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갯가 쌀

큰가방 2006. 9. 10. 19:32
 

갯가 쌀


9월로 접어들었음에도 아직은 떠나기 싫은 여름의 조각들이 남아있는지 하늘의 뜨거운 태양 볕은 여전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조금씩 가을의 문턱으로 접어들기 시작합니다. 오늘도 우편물을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가득 싣고 시골마을을 향하여 달려가는 도로의 양 옆 들판에는 하루가 다른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는 누런 벼들이 조금씩 꼬리가 붉어지는 고추잠자리를 불러 모아 비행연습을 시켰는지 수많은 잠자리들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하며 춤을 추듯 보이는데


시골마을 정자나무 꼭대기에 여름 내내 자리를 잡고 앉아 하루도 빠짐없이 맹렬하게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던 매미들이 이제는 그 기운을 모두 소진하였는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며 떠나가는 여름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뜨거운 여름이라도 찾아오는 가을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가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마는 구나!”하는 것을 느끼며 저는 오늘도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부지런히 우편물을 배달하다 보니 오늘 배달할 우편물 마지막 한 통까지 모두 배달이 끝나고 천천히 우체국을 향하여 귀국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전남 보성 회천면 율포리 면 소재지에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천천히 들어서고 있을 때 경기도 번호판을 부착한 검은색 승용차 한대가 천천히 저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차창 문이 스르르 열리면서 젊은 아주머니 한 분이 “아저씨!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만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하여“예!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데요?”하였더니 “이 근처에 농가가 어디 있어요?”하고 묻습니다. “예~에? 농가요? 농사짓는 사람들의 농가(農家)를 말씀하시는 건가요?”하였더니 “예! 농사짓는 분들이 많이 살고 계시는 곳이 어느 쪽인가요?”


하고 묻습니다. “농사짓는 분들이 많이 사는 곳은 저 건너 보이는 마을도 있고 이쪽 길로 쭉 가시면 마을이 보이는데 모두 농사짓는 분들이 사는 곳이거든요! 그런데 무엇 하려고 농가를 찾으십니까? 시골마을에 가시면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요!” “그러면 이쪽으로 가면 정미소도 있나요?” “정미소요? 정미소가 있기는 한데 정미소 주인이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왜? 정미소를 찾으십니까?” “갯가 쌀을 조금 사려고요!” “갯가 쌀이요? 갯가 쌀로 무엇 하시게요?” “갯가 쌀이 밥맛이 좋지 않나요?”


“밥맛 좋은 갯가 쌀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갯논 쌀이 좋다고 하니까 해변에 있는 논에서 생산된 쌀은 모두 밥맛이 좋은 줄로 알고 계시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갯가에 있는 논에서 생산된 쌀이 밥맛은 더 안 좋습니다,” “어머! 정말 그래요? 보성 근방에서 생산된 쌀이 밥맛이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것이 아닌가요?” “보성 근방에서 생산된 유명한 쌀이라면 이쪽 길로 쭉 가시면 득량면(得糧面)이 나오는데 득량면의 예당 간척지 쌀이라고 해서 전국적으로 밥맛이 좋기로 유명한 쌀이 생산되기는 한데


그 쌀은 아무 때나 구입할 수 없거든요!” “왜? 구입할 수 없는데요?” “쌀이 너무 유명하다 보니까 봄 철 못자리할 때부터 미리 예약을 받거든요, 그래서 예약하신 분들만 쌀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 때나 쌀을 구입할 수 없습니다,” “이상하다! 제 친구는 엊그제도 갯논 쌀을 사왔다고 하던데!” “그랬어요?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분명 그 쌀은 예당 간척지 쌀이 아니고 가짜를 구입하였을 겁니다, 예당 간척지는 면적이 작기 때문에 일년에 생산되는 쌀의 양이 얼마 되지 않거든요! 그런데 예당 쌀이 너무 유명하다 보니


득량면 인근에 있는 다른 면에서 생산된 벼를 예당에 있는 정미소로 가져가서 방아를 찧는 순간 모두 예당 쌀로 둔갑되거든요, 그래서 어떤 농민은 자신의 논에서 생산된 벼는 예당에 있는 정미소로 가져가 방아를 찧은 다음 예당 쌀로 팔고 자신은 다른 곳에서 생산된 좋은 쌀을 사다먹고 있는데 요즘 예당 쌀을 어떻게 살수가 있겠습니까?” “아저씨 말씀을 들어보니 정말 그렇겠네요!” “예당 쌀이 너무 유명해서 저도 예전에 구입하여 먹어보았는데 요즘은 압력 밥솥을 사용하여 밥을 지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밥맛이 그렇게 특별하게 좋은 줄은 모르겠던데요!” “정말 그래요? 그럼 어디에서 쌀을 구입하면 좋습니까?” “저쪽에 보시면 농협이라는 간판보이지요? 농협 연쇄점에 가시면 쌀을 판매하거든요, 거기서 구입하시면 가짜를 구입하실 염려도 없고 질 좋은 쌀을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농협에서 쌀을 구입하여 먹고 있는데 밥맛은 아주 좋거든요!” “아저씨! 자세히 설명하여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하며 검은 색 승용차는 제 시야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시골마을 공터에는 콩이며 고추며 참깨 대가 가을 햇볕을 받으며 나란히 누워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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