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30년 전 어느 여름날(3)

큰가방 2006. 8. 13. 19:04
 

30년 전 어느 여름날(3)


한편 따가운 햇볕 아래 혼자 열심히 콩밭을 매고 있던 종금 아가씨 이제나 저제나“고모~오! 편지장사 아저씨 오셨어!”하며 달려올 조카 경수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조카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 이상하다! 경수가 나타날 시간이 지났는데 왜? 이렇게 나타나지 않지?”하고 지금까지 콩밭을 매느라 엎드려 있던 허리를 펴려고 막 일어서서 멀리 들판을 바라보았는데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집배원 아저씨는 이미 동촌마을 우편물 배달을 마치고 다른 마을을 향하여 빨간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들판 길을 달려가고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니? 집배원 아저씨는 이미 다른 마을로 가고 있는데 우리 경수는 어찌된 일이여?”하는 생각을 하다


“아이고! 내가 경수에게 속았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사탕을 세 개 주지 말고 한개만 줄 것을! 그런데 경수는 무엇 하느라 이렇게 나타나지 않는 거야? 집배원 아저씨가 마을에 들어 온 줄 모르고 친구들과 노느라 나하고 한 약속을 잊어 먹었을까? 혹시 집배원 아저씨를 보고 나에게 달려오다 넘어져 아파서 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시원한 정자에서 잠이 들어 집배원 아저씨를 못 보았을까?”하며 벼라별 생각을 다하고 있다 갑자기 조카가 미워지기 시작합니다.


“경수 뒷꼭지도 꼭 즈그 아빠 뒷꼭지를 닮아서 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니까! 아무리 나이가 어리지만 고모하고 약속을 했으면 끝까지 지켜야지 뭣을 하니라고 지금까지 안 나타나고 있는 거여? 그런디 그것은 그러고 왜? 이라고 웬수 같은 콩밭은 징허게도 안 매지는 것이여! 아이고! 날은 덥고 콩밭도 못 매것네!”하며 투덜거리며 있는데 갑자기 밭 아래쪽 도로에서 “고모! 아빠가 빨리 와서 낮밥 먹으래!”하는 조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종금 아가씨 갑자기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올라 하던 일을 멈추고‘후다닥’경수에게 뛰어 내려가“고모하고 한번 약속을 했으면 끝까지 지켜야지! 니가 감히 고모를 속여!”하며 다짜고짜 경수에게 알밤을 한대 먹였는데 알밤을 먹은 경수 “으아~~~앙! 고모가 나를 때렸어! 아~~~앙!”하며 그렇지 않아도 삐죽 나온 입이 남산 만하게 튀어나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한번 밉보인 조카 아무리 큰소리로 운다고 예쁘게 보일 리가 없겠지요? 그래서 알밤을 한대 더 먹이려고 있는 인상 없는 인상 다 긁어모아 경수를 째려보며 알밤을 막 먹이려는 순간 경수는 아예 땅바닥으로 드러누워‘통! 통! 통!’두 발을 굴리면서 양 눈에 달구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우는데 어떻게 보니 경수의 무릎에 상처가 있고 피가 말라 붙어있는 것이 보입니다.


“경수야! 무릎은 고모 때문에 다친 거냐?”그러나 경수는 대답 대신 “고모가 나를 때렸어! 아~아~앙~~~~앙!”하며 더 큰소리로 우는데 그 순간 “오늘은 왜? 이렇게 일이 꼬이지? 내가 벌집을 잘못 건드렸나?”하는 생각이 들어 할 수 없이 우는 경수를 들쳐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점심식사 시간 큰오빠는“종금아! 콩밭은 다 맸냐?” “인자 쪼금 남었어!” “아따~아! 그것 좀 얼렁 좀 매불제! 그라고 있냐? 그나저나 고생했다! 낼 아침에는 시원할 때 일찌거니 가서 콩 밭 남은 것 다 매부러라 잉! 니 시집 밑천할라고 올해 콩을 많이 심었단 마다 그랑께 콩이 잘되어야 니 시집도 보낼 수 있는 것이여! 그라고 틈이 있으문 콩밭 좀 둘러보고 알았제?”하는 큰오빠의 말에


“잉! 알았어!” 하며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던 종금 아가씨 “나 시집 밑천하려고 콩을 많이 심었다고? 큰오빠도 차~암! 그라문 진작 말을 하지~~~이!”하며 지금까지 지긋지긋하던 콩밭이 갑자기 저 푸른 초원으로 보이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어제 못 맨 콩밭 오늘 마저 다 매라!”는 큰오빠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 종금 아가씨는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콩밭으로 달려가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콩밭을 매고 있는데 얼마 쯤 시간이 지났을까


밭 아래 쪽 도로에서 ‘때르릉! 때르릉!’하는 자전거 벨소리가 들리면서 “최종금 아가씨! 빨리 와서 편지 받아가세요!”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밭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더니 집배원 아저씨가 빨간 자전거 앞쪽에 큰 가방을 매달고 활짝 웃는 얼굴로 종금 아가씨를 부르며 편지를 들고 서 있었고 어제까지만 해도 미운 짓만 골라하던 조카 경수가 빨간 자전거 뒤에 앉아 고모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 "해변으로 가요~오!"  전남 보성 회천면 율포해수욕장입니다.

'빨간자전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연히 먹은 뱀(蛇)고기  (0) 2006.08.27
30년 전 어느 여름날(마지막 회)  (0) 2006.08.20
30년 전 어느 여름날(2)  (0) 2006.08.06
집베원 아저씨 때문에  (0) 2006.07.30
"자네가 헛일 했어!"  (0) 2006.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