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30년 전 어느 여름날(마지막 회)

큰가방 2006. 8. 20. 16:55
 

30년 전 어느 여름날(마지막 회)


제가 지난 2006년 7월 20일 오후 3시 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장마 때문에 그날도 하늘은 짙은 먹구름이 가득하였는데 그날 저는 전남 보성 회천면 군농리를 향하여 왕복 2차선 도로를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천천히 달려가고 있을 때 갑자기 저의 등 뒤에서 ‘후~두~두~두~드!’하고 들리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아니? 이 소리는 또 무슨 소리여?’하고 뒤를 돌아본 순간 하늘에서 저의 엄지손가락만큼 큰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는 소리였는데 마치 수많은 말들이 한꺼번에 달려오는 것 같이 ‘후~두~두~두~드!’소리를 내며


저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큰일 났다! 만약에 저 빗방울 맞았다가는 큰일 나게 생겼다!’하고 얼른 도로 옆에 있는 버스 간이 정류장으로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피신하였는데 바로 그 순간 빗줄기는 버스 간이 정류장을 덮치더니 마치 폭포가 쏟아지듯 ‘우~루~루~루!’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4 ~ 5분의 시간이 지나자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하늘에서는 불볕 같은 햇볕이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군농리 첫 번째 마을로 들어섰는데 마을의 가운데 쯤 늘 대문이 열려 있는 집 앞에 이제 2살 먹은 남자 아기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부채를 위 아래로 흔들어 보다 이번에는 고개를 부채 옆에 대고 끄덕거리더니 저를 발견하였는지  활짝 웃는 얼굴로 “저~어! 저~어!”하며 양손을 위아래로 휘저으며 뒤뚱거리며 달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래! 아저씨 알아보겠어? 어서와! 아이고! 예쁜 우리 아가!”하였더니 아기는 잠시 저의 품에 안기더니 이내 손발을 뻗으며 내려달라는 시늉을 합니다. “그래! 어디가려고?”하며


아기를 내려주었더니 얼른 열려있는 대문으로 들어가 현관에서 안방 쪽을 바라보면서 “저~어! 저~어!”하며 누군가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왜? 그래 현우야!” “저~어! 저~어!” “누가 왔다고? 그래? 누가 오셨는데? 오~오라! 집배원 아저씨가 오셨다고!” “으~응! 저~어! 저~어!” “오늘은 집에 게셨어요? 현우가 내 얼굴을 잊지 않았는지 오늘도 저를 보더니 무척 반가워하네요!” “아저씨가 우리 손자를 너무 예뻐하시니까 얼굴을 안 잊어버리나 봐요! 그런데 오늘은 어떤 반가운 편지를 가지고 오셨어요?”


“요즘 우편물이 반가운 우편물이 있답니까? 오늘은 전화요금 고지서가 나왔네요!” “그래요! 요즘 연애편지는 없지요?” “시골에 처녀들이 있어야 연애편지도 오는데 처녀들이 없으니 편지가 올 수나 있겠어요?” “하긴 그렇긴 하겠네요! 내가 처녀 시절에는 연애편지도 곧 잘 받곤 하였는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요?” “왜요? 내말이 거짓말 같아서요? 내가 이렇게 못 생겼지만 그래도 나도 한때는 하루에 연애편지를 서너 장 씩 받을 때도 있었어요!”하더니 “우리 손자가 저~어! 저~어! 하며 할머니 부르는 것을 보니


우리 조카 생각이 난다! 내가 시집오기 전 그때 우리 조카가 아마 다섯 살 쯤 되었을 때였어요!” 하며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 들어가 들려주신 이야기가 ‘30년 전 어느 여름날’ 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멍청했어요! 조카에게 심부름을 시키면서 ‘집배원 아저씨가 나타나면 고모가 콩밭에 있으니까 콩밭으로 와야 한다!’라고 말을 해 줘야 했는데 그 말은 하지 않고 그냥 ‘집배원 아저씨가 보이면 고모에게 빨리 와서 말해야 한다!’라고 했으니 조카는 당연히 집으로 가서 고모를 찾았고


그런데 아무리 집에서 고모를 찾아도 고모는 보이지 않고 집배원 아저씨는 금방 집으로 들어올 것 같고 어린 마음에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그런데 또 넘어져서 무릎에서는 피까지 나고 있으니 ‘홋! 홋! 홋! 호!’지금 생각해도 왜 그렇게 멍청한 짓을 했는지!”하고 이야기를 끝마친 아주머니께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 젊은 시절 펜팔을 나누었던 이야기를 하면 무슨 고려시대(高麗時代) 이야기를 하냐고 야단이지만 그래도 그 시절은 지금처럼 잘살지는 못하였지만 서로 오고가고 돕고 생각하고


이웃도 내 형제처럼 정말 오순도순 정답게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 고모 심부름을 열심히 했던 조카는 지금 어디서 살고 있나요?” “경수 나이가 올해 35살인가 36살인가? 아무튼 도시에서 큰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진작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잘살고 있어요!”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는데요!” “무엇인데요?” “그때 편지를 주고받았던 윤수 씨라는 분이 지금 현우 할아버지신가요?”하는 저의 물음에 주위를 한번 휙! 돌아보신 아주머니께서 나직이 하시는 말씀! “쉬잇! 아니여! 다른 사람이여!”


*이야기의 무대인 전남 보성 회천면 동율리 동촌마을 동구 밖 정자입니다.

'빨간자전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밀문지를 아시나요?  (0) 2006.09.03
우연히 먹은 뱀(蛇)고기  (0) 2006.08.27
30년 전 어느 여름날(3)  (0) 2006.08.13
30년 전 어느 여름날(2)  (0) 2006.08.06
집베원 아저씨 때문에  (0) 2006.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