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지락 거리기

감자와 쪽파

큰가방 2018. 2. 3. 16:34

감자와 쪽파

 

수도요금과 적십자 회비를 납부하려고 우체국 창구에서 순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내 등을 살며시 건드리는 것 같아

뒤돌아보았더니 잘 아는 후배(後輩)가 활짝 웃고 있었다. “자네 정말 오랜만일세! 그동안 잘 계셨는가?” “저야 잘 있지요.

 

그런데 형님이 정년퇴직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뒤로 한 번도 만나지 못해 궁금했는데 오늘 여기서 만나니 정말 반갑네요.”

그러게 말일세! 그런데 오늘은 여기 무슨 일인가?” “공과금 납부하려고 왔어요. 그런데 형님은 퇴직하고 무엇하고 계세요?”

 

그냥 집에서 지내고 있어.” “그러면 심심하지는 않던가요? 다른 사람들은 돈 벌이도 한다던데요.” “처음 퇴직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별 생각 없이 지내다보니 자꾸 잠이나 자게 되고, 또 아무 것도 하기 싫고, 게을러지려고 해서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매일 운동을 하면서 주 2회 정도 글을 써서 신문사(新聞社)와 출판사(出版社)에 보내고

또 틈이 나면 집에 조그만 텃밭에서 일도 하고 그러다보니 그렇게 심심한 줄은 모르겠던데!” “그러면 다행이네요.

 

형님 친구 한 분은 시간이 가지 않는다며 택시 운전을 하고 있던데요.” “그 친구는 퇴직하고 심심하다며 기원(棋院)에 찾아다니며

바둑도 두고 화투도 쳤던 모양이야, 그런데 내기 바둑하고 화투를 치다보니 돈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니까이래서는 안 되겠다.’

 

택시 운전을 한다고 그러데! 그런데 자네는 요즘 재미가 어떤가?” “농사짓는데 무슨 재미가 있고 그러겠어요? 그래도 작년과 재작년에는

감자와 쪽파 가격이 괜찮았는데 금년에는 감자도 그러고 쪽파도 가격이 워낙 낮게 나오다보니 힘을 못 쓰겠더라고요.”

 

그랬어? 하긴 금년 봄에 워낙 가물다보니 감자 수확이 형편없었다고 그러던데!” “그러니까요.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감자나 쪽파를 그냥 밭에만 심어 놓으면 모든 것이 다 잘 이루어져 수확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어디 그렇습니까?

 

감자는 11월 말이나 12월에 밭에 퇴비를 넣고 로터리를 쳐서 미리 심을 준비를 해 놨다가, 차디찬 겨울 1월 달에 손 호호 불며

종자(種子)를 파종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종자만 파종했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중간에 거름 넣어야지,

 

싹 올라오면 숨구멍 뚫어야지, 가물고 그러면 물 줘야지, 어디 할 일이 한 두 가지입니까?” “그러게 말일세!”

그런데 금년에는 기온도 그렇지만 워낙 또 날이 가물다보니 수확량이 형편없어 수입이 별로 없었는데 가을에 쪽파 가격도 엉망이어서

 

이래도 정말 농사를 지어야하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밭에 감자나 쪽파를 심지 않으면 무엇을 심을 것인가?”

그러니까요. 마땅한 대체 작물도 없는 상황에서 감자나 쪽파 파종을 안 할 수도 없으니 정말 난감하더라고요.”

 

언젠가 TV에서 인기 연예인 이경규 씨가 한우(韓牛) 농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는데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원래 저의 꿈이 시골에서

동물 키우는 농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이든 맡겨만 주시면 잘 할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다.’하고 큰 소리를 치더니

 

막상 소의 변()을 치워 밭에 넣는 일을 몇 번하고 나더니 숨을 헐떡이면서시골에서 농장하는 것이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아무 생각 없이 에이!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 또는 농장이나 하지! 하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무리 힘이 들고 농산물 가격이 싸더라도 내년이 있으니 또 힘을 내서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전남 보성읍 구몽산에서 바라 본 봉산리 설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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