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지락 거리기

소주와 막걸리

큰가방 2017. 9. 2. 12:39

소주와 막걸리

 

광주 학동 버스정류장에서 택시를 세우고 문을 열자 어서 오세요!”하며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운전사가 활짝 웃는 얼굴로 반긴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굉장히 무더운데 수고가 많으시네요. 두암동 병원으로 가시게요.” “혹시 가족 중에 누가 아기 낳았어요?”

 

저의 큰며느리가 애기를 낳아서 보러 가느라고요.” “어머! 그래요! 축하합니다. 그런데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딸을 낳았다고 그러네요.”

그래요. 그럼 손자는 처음 받아보세요?” “! 그러니까 제일 큰 손녀지요.” “그래요! 그럼 아들을 낳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랬네요.”

 

저는 딸이 없고 아들만 둘 있는 관계로 딸 있는 게 소원인데 이제 딸을 낳았으니 소원풀이 한 셈이어서 서운하고 뭐하고 그런 것은 없어요.”

그래도 첫째가 아들이면 더 든든하고 좋은데 그러네요.” “그러면 기사님께서는 자녀를 몇이나 두셨어요?”

 

저는 아들하나 딸 하나를 두어 결혼을 시켰는데 둘 다 아들은 낳지 않고 딸만 낳아서 키우고 있어요.” “그럼 아이는 그만 낳는다고 하던가요?”

요즘은 왜 그런지 아이를 많이 낳으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들 손자 보는 것은 그만 포기했어요.”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가 없어서 그렇지 갖출 것은 다 갖춰야 하겠더라고요. 그래야 삶의 재미도 있고 그런데, 남 보다 무언가 하나라도

빠진 것을 느끼게 되면 마음속으로는 그러지 말아야 하겠다! 면서도 항시 무엇인가 서운함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 집 애기 아빠가 옛날에는 술을 마시지 않더니 어느 날부턴가 마시기 시작하더라고요.” “직업이 무엇인데요?” “목수 일을 하였어요.

그런데 처음 나와 만났을 때는 술도 담배도 전혀 하지 않는 굉장히 착실한 사람이었는데 아이들에게이제 애기는 그만 낳고 싶다!’

 

이야기를 듣고 아직 아들이 없으니 그래도 하나는 더 낳아보지 그러냐?’고 하자 아들 하는 소리가아이고! 아빠는,

요즘 애기 키우기가 얼마나 힘 드는데!’소리를 들은 뒤부터 손자 보는 것을 포기해서 그런지 어쩐지 본격적으로 입에 술을 대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럼 매일 드시던가요?” “처음에는 한두 잔씩 마시기 시작하데요.” “그럼 무슨 술을 좋아하던가요?” “막걸리를 아주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3~4년 전 위암(胃癌)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한 두어 달 마시지 않더니 그 뒤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취하도록 마시더라고요.” “위암 수술을 받았다면 술은 마시면 안 되는데 그러네요.” “그러니까요. 그래서 마시지 말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수술 받은 뒤부터는 목수일도 놓아버리고 이제는 오로지 술만 찾고 있거든요.”

 

그럼 식사는 제대로 하고 하시던가요?” “밥을 차려놓으면 막걸리를 먼저 찾아요. 그리고 한 두잔 마시고 나면배가 불러

밥을 먹지 못하겠다!’고 밥숟가락을 놔버리더라고요. 그래서 별 방법을 다 써 봤는데 아무리 해도 고칠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매일 밥도 먹지 않고 빈속에 술만 마시면 속은 괜찮은지 모르겠어요.” “매일 마시는 사람의 위()는 알코올 속에 잠겨 있다고

그러거든요. 다시 말씀드리면 계속 취해있는 상태니 술을 마셔도 속이 쓰린지 어쩐지 마비가 된 상태에서 무엇을 알겠습니까?

 

그럼 술이 취한 상태에서 남에게 시비를 건다거나 피해를 입힌다거나 그러던가요?” “다행스럽게 아직 그런 것은 없어요.”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조용히 술을 드시면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리고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애기 아빠인데 기사님께서 거두셔야지 누가 거두겠습니까?”

    

가을이 찾아오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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