~이! 혹시 이 편지 자네 여동생에게 온 편지 아닌가? 주소는 영락없이 자네 집 주소가 맞는데 이름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거든!”
“그래요? 어디 한번 봅시다. 양영자? 우리 동생은 양영자가 아닌데 이상하다? 그런데 주소가 우리 집 주소인 것으로 봐서 우리 여동생에게 온 편지 같기는 하네요!”
“그래? 그런데 어제도 똑 같은 편지가 왔는데 수취인을 찾지 못해 오늘 또 가지고 나왔거든 편지가 모두 두통이니까 자네가 여동생에게 물어보고 맞는다고 하면 전해 주고 아니라고 하면 편지는 절대 뜯어보지 말고 내일 나에게 다시 돌려주게!”
“예! 알았어요! 놔두고 가세요! 형님! 그나저나 날씨가 이렇게 무덥고 그런데 우리 집에서 잠깐 쉬어가지 그래요!”
“나도 쉬고는 싶지만 날씨가 너무 무더우니까 한번 자리에 앉으면 일어서기가 정말 싫거든 그래서 편지 배달 모두 끝내고 우체국에 돌아가 쉬려고 그러네!”
“정말 그러겠네요! 그럼 수고하세요!” 그리고 집배원 아저씨는 이글거리는 태양 빛 아래 다음 마을을 향하여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야! 종금아! 종금아~아!”
“왜? 그래 큰오빠!”
“이리 좀 와봐! 너는 도대체 무슨 편지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이라고 온다냐? 잉?”
“무슨 편지가 왔다고 그래? 편지 받은 것도 없는디!”
“뭣이 으짠다고? 편지 온 것이 없다고? 그라문 이것은 편지 아니고 뭣이냐? 잉? 어지께도 한 장 왔제! 오늘도 한 장 왔제! 무슨 편지가 날마다 이라고 오는 것이여? 잉?”
“그것은 우리 친구가 거시기...”
“뭣이 으짠다고? 친구가 편지를 보냈다고? 그란디 편지내용이 ‘어젯밤 동쪽하늘에서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아름다운 별똥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별똥별을 바라보는 순간 갑자기 생각나는 얼굴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은 아직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저는 흘러가는 별똥별 빛만으로도 영자 씨의 예쁜 얼굴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영자 씨! 요즘 저의 집 뜰에는 빨강 하얀색 봉선화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만일 영자 씨의 손을 잡을 수 있다면 영자 씨의 손톱에 분홍색 봉선화 물을 예쁘게 들여 드리고 싶습니다.’봐라! 이 편지가 느그 친구가 보낸 편지냐? 아니문 남자가 보낸 편지냐? 어디 말을 좀 해봐!”
“그 편지는 내 편지가 아니고 우리 친구 영자 편진디 그래싼가? 으째 큰오빠는 우리 친구 편지를 뜯어보고 그래싼가? 보소! 이름도 내 이름이 아니잖은가?”
“그라문 영자가 누구다냐? 그라고 너는 느그 친구 심바람 꾼이냐? 심바람 꾼이여?”
“무슨 심바람 꾼은 심바람 꾼이여! 그냥 친구가 즈그 아부지 무섭다고 편지 좀 받아 놨다 주라고 해서 그라제!”
“어찌 되었건 이 편지는 큰오빠가 압수(押收)한다 알았제?”
“와따~아! 이따 영자가 편지 찾으러 올 것 인디...!”
“아니 다 큰 처녀들이 얌전하게 있다가 시집이나 가야제 머스마들 한테 편지질이나 하문 쓰것냐? 그랑께 이 편지는 압수여! 그라고 너는 점심 묵고 콩밭에 가서 풀이나 좀 뽑아라! 풀이 징하게 많이 났드라! 알았제?”
“알았어! 큰오빠!”
“그라문 얼렁 점심 밥상 좀 차려라! 나 점심묵고 또 저기 윗 논에 잔 나가봐야 하것다!”
무서운 큰오빠의 명령에 따라 무더운 여름 콩밭을 매던 최종금 아가씨는
‘아이고! 우리 큰오빠는 왜? 이라고 구식(舊式)이 철철 넘쳐갖고 하나 뿐이 여동생 편지받는 꼴을 못 보까? 잉! 우리 친구 오빠들은 편지를 받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쓰고 용돈도 잘 주고 그러드만 오늘은 그래도 내 이름으로 편지가 안 오기를 참말로 다행이다 만약에 내 이름 종금이로 편지가 왔드라문 나는 오늘 완전히 죽은 목숨인디!
그나저나 내일도 윤수 씨 한테 편지가 올 것 같은디 어떻게 하지? 내가 동구 밖에 나가서 집배원 아저씨를 기다렸다가 편지를 받어? 그런디 동구 밖에서 집배원 아저씨 기다리고 있다가 만약에 우리 큰오빠에게 들키는 날에는 아이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면 어떻게 한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그나저나 여기 콩밭에는 웬 풀이 이렇게도 많이 자랐어? 밭에 거름을 안 해 줘도 풀이 징허게 잘도 자라는구먼!’
하며 투덜거리고 있었답니다.
*전남 보성 웅치면 대산리에 위치한 제암산 자연 휴양림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빨간자전거' 카테고리의 다른 글
30년 전 어느 여름날(3) (0) | 2006.08.13 |
---|---|
30년 전 어느 여름날(2) (0) | 2006.08.06 |
"자네가 헛일 했어!" (0) | 2006.07.23 |
"어르신! 위험해요~오!" (0) | 2006.07.15 |
노부부의 데이트 (0) | 2006.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