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오토바이
거의 2~3일 만에 한 번씩은 꼭 비가 내리거나 강한 바람이 불거나 우박이 떨어지기도 하고 심지어 서리까지 내리던 짓궂은 날씨로 농민들의 애를 태우던 4월이 지나고 5월로 접어들자마자 밝고. 맑고. 청명한 하늘로 바뀌더니 기온이 섭씨 25도가 훨씬 웃도는 마치 초여름과 같은 날씨가 되면서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길게 이어지는 시골길 도로 옆 여기저기에서는 빨간 하얀 철쭉꽃. 노란 민들레. 하얀 붉은 꽃잔디. 금낭화 등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면서 계절의 여왕 5월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러 가는 길. 전남 보성 회천면 회령리 5일 시장(市場)의 우편물 배달이 끝나고 전일리 내래 마을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에 '공사 중 우회하시오!'라는 안내판에 서있었고 도로 아래쪽 하천의 자갈과 흙을 도로 위에 퍼 올려놓고 둑에는 폭우(暴雨)에 대비한 시멘트 구조물 설치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제부터 시골은 모내기 등 농번기 때라 바쁠 때 인데 이렇게 길을 막아놓고 공사를 하면 경운기나 트랙터 등 농기계를 이용하여
농사짓는 농민들이 통행을 하지 못해 불편이 이만저만 아닐 텐데! 공사를 하려면 좀 더 일찍 시작하여 농민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해보며 봉강리 모원 마을 가는 길을 이용하여 내래 마을로 우회하려고 다시 시장으로 되돌아 나와 모원마을 향하는 길로 접어들었는데 영감님 한 분이 오토바이를 힘들게 끌고 오시더니 나를 보자 환한 얼굴로 빙그레 웃으며 반갑게 손을 흔드셨다. "어르신! 안녕하셨어요? 그런데 왜 오토바이를 끌고 오세요?"
"자네 마침 잘 만났네! 이것이 아침나절에는 잘 타고 댕겼는디 이상하게 점심 묵고 시동을 걸라고 한께 만날 불이 안 일어난단 마시! 으째 불이 안 일어난단가? 그래도 이것이 내 발(足)인디 고장이 나 불문 촌(村)에서 여그저그 걸어 댕길라문 큰 일 아닌가 잉!" 하며 걱정스런 표정이시다. "휘발유는 언제 넣으셨어요?" "지름? 지름은 어저께 내가 연료 탱크에다 한나 채워놨제~에!" "그러셨어요! 그럼 오토바이 열쇠는 어디에 두셨어요?" "키는 열쇠 구녁에 찔러져 갖고 있으꺼이시!"
하셔서 키를 돌리고 시동 버튼을 눌렀으나 아무 반응이 없어 클랙슨을 눌러 보았는데 역시 '빵! 빵!' 소리는 나지 않았다. "제가 보기에 배터리가 방전된 것 같거든요. 혹시 오전에 오토바이를 타고 난 후 시동도 끄지 않고 라이트를 켜 놓은 채 그냥 놔두지 않으셨어요?" "금메! 잘 모르것는디 나는 항상 오토바이 타고나문 시동만 끄고 키는 안 뽑고 그대로 놔 둔께! 그란디 그래서 방전되야서 불이 안 일어나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제 생각에는 시동이 꺼져 버리니까
라이트를 끄지 않아 방전된 것 같아요!" "그라문 으째야 쓴단가? 쩌그 오토바이센타 까지 가야 되까?" "일단 제가 발로 한번 걸어볼게요!" 하고 시동 거는 발판을 발로 힘껏 돌리면서 악세러타를 살짝 돌렸더니 '부르릉!' 하며 시동이 걸리자 지금까지 심각하게 굳어있던 영감님 얼굴이 활짝 펴지셨다. "어르신! 오토바이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기름이 없거나 둘째는 배터리가 방전되거나 셋째는 플러그에 이물질이 끼어있는 경우에 시동이 잘 걸리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오토바이를 타고나면 반드시 키를 빼내세요. 그러면 배터리 방전도 막을 수 있고 혹시 모를 도둑들의 표적이 되지 않으니까요!" "자네 말을 들어본께 참말로 그라네 잉! 그란디 자네는 우추고 그란 것을 잘 알고 있는가?" "어르신도 생각해 보세요. 저는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편지 배달하는 것이 직업인데 만약에 오토바이를 타고가다 들판에서나 갑자기 서 버리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서 매일 오토바이를 제 몸과 같이 점검하다보니 자연스레 알게 되었지요."
갈매기와 함께하는 회천면의 한적한 해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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