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에~말이요!"

큰가방 2005. 9. 10. 23:01
“에~말이요!”


9월의 중순이 가까워지면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지만 한낮은 여전히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언제나 저와 함께하는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행복한 사연이 가득 담긴 우편물을 싣고 우체국 문을 천천히 나서봅니다. 그리고 들판을 가로질러 시골마을 공터에 도착하자 한쪽에는 고추가 또 한쪽에는 참깨 다발이 또 한쪽에는 밭에서 뿌리 채 뽑혀온 콩들이 기다랗게 나란히 누워 초가을의 아직은 따가운 햇볕을 즐기고 있다 저의 오토바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아저씨! 안녕하세요?”


하며 반갑게 인사합니다. “음! 그래! 요즘은 비가 오지 않으니까 좋지?” “예! 그런 것 같아요! 요즘처럼 햇볕이 반가울 때가 정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 어서 빨리 햇볕을 많이 쐬어 비가 많이 오기 전에 몸을 바짝 말려야지! 알았지?” “예! 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하는 기다랗게 누워있는 콩들의 이야기를 듣고 “늘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가을이 역시 좋은 계절이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우편물을 배달하다 문득 바라본 시계 바늘은 어느덧 오후 1시가 넘은 시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어쩐지 배가 고픈 것 같더라니! 우선 점심부터 먹고 나서 나머지 우편물을 배달해야겠다!”하고 제가 늘 점심식사를 하던 전남 보성 회천면 회령리 시장에 있는 식당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식당에서 점심을 부탁하고 잠시 기다리고 앉아있는데  70살이 넘어 보이는 영감님 두 분이 들어오시는데 영감님 한 분은 회령리에 살고 계시는 분인데 한 분은 도시에서 오신 분인 것 같아 보이는 오늘 처음 보는 분이셨습니다. “아주머니! 점심시간이 조금 늦었는데 양탕 되겠습니까?


양탕이 되면 고기 좀 듬뿍 넣어서 두 그릇만 해주세요!”하며 “어서 이리 앉게 정말 오랜만이지? 아이고! 이제는 벌초하기도 정말 힘이 드는구먼! 그런데 왜? 이렇게 친구들에게 핸드폰을 해도 통 전화를 받지 않는 거야? 요즘 시골이 바쁜 때라 그런가?”하시는 도시에서 오신 영감님의 말씀에 “자네도 생각해 보게 요즘이 가장 바쁜 때 아닌가? 옛날 우리가 젊었을 때는 농사라고 해 봐야 가을이면 벼나 베고 나면 무슨 할일이 얼마나 있던가? 그러나 요즘은 안 그래! 지금은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더 바쁘단 말이시!


밭에 가면 우선 고추 따야지! 콩이며 팥이며 거둬들일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거기다 또 콩 뽑아낸 밭에 김장용 쪽파를 심어야 하니까 더 바빠서 전화를 받지 못하는 거야! 그라고 밭에서 일하는 사람이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겠는가? 그렁께 암만 전화를 해고 못 받는 것은 당연하지 안 그런가?” “음! 자네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렇구먼! 그러나 저러나 앞으로는 벌초가 문제일세 그려! 내가 아직은 살아있으니까 우리 조상님 산소에 벌초를 하지만 우리 자식들은 벌초를 할 수나 있을는지! 원!”


“그러게 말일세! 참! 그런데 우리 집 사람에게 전화 좀 해야것네! 집 사람이 집에 가서 밥 한 숟가락 가져온다고 했는디 밭에서 일하다가 자네 따라 식당에 와 버렸으니 밭에서 내가 없어져 부렇다고 얼마나 찾을 것인가?” 하시며 전화기 버튼을 누르시더니 “왜? 이렇게 전화를 안받아? 글쎄!”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는데 “나~아! 화장실 좀 다녀옴세!”하고 도시에서 오신 영감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시는 순간 “에~말이요! 아니 밭에서 일하다 말고 왜? 이라고 식당으로 와 부렇소?


아니 집에 가서 밥 갖고 와서 본께 밭에 사람이 있어야 말이제!”하시며 어느새 나타나신 할머니께서 영감님을 마구 꾸짖으십니다. “그것이 아니고 서울서 사는 우리 친구 안 있는가? 그 사람이 벌초하러 와서 나를 보드니 점심이나 같이 묵자고 자꼬 가자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친구 따라 와부렇네!”하시는 영감님의 말씀에 “뭣이 그래요? 밭에서 일하다 또 술 생각나서 식당에 왔것제! 안 그라요?” “아니라니까 그러네! 진짜 우리 친구가 점심 묵자고 해서 따라 왔단께 그래쌓네!”


“그라기는 뭣이 그래요! 술 생각이 나서 왔것제!”하고 할머니께서 영감님을 나무라는 순간 화장실에 가셨던 영감님께서 나오시더니 할머니에게 “안녕하세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일도 바쁘실 텐데 제가 너무 실례를 범했는지 모르겠네요! 오늘 제가 벌초를 하러 왔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어요! 그래서 점심식사나 같이하자고 식당으로 데리고 왔는데 친구가 집으로 전화를 하더니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하더니 여기까지 찾아오셨군요! 기왕에 여기까지 오셨으니 같이 식사하시게 이리 들어오세요!”


하시는 도시에서 오신 영감님의 말씀에 할머니의 얼굴이 갑자기 홍당무가 되더니 “아니라우! 나는 괜찮한께 많이 천천히 잡수고 나오씨요! 그라고 술을 쪼그만 자시고 오씨요! 잉!”하시더니 쏜살같이 달려가십니다. 멀리 도시에서 조상님 산소에 벌초를 하러 오신 친구를 따라 밭에서 일을 하다 말고 식당으로 따라오신 영감님의 말씀 “아이고! 할망구라고 원! 그래도 여그 식당까지 왔으문 따땃한 밥이나 같이 묵고 가제! 그냥 혼자 저라고 가 불고 싶으까?”하시며 몹시 안타까운 표정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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