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데갔다 왔노”
보성읍 옥평리 유산마을 맨 첫 집 마당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큰소리로 주인을 불렀으나 아무 대답이 없어 우편물 도착안내를 써놓을까 하다,
입구의 ‘민박’이라는 글씨 밑에 휴대전화 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신호가 가고 구수한 경상도 말씨의 중년 아주머니께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는 보성우체국 집배원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등기가 있어 집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안계시네요!”
“등기가 어데서 왔는데요?” “현대카드에서 왔네요!” “그래에! 그럼 지금 전화하시는 곳이 어딘데에?” “지금 댁에 와있습니다!”
“그래에! 그라문 지가 지금 집으로 가문 안 되겠습니꺼? 승용차로 가면 한 10분쯤 걸릴낀데, 그때까지 좀 기다려 주이소!”
“제가 지금 좀 바쁜데 이따 오후에 봉산리 쪽 우편배달이 끝나고, 오면서 다시 들리면 안 되겠습니까?” “그라지 마시고 지금 좀 기다려 주이소!
급히 카드 쓸 일이 있거든에! 그래서 지금까지 아저씨 기다리다 방금 나왔는데 그새 또 오셨는 갑네에!”
“알았습니다! 그러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하고 전화는 끊겼다. 그리고 마당 한쪽에 피어있는 빨간 꽃을 바라보았는데,
그 꽃이 생전 처음 본 것 같아 “예쁜 꽃아! 네 이름이 뭐니? 오늘 내가 너를 처음 만난 것 같구나?” 물었더니 꽃은 대답도 하지 않고
수줍은 듯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그리고 그 옆에 팥알 크기 정도의 진한 잉크 색 열매가 달려있는 나무를 바라보다,
뒤를 돌아보았더니 잎이 모두 져버린 빼빼 마른 줄기에, 콩알 크기의 하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을 보였다.
그러다 문득 시간을 보니 집 주인을 기다린지 벌써 20분이 넘어서고 있었다. “이상하다? 주인이 도착할 시간이 넘었는데
왜 여태 안 오지?” 하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집배원입니다. 지금쯤 집에 도착하실 시간이 넘었는데
아직 오지 않아 다시 전화 드렸습니다!” “뭐라고에? 아니 그럼 애가 어디갔단 말잉교? 이상하다! 지금 갔다 올 시간이 넘었는데!”하더니
“아저씨! 잠깐만에!”하고는 “아니! 너 지금 어디 갔다 왔노? 뭐라고? 우체국에 갔다 온다고? 아니 우체국에는 왜 갔는데?
편지 찾으러 갔다고? 아니 내가 언제 그리 가라 그랬나? 집으로 가라 안했나? 아이구야! 이일을 어쩌면 좋노?
지금 우체부 아저씨가 눈이 빠지게 지달리고 계시는데 왜 거기로 가나? 당연히 집으로 가야 안 되겠나? 인자 이일을 어쩌면 좋노?
시간이 이리됐는데 너는 와 그라고 말귀를 못 알아 듣노? 인자 아저씨 가버리문 어찌 할끼고? 그러니까 말을 잘 알아듣고 가라 안했나?”하며
휴대폰에서 누군가에게 마구 역정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전화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여보세요! 사람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제가 조금 더 기다릴 테니까, 지금이라도 빨리 집으로 오라고 하세요!”
“그라문 아저씨가 더 기다려 주실랍니꺼?” “예!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조금 더 기다린다고 뭐가 잘못되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빨리 집으로 오라고 하십시오!”하였더니“아저씨! 정말 고맙십니더! 금방 갈께에 쪼그만 더 기다려 주이소 미안합니더!”
전남 보성읍 우산리 구몽산 가는 길에 피어있는 코스모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