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지락 거리기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

큰가방 2017. 10. 14. 16:32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

 

TV를 켜자 일제(日帝)시대(時代) ()노예(奴隸)로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서 아베 정권은 금년에도 사과는커녕

아무런 언급도 없으면서 야스쿠니 신사에는참석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공물을 보냈다.”는 소식과전남의 어느 도서지역에서도

 

일제 때 징용(徵用)으로 제주도로 끌려간 주민들이 갖은 고초를 악착 같이 이겨내고 드디어 해방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려고 배를 탔으나

불이 나는 바람에 그 배를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이 수장(水葬) 되었으나 아직까지도 정부에서는 일본이 아니고 제주도로 끌려갔다는

 

이유로 진상조사나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그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우리나라가 해방 된지 벌써

70년이 넘었지만 일제가 저질러 놓은 모든 것을 청산하려면 아직도 멀었다.’라는 생각을 해 보면서 몇 년 전 내가 집배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한 할머니의 이야기가 생각나기 시작하였다. 전남 보성 회천면 화죽리 마을 전체가 10여 호()도 채 되지 않은 조그만 마을 가운데 집에

여느 때처럼 우편수취함에 우편물을 넣으려는 순간 열려있는 대문 사이로 할머니께서 아제 거그 편지통에는 지금 멋을 너쓰까?”하고 물으셨다.

 

우편물이 왔네요.” “머시왔다고?”그래서 큰 소리로 우편물이 왔어요!” “그래~! 그라문 그거시 으디서 왔으까?”

일제 강점기 피해자 단체에서 왔네요.” “그래~! 그라문 머시라고 왔는가 잔 갈쳐주고 가씨요! 아제가 안 갈쳐주문 또 따른 사람한테

 

물어보로 가야된께!”그래서 우편물을 개봉하여 할머니! 김영초씨라고 아시겠어요?”하고 묻자 깜짝 놀란 얼굴로 그 사람은 우리 영감인디

으째 물어 봐?” “일제 강점기 때 징용으로 끌려 가셨나요?” “일제 때 끌려갔다가 왔는디 끌려가기 전에는 그라고 야물고 건강한 사람이

 

거그를 갖다 온 뒤부터는 으디가 그라고 아픈고 자꼬 아퍼싸!” “그러문 병원에는 가 보셨어요?” “그 시절에 병원이 으디가 있어서 가껏이요?

그랑께 이것저것 잔 쓰다가 으짜다가 그냥 죽었어!” “병원에를 못 가셨으면 무슨 병으로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때는 요새 같이 뻐스나 택시도 제대로 읍든 시절이어서 병원에를 갈라문 걸어서나 읍()으로 가야 된디 은제 여그서 거그까지 걸어 가껏이요?

그라고 또 가도 병원이나 제대로 있는지 읍는지도 모른디 거그만 간다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도 아니고, 그랑게 천상 아프고

 

그라문 집이서 드러 눴다가 누가 멋이 좋다 그라문 단방약(單方藥) 잔 맨들어서 자시라고 주문, 눈 꿈벅꿈벅해 감서 그것을

마시고 하다가 죽어불데!”하며 눈가에 이슬이 촉촉하게 맺힌다. “그러면 자녀분은 몇이나 두셨어요?” “영감이 일찌거니 갔는디 애기나 몇이 두것소?

 

딸 한나 있는디 지금 쩌그 웅치(熊峙)서 살고 있어!” “편지 내용이 돌아가신 영감님 때문에 보상금이 나온다고 하네요.”

그래라? 그라문 을마나 나온다 그라요?” “내용을 보면 천 오백만원 정도 나온다고 하네요.” “그라문 그돈을 탈라문 으두로 가야 쓴다요?”

 

이 편지하고 주민등록증과 통장을 가지고 보성군청으로 가시면 될 것 같네요.” “그라문 혼자가야 쓰까?” “할머니 혼자 가시려면 힘드니까

웅치에 살고있는 따님을 불러서 같이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하였더니 아무리 돈을 마니 주문 멋하꺼시오?

 

그래도 사람 목숨 안 죽는 것이 중하제! 징헌놈들이 생목숨 가지가 놓고 인자사 돈 째깐 찌클어주문 원통하게 죽은 사람이 살아 난다 그랍디여?”하며

서러운 눈물을 흘리시던 할머니께서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가을이 익어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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