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500원이 비싸!"

큰가방 2006. 9. 25. 23:24
 

“500원이 비싸!”


9월의 중순에 접어들자 하늘은 더욱 맑고 푸르러 지면서 코끼리, 토끼, 돛단배 등 갖가지 모양을 한 하얀 구름들이 여기저기 두둥실 푸른 하늘을 떠다니며 저의 마음을 어린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합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저도 모르게 어린시절 많이 불렀던 윤극영 선생님의 동요‘반달’을 흥얼거리며 오늘도 저의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사랑과 행복이 담긴 우편물을 가득 싣고 시골마을을 향하여 천천히 달려갑니다.


해변으로 길게 뻗어있는 해안도로를 따라 천천히 달려가는 길 옆 논에는 거친 숨을 내쉬는 콤바인이 누렇게 잘 익은 벼를 열심히 수확하고 있는데 멀리 보이는 밭에는 오늘도 많은 아낙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금년 겨울 김장때 사용할 쪽파의 씨를 파종하느라 분주한 모습입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쪽파 씨를 파종하느라 바쁜 계절이구나!”라는 것을 느끼며 제가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하여 도착한 마을은 전남 보성 회천면 벽교리 명교마을입니다. 명교의 아랫마을 우편물 배달을 마치고 윗마을로 막 들어선 순간


윗마을 가운데에서 살고 계시는 할머니께서 대문 밖으로 나오다 저를 보더니 무척 반가운 얼굴로“아제! 잘 만났네!”하시며 저의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을 가르치며 “여기다 쌀 푸대 좀 실고가문 안 되까?”하고 물으십니다. “쌀 포대요? 무슨 쌀 포대인데요?” “40키로 짜리 쌀 푸댄디 오토바이에다 실고가문 좋것네!” “할머니! 그건 좀 곤란하네요! 적재함 속에 저쪽 끝 마을에 배달할 무거운 소포가 들어있는데 또 40키로 짜리 무거운 쌀 포대를 싣고 어떻게 다니겠어요? 그런데 무슨 쌀을 어디로 가져가시려고 그러세요?


벌써 햅쌀 수확하신 거예요?” “아니! 올벼쌀을 보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고 꼬치(고추)를 보낼라고!” “고추요? 고추를 어디로 보내시려고요?” “우리 둘째가 낼까지 꼬치를 보내주라고 그란디 그것을 내가 회령 장터까지 머리에 이고 갈랑께 암만 생각해도 안 되것어서 아제 한테 보내주라 할라고!” “그럼 쌀 포대에 들어있는 게 쌀이 아니고 고추였어요?” “꼬치를 40키로 짜리 쌀 푸대에 꾹 꾹 눌러 담으면 10근이 들어 가드만


그란디 개풋해(가벼워) 그랑께 아제가 우체국에 실고 가서 우리 아들한테 보내 주문 안 되까?” “예! 그럼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고추는 어디 있어요?” “우리 집에 있제! 으디가 있것어? 아제는 여가(여기) 있어! 내가 집에 가서 갖고 나오께!” “할머니!  제가 가져올게요!”하고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더니 40kg 들이 쌀자루가 터질 듯이 가득 담긴 마른고추 자루 한 개가 마루에 놓여있었습니다. “할머니! 소포요금이 5천 원 정도 될 거에요!” “아이고 5천원이나 되야? 징하게도 비싸네!”하시며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저에게 건네주십니다. “할머니 아드님 주소를 주셔야지요!” “참! 우리 아들 주소를 줘야제~잉! 그란디 내가 주소를 어디다 놔뒀더라! 가만 있어봐! 잉!”하시더니 방안에 있는 살림살이를 여기도 들썩 저기도 들썩거리며 주소를 찾으면서 “우메! 바쁜 양반 잡아놓고 미안해서 으째사 쓰까? 그나저나 내가 주소를 으따가 놔뒀으까? 이상하네!”하시는데 방바닥에 놓여있는 전화기 밑에 조그만 공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옵니다. “할머니! 혹시 전화기 밑에 있는 공책에 주소가 적혀있지 않나요?”


“오~참! 그러제! 여기다 놔두고 한참을 찾았네! 아제! 명섭이 주소가 있는 가 찾아봐!” “포항 김명섭 씨 말씀이세요?” “잉! 김명섭 이에게 보내문 되야!” “내일까지 고추가 포항에 도착되게 하려면 현재시간이 오후 4시니까 지금 우체국에 가서 접수를 해야 오늘 출발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주소 적어진 공책까지 우체국에 갖고 가서 고추 접수하고 올 테니까 할머니는 여기 그늘에 앉아 잠시 기다리고 계세요!” “그란디 잔돈 5천원 안내주고 가~아?”


“우체국에 가서 고추 보내고 잔돈하고 영수증  주소 적어진 공책까지 다시 가져다 드릴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고 계세요! 1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거예요!” “알았어! 그라문 얼런 갖다와! 여그서 기달리고 있으께!”하여 왕복 2km 쯤 떨어진 우체국으로 고추 자루를 싣고 가서 소포로 접수 시켰는데 요금이 5,500원입니다. 그래서 주소가 적어진 공책과 잔돈 4,500원 그리고 소포 접수증까지 챙겨 할머니께서 기다리고 계시는 명교마을로 달려갔더니 “와~따~아! 아제가 비행기보다 더 빠르네! 우추고(어떻게)


그라고 빨리 갖다와 부러?”하시며 빙그레 웃으십니다. “할머니! 여기 주소 적어진 공책! 그리고 이것은 잔돈 4,500원!”하였더니 “이~잉! 소포비가 그라고 비싸~아?”하시며 깜짝 놀라십니다. “할머니! 아드님에게 보내는 고추라고 포대가 터지도록 욕심껏 고추를 담으셨지요? 그래서 고추 무게가 6kg이 넘었잖아요! 그래서 요금이 500원 더 나왔어요!” “아이고! 그란다고 500원씩이나 더 받어? 너무나 비싸게 받네! 그럴지 알았으문 내가 회령 장터에 있는 택배로 갖고 가서 부치껏인디!”


“할머니도 참! 고추를 머리에 이고 회령 장터까지 가시면 거리가 왕복 3km가 넘잖아요! 그러다 할머니 몸이라도 아프면 약값만 해도 500원이 더 나와요! 안 그래요?” “그래도 500원을 더 받어분께 징하게도 비싸구만!” “할머니 정 그렇게 비싸면 제돈 500원을 드릴께요, 그러면 되겠어요?” 하며 제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500원 짜리 동전하나를 꺼내어 할머니에게 드렸더니 “아이고! 그냥 놔둬! 심바람 한 사람이 500원을 물어내문 되간디!”하시며 한사코 돈 받기를 사양하십니다.

 

*전남 보성 회천면에는 금년 겨울 김장철에 사용할 쪽파 씨 파종이 한창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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