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죄송합니다. 할머니!"

큰가방 2010. 5. 8. 19:37

 

"죄송합니다. 할머니!"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겠습니다. 강수량은 20~60mm로 다소 많은 양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며 곳에 따라 천둥 번개를 동반한 강풍이 부는 곳도 있겠으니 피해입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라는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끝나기도 전 갑자기 '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창밖에서는 강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는 우체국에서 오늘 배달할 우편물을 정리하여 시골마을을 향하여 달려가는데 여전히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 추적추적 내리더니

 

어디선가 갑자기 '번쩍!' 불빛이 보이고 나서 잠시 후 '우루루루 쿵! 꽝!'하며 지축이 흔들릴 정도의 천둥 번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비가 내리려면 아무 소리 없이 조용히 내리지 천둥 번개는 왜 달고 다니며 사람을 놀라게 할까?" 생각하며 전남 보성 회천면 영천리 도강마을에 접어들었을 때 시간은 오후 5시가 넘어서고 있었는데 그사이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던 비는 서서히 그치면서 하늘에 밝은 햇빛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는 마을 가운데에서

 

살고 계시는 할머니 댁 마당에 빨간 오토바이를 세우고 적재함에서 현금이 들어있는 등기를 꺼내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문이 '덜컹!' 열리며 "우리 집에 반가운 것 왔어?" 하며 할머니께서 환히 웃는 얼굴로 나를 반기셨다. "오늘은 비가 와서 밭에 일하러 못 나가셨나보네요?" "아이고! 왠 놈의 비가 이라고 자꼬 와싼고 징해서 못 살것네! 그란디 이라고 비가 많이 오고 그라문 아저씨들은 영 성가시것네!" "비가 오지 않을 때 보다는 힘이 훨씬 더 들지만 할머니처럼 저희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니 괜찮아요!"

 

"그란디 오늘 우리 집에 뭣을 갖고 왔어?" "수원에서 이영란 씨가 돈을 보내셨네요! 할머니 신분증 잠시만 보여주시겠어요?" 하였더니 주민등록중을 가지고 나오시며 "이영란이라고? 우리 막내 며느리구만 그라문 내 용돈 보냈으까? 엊저녁에 전화 왔을 때 그런 말이 읍었는디 돈을 보냈네!" "그러면 오늘 밤에 전화하실 때 용돈 잘 받았다. 고맙다. 잘 쓸란다. 하세요! 아시겠지요?" "잉! 알았어!" 하시더니 아주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그란디 아저씨! 부탁 한나 해도 되까?" 하신다.

 

"부탁이요? 무슨 부탁을 하시려고요?" "우리 집 테래비가 아까부터 안 나와 분단께! 그란디 아저씨가 손 좀 봐주고 가문 쓰것는디! 안 되까?" "TV가 안 나온다는 말씀이세요?" "아까 아침나절에는 잘 나왔는디 갑자기 안 나와분단께!" "그럼 전원코드는 확인하셨어요?" "전원코드가 뭣인디?" "전기선(電氣線)이 연결되었냐고요?" "나는 뭣인지 몰라!" "그래요? 그럼 제가 한번 봐 볼게요!" 하고는 TV에 연결되어 있는 안테나선을 확인하고 전원 코드가 이상은 없는지 확인을 하였으나

 

어디가 고장 나서 TV가 나오지 않은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TV 수리하는 법도 배워두었어야 하는데 이제 어떻게 하지? 내가 TV를 수리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 할머니께서 매우 실망하실 텐데! 그렇다고 내부를 열어볼 수도 없고!" 하며 "할머니! 혹시 아까 천둥 번개 치고 있을 때 TV를 켜 놓으셨어요?" "아까 천둥 번개 칠 때 말이여? 그때 소리가 으째 크든지 나는 우리 집이 무너지는 줄 알고 얼렁 태레비를 꺼부렇는디 머시 잘못되얐어?"

 

"제 생각에는 아까 천둥 번개가 칠 때 할머니 TV가 벼락을 맞은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저는 도저히 고칠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하지요? " "그래에~에! 그라문 으째사 쓰까?" " 제가 TV서비스 센터로 전화하였으니 내일쯤 기사님이 오셔서 수리를 해 드릴 겁니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할머니 혼자 적적하시더라도 참으세요. 아시겠지요?" "그라문 할 수 없제 으차껏인여!" "할머니 죄송해요! 제가 이럴 줄 알았으면 TV고치는 기술을 배워두었어야 하는데!" 하며 밖으로 나오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겁기만 하였다.

 

철쭉꽃 뒤쪽에 보이는 산이 제암산 정상입니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제암산 사자봉 능선에는 철쭉꽃이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2010년 5월 8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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