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지락 거리기

최고의 사치

큰가방 2017. 10. 7. 16:47


최고의 사치

 

이발(理髮) 한지 엊그제 같은데 머리 자를 때가 되었는지 이상하게 자꾸 머리가 가려운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또 답답해서

늘 다니던 단골 이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서 오시게!”하며 주인께서 반갑게 맞는다. “그동안 잘 계셨어요?”

 

나야 항시 잘 있제~! 그란디 자네는 더와서 우추고 살았는가?” “아침에는 그래도 괜찮은데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하면

선풍기를 틀다가 정 무덥고 그러면 한 20분 정도 에어컨을 틀면서 선풍기를 같이 틀면 한 2~3시간 정도는 괜찮던데요.”

 

그라문 전기세가 만니 안 나오든가?” “하루에 약 20분 정도씩 세 번 정도 에어컨을 사용하는데 나오면 얼마나 나오겠어요?”하고

TV를 보니 국수에 대한 요리(料理)를 방송을 하고 있었다. “먼저 양파, 당근, 호박, 여기서 호박은 돼지호박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버섯은 채를 썰어 놓습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채 썰어놓은 야채를 함께 넣고 볶습니다. 볶을 때는 후추를 약간 뿌리고

볶는 것이 더 맛있겠지요?”하는데 이발관 주인께서 유심히 쳐다보더니 자네도 국수 좋아한가?”하고 묻는다.

 

저는 면()은 대부분 좋아해요.” “그라문 요리는 할지 안가?” “그건 잘 못해요. 그런데 형님은 좋아하세요?” “나도 자네 같이

면으로 만든 음식은 아주 좋아한디 우리 집사람은 잘 안 해주드란 마시!”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 불 옆에서 음식 조리하기가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래서 형수님께서 잘 안 해주시겠지요.” “그래서 나도 태래비에 나오는 제자(弟子)들처럼 요리하는 것을 배와서

내가 직접 해 묵으문 으짜까? 그런 생각도 들드란 마시~” “그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네요.” “그란디 자네는 은제

 

국수를 젤로 맛있게 묵어 봤는가?”하고 묻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아스라이 머나먼 기억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힘들게 살았던 1960년대, 내가 초등학교 5~6학년 시절의 어느 여름날, ‘~~~! ! !~ ! !~’하고 달리던

 

증기기관차가 보성역(寶城驛)에 정차하면서 시뻘건 불덩어리 같은 타다 남은 석탄(石炭)을 쏟아버리고 새 연료를 가득 채워

순천역을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고 나면, 열차가 쏟아버린 석탄재에서 아직 타다 남은 것을 골라내어, 기계에 넣고 갈아, 흙과 섞은 다음,

 

틀에 붓고, 커다란 메로 힘차게! !’내리쳐 찍어낸 것이 재건탄(再建炭)이라는 연탄이었는데, 그 시절 연탄(煉炭)은 가격이 비싸

부잣집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연료였지만 재건탄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서 일반 서민들이 주로 찾았는데, 어느 여름날 어머니께서

 

그걸 몇 장 사오시더니 한쪽 구석에 쳐 박아둔 화덕을 꺼내 불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탄에 옮겨 붙자 악아!”하며 나를 부르시더니

양철로 만든 양동이를 주시며 쩌그 아래 가서 씨연한 물잔 질러 갖고 오니라 째깐 있다가 맛있는 것 해 주꺼인께 알았지야?”해서

 

나는 아랫집 우물로 향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물을 길러 집으로 돌아가자 어머니께서는 국수를 삶아 내가 양동이로 길러간 시원한 물에

사카린과 소금을 풀어 간을 맞춘 다음 그릇에 부어 말아주셨는데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아마도 내가 국수를 먹어본 중 가장

 

맛있는 요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TV나 냉장고, 세탁기는 물론 선풍기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었고, 우리나라 전 국민이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먹는다는 라면도 아직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1960년대, 부채 하나만 있으면 여름을 넘길 수 있었던 그 시절,

 

시원한 국수 한 그릇은 여름에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사치가 아니었을까?


가을이 머물러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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