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먹은 뱀(蛇)고기
이른 아침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더니 창밖은 짙은 안개로 가득합니다. ‘안개가 피어오르면 날씨가 맑다고 하던데 오늘도 굉장히 무더운 날씨가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저는 오늘도 출근길을 서두릅니다. 그리고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정리하여 시골마을을 향하여 우체국 문을 나설 쯤에는 이미 도로는 후끈후끈한 열기로 가득합니다. 시골마을로 향하는 도로가의 가로수는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 탓에 가지를 쭈욱 늘어뜨리고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커다란 정자나무 그늘에 모인 매미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여기저기서 “매~~~앰~~맴”합창소리가 요란합니다. “무더운 여름이 우리에게는 힘들지만 매미들에게는 천국이구나!”하는 것을 느끼며 저는 부지런히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우편물을 배달하다 보니 전남 보성 회천면 회령리 삼장마을로 접어들었습니다. 제가 삼장 윗마을로 천천히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들어서고 있는데 윗마을 정자에는 무더위를 피해 나온 할머니 세 분께서 9월 초순 쯤 밭에 파종할 쪽파 씨를 다듬고 계십니다.
쪽파 씨는 봄 철 상품성이 떨어져 판매할 수 없는 쪽파나 씨앗용으로 밭에 남겨 둔 쪽파를 모두 거두어 도로나 마을의 공터에 넓게 펴서 햇볕에 말리면 줄기와 뿌리 부분은 모두 말라버리고 머리 부분만 남게 되는데 그 머리 부분이 바로 쪽파 씨가 되는 것입니다. “아제! 날씨도 더운데 고생해 싸시네! 이리와 잠깐 쉬었다가~아! 바람이 참 시원하니 좋구만!”하시는 할머니의 권유에 “그럼 그럴까요?”하며 잠시 정자에 걸쳐 앉아 할머니들께서 다듬고 계시는 쪽파 씨를 바라보다 “할머니! 쪽파 씨는 꼭 그렇게 다듬어야 하나요?
그냥 그대로 밭에 심으면 안 되나요?”하고 물었더니 뿌리가 여러 개 붙어있는 쪽파 씨를 들어 보이면서“이것 봐! 쪽파 씨가 이렇게 여러 개 붙어있는데 어떻게 밭에 그냥 심것어? 한 개씩 떼어내야지 그라고 뿌리하고 줄기를 짤라 내지 않으문 나중에 밭에 심을 때 장갑을 끼고 심는데 쪽파 씨가 밭에 심어지지 않고 장갑을 따라 올라와 버리거든 그래서 이렇게 일삼아서 다듬고 있는 것이여!”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쪽파 씨는 그냥 밭에 심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이 정성이 필요하군요!”
“농사는 절반이 정성이여! 정성이 안 들어 가문 농사가 지어 지간디!”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에 “정말 그렇겠네요!”하였는데 할머니 한 분께서 “그란디 아제는 뱀(蛇)고기를 한번이라도 자셔 봤어?”하십니다. “예~에? 뱀 고기요? 무슨 뱀 고기를 말씀하시는 데요?” “아니~이! 내가 뱀 고기를 한번 먹어봤거든 그란디 노인들이 내말을 안 믿는단께!” “할머니도 참! 요즘 뱀 고기가 어디 있어요?” “참말이란께!” “어디서 잡수셨는데요?” “먼저 봄에 내가 쩌기 일림산에 고사리를 꺾으로 갔거든
그란디 고사리를 꺾어 갖고 내려오다 본께 배가 무지하게 고픈디 등산복 입은 아저씨들이 계곡에서 고기를 무슨 숯덩이 같은데다 불을 붙여갖고 구워먹고 있드만! 그래서 ‘아저씨! 나 지금 배가 고픈디 고기 좀 주문 안 되것소?’그랬더니 ‘그라문 이리와 좀 자시고 가씨요!’하드만 그래서 고기를 묵어 봤는디 고기가 참! 맛있데! 그래서 고기를 많이 묵었는디 나중에 다 묵고 나서 ‘아저씨! 이 고기가 뭔 고기요?’하고 물어 봤드만 아! 금메! 그 고기가 뱀 고기라 그라데 그래서 을마나 놀랬든지
내 혓바닥을 잘라 버리고 싶드란께!”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할머니! 요즘 불에 구워먹을 만큼 큰 뱀이 어디 있어요?” “그것은 나도 모르제! 그냥 그 아저씨들이 뱀 고기라고 그랑께 뱀 고긴지 알았제! 그란디 여그 노인들이 내 말을 안 믿어!” 그러자 옆에 계신 할머니께서 “그것은 뱀 고기가 아니란께 으디서 이상한 고기를 묵고 와서 자랑하니라고 그라제?” “할머니! 그러면 뱀 고기가 그릇에 담겨 있던가요?” “김치 통 보다 작은 통에 양념을 해서 갖고 왔데! 그란디
고기를 넙적넙적하게 썰어갖고 양념을 해 왔는디 보기에도 영 맛있게 보이드란께!” “제 생각에는 그게 뱀 고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할머니도 생각해 보세요! 요즘 양념을 해서 그릇에 넣어가지고 다닐 만큼 많은 뱀이 어디 있겠어요? 그 분들이 괜히 할머니 놀리려고 그렇게 말을 했겠지요.” “아니란께 그라네! 그 사람들이 무단히 나한테 거짓말을 했으껏이여?” “정말 그렇기는 하겠네요! 할머니! 저 그만 가 볼게요! 수고하세요!”하며 저는 마을을 향하여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천천히 달려가면서 생각해 봅니다.
30여 년 전 제가 빨간 자전거를 타고 우편물을 배달할 때만 해도 포장도 되지 않은 도로 또는 들판 길바닥에서 느릿느릿 기어가는 크고 작은 뱀들을 하루에도 여러 번 만나기도 하였고 또 어떤 때는 들판 길을 가다 뱀 때문에 깜짝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뱀을 만나기란 정말 결코 쉽지가 않은데 할머니께서 자꾸 뱀 고기라고 하시니 아니라고 우길 수도 없고 제 생각에는 장어고기를 양념하여 구워먹으면서 할머니를 놀라게 하려고 뱀 고기라고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의 집에서 우연히 촬영한 나비인데 나비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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