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벌 소동

큰가방 2012. 10. 20. 17:48

벌 소동

 

 

전남 보성 회천면 서동마을 세 번째 집에 전화요금을 배달하려고 마당으로 들어서자 할머니께서 기다란 막대기로 참깨다발을 두들기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반기신다.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어디 다녀오셨어요? 요즘 계속 문이 잠겨있던데요.” “노인들 갈 데가 으디 있겠어? 천상 아들집이나 가제!”

 

 

“아드님 댁에 가셨으면 여름이나 지나고 오시지 그새 내려오셨어요?”

“아이고! 서울서 쪼깐 있을랑께 안 되것드만.아들하고 며느리는 쪼깐 더 있다 가라고 그래싼디 날이 더운께 하루 종일 방에다 씨연한 바람 나오는 에어콩인가 뭣인가를 틀어놓고 있는디 머리가 아퍼싼께 못 있것드란께!”

 

“그러면 집에 오니까 어떠세요?” “세상에 내 집 같이 좋은 디가 또 있간디! 집이서는 이라고 일도하고 그랑께 시간 간지도 몰르고 을마나 좋아!”

 

“이번 달 전화요금 나왔네요.” 하며 고지서를 건네 드리자. “을마 나왔어?” “6천 2백 원 나왔어요.” “내가 서울가니라고 통 안 썻는디 마니도 나왔네!” “전화는 사용하지 않더라도 기본요금이 있으니 그 정도는 나와요.”

 

“그라문 이것은 아들 통장에서 빼간 것이제?” “자동납부 고지서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럼 저 그만 가 볼게요.”

 

 

하고 막 빨간 오토바이 핸들을 돌리는 순간 마을의 확성기에서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면사무소에서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8월은 주민세 납부의 달이니 이달 말까지 한 가정도 빠짐없이 가까운 금융기관에 납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자

 

 

“지금 쩌그서 머시라고 그래싸?” “이번 달은 주민세 납부하는 달이니 잊지 마시고 꼭 납부하시라고요!” “그래~에? 그라문 을마를 내야 된디?” “주민세는 세대 당 똑 같이 4천 4백 원씩 나와요.”

“그라문 우리 집 세금 내는 것은 으따 뒀으까? 아제를 만났응께 아조 줘 불문 쓰것는디!” “우편 수취함 열어보셨어요?”

 

 

“내가 엊그저께 서울서 왔는디 그것을 은제 열어봤것어? 안직 안 열어봤제~에!” “그러면 수취함에 들어 있을 거예요.”하고 별 생각 없이 뚜껑을 여는 순간 갑자기 시커멓게 생긴 조그만 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더니 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다.

 

“아이고! 큰일 났다. 언제부터 저기에 벌들이 살고 있었지?”하며 우선 공격을 피하려고 손에 들고 있는 우편물을 휘저었는데 어느새 벌 한 마리가 손등을 쏘았는지 따끔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본 할머니 사색이 되어 달려오더니

 

“아니 써근노무 벌들이 쏠라문 나를 쏘제 으째 우리 집이 찾아 온 귀한 손님을 쏘아부러 금메~에! 인자 으째야 쓰까?”하며 안절부절 이시다.

 

“할머니 여기는 위험하니 가까이 오지 마세요. 그런데 아직까지 벌들이 살고 있는 줄 모르고 계셨어요?” “내가 그것을 우추고 아꺼여~어? 그것들이 나한테 여그 살라요! 그란 것도 아닌디!”

 

“하긴 벌들이 할머니 허락받고 수취함에 살지는 않았을 테니 그러셨겠네요. 그런데 정말 할머니를 쏘면 어떻게 하려고‘나를 쏘라!’고 하세요?”

 

“그래도 아제를 쏜 것 보다 나를 쏜 것이 더 낫제 으채! 그나저나 인자 우추고 하껏이여? 벌이 쏘문 무지하게 마니 아프든디!” “혹시 할머니 댁에 물파스 있을까요?”

 

“물파스? 몰라! 으디 차져보문 있을란가?” “그러면 우선 방에 들어가셔서 물파스도 찾아보시고 혹시 파리나 모기 잡는 뿌리는 약 있으면 가지고 나오세요.

지금은 벌들이 다시 저 안에 들어가 있어서 괜찮은데 나중에 혹시 할머니께서 뚜껑을 열거나 하면 또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 지금 약을 뿌려야 되거든요.”

 

 

“그래~에! 알았어!”하며 방으로 들어가신 할머니는 한참이 지나도 나오실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할머니! 지금 무엇하고 계세요?”

“카만이 잔 있어 봐! 이노무 물파스가 으디를 가부렇는고 암만 차져도 읍단께!” “그러면 파리약만 찾아보세요.” “포리약? 그것은 여가 있제~에!”하며 가져오셔서

 

 

우선 우편수취함 안쪽에 집중적으로 약을 뿌리고 뚜껑을 열어 벌들이 모두 죽었는지 확인한 다음 주민세 고지서를 꺼냈는데 그 사이 벌에 쏘인 손등이 따끔거리면서 가렵더니 이내 벌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아이고! 그나저나 벌이 쏜데를 으째야 쓰까?” “괜찮아요. 일부러 약이 된다며 돈을 주고 봉침(蜂針)도 맞는다는데 저는 공짜로 맞았잖아요.”

 

하였더니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시더니 “아제! 벌에 쏘인 데는 닥똥을 볼르문 조은께 그것을 볼라 봐! 내가 옛날 처녀 때 벌에 쏘이고 그라문 우리 아부지가 으디서 구해다가 볼라준디 그것을 볼르문 한나도 안프드란께!”

 

“요즘 시골에 닭 기르는 집이 어디 있어요?” “으째 읍어? 쩌그 우겟 집도 키우든디!” “그 집도 이제는 한 마리도 없어요.” “그래~에! 그라고 본께 요새는 별로 안 키운갑네! 그라문 누구 집이서 닥을 키우드라?”

 

 

“사람이 벌에 한번 쏘였다고 해서 죽지는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이것 갖고 가야제~에!”하고 주민세 고지서를 내미신다.

“참! 내 정신 좀 봐라! 이것 때문에 큰 소동이 났는데 빠뜨리다니!”하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은 참을 수가 없었다.

 

"벌에 쏘인데는 닥 똥을 볼라 봐!" 

벌에 쏘인 자국인데 벌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위의 글은 월간 좋은 생각 11월호에 게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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