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지락 거리기

슬레이트의 추억

큰가방 2022. 6. 12. 16:04

슬레이트의 추억

 

언제부턴가 소리 없이 우리 곁을 찾아온 봄이 산과 들에 초록과 연두색 물감을 부지런히 칠하다가 힘이 들었는지 잠시 허리를

쭉 펴고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니, ‘안 되겠다!’ 싶었는지 지나가는 새들을 모두 불러 모아 아름답고 멋진 합창을 하게 하면서

 

오가는 길손에게는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배 두 분과 시골길을 걷고 있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외딴집에서 하얀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이 지붕을 덮고 있는 슬레이트 걷어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형님 저 집은 사람도 살고 있지 않은데

 

슬레이트를 걷어내고 있네요.”하였더니 사람은 살지 않아도 누군가 저걸걷어내 달라!’는 신청을 했으니 걷어내고 있겠지

그렇지 않으면 저것도 남의 사유재산인데 함부로 걷어낼 수 있겠는가?” “그렇긴 하네요. 그런데 슬레이트가 정말 사람에게 위험할까요?”

 

슬레이트에 석면(石綿)이라는 물질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게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에서 지정한 1군 발암물질이라고 그러데,

그래서 호흡을 통해 그 가루를 마시면 20년에서 40년의 잠복기를 거쳐 폐암이나 석면폐(석면 가루를 흡입하여 발생하는 진폐증의 일종)

 

또는 늑막이나 흉막에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어서 굉장히 위험하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옛날 슬레이트가 처음 나왔을 때는

완전히 각광을 받지 않았나요?” “그랬지! 그 시절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집을 지으려면 지붕을 덮을 만한 마땅한 자재가 없었기 때문에

 

기와지붕 아니면 초가지붕인데 1970년대 어느 날 슬레이트라는 자재가 생산되면서 집을 짓는데 획기적인 역할을 했는데,

그 시절에는 집 짓는데 지붕으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고기 구워 먹는데도 사용을 많이 했거든.”하자 옆의 선배께서

 

우리 숙모님이 돌아가신지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 시절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장례식장에서 초상을 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손님들을 대접하였기 때문에 작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후배의 고기 집에 전화를 해서

 

돼지 백 근 짜리 두 마리만 보내주소!’했더니 형님! 요즘에는 고기 그렇게 많이 필요 없어요.’하더라고 그래서 사촌형제들이

많아 손님들도 많을 테니 걱정 말고 가져다주게!’해서 드럼통 세 개에 연탄불을 피우고 거기에 슬레이트를 걸친 다음

 

돼지비계로 표면을 잘 문질러 기름기가 배게 한 다음 고기를 구웠는데 그날 오신 손님들이 모두들 좋아하다 보니 고기 2백 근이

삽시간에 동이 나더라고.” “그러면 추가로 더 구입하셨겠네요.” “물론 그랬지! 그래서 추가로 또 백 근을 더 주문해서

 

사용했는데 고기를 구워먹는 데만 사용하는 게 아니고 손님들 식사하려면 국물도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많이 사용되었는데

나중에 고기 집 후배의 말이상갓집에서 이렇게 고기를 많이 사용하기는 처음이다!’하더라고 그리고 그 시절에는 등산을 가면

 

불을 피워 밥을 해 먹는 것이 큰 낭만이었기 때문에 슬레이트를 네모지게 잘라 가지고 다니면서 석유버너 위에 올려놓고 고기

구워먹는 것이 큰 유행이 되기도 했거든.” “그러면 사용한 조각은 되가져왔을까요?” “그걸 누가 되가지고 왔겠는가?

 

그냥 한 번 쓰면 버리는 거지.” “그러면 산에도 그것 조각으로 오염이 심했겠네요.” “그런데 그 시절에는 그게 발암 물질이고

환경에 심각한 오염을 일으킬 줄은 모르고 버리면 그냥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으니 그렇게 한 거지,

 

특히 슬레이트 위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는 것은 오늘날에는 큰일 날 일 아닌가?” “물론 그러겠지요. 그런데 어찌되었건

슬레이트가 우리에게 나쁜 점도 많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어 주었네요.”

 


지난 2022년 5월 28일 한라산 윗세오름에서 영실쪽으로 하산하면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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