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두개의 보청기

큰가방 2012. 11. 3. 19:27

 

두 개의 보청기

 

10월말이 다가오면서 들녘에 누렇게 익어 고개 숙인 벼를 수확하느라 콤바인들은 커다란 굉음을 내며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꼬리가 빨개질 대로 빨개진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살며시 내 곁으로 다가오는가 싶더니 고개를 흔들며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전남 보성읍 두슬마을 맨 윗집에 어른의 주먹만 한 크기의 택배 하나를 배달하려고 마당으로 들어서며 “할머니! 저 왔어요! 어디계세요?”하고 부르자 텃밭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계시던 할머니 “나~아! 여깃어!”하며 활짝 웃는 얼굴로 나오신다.

 

“지금 밭에서 무엇하고 계셨어요?” “콩 잔 뽑니라고! 요새는 날마다 째깐씩 추와지고 그란께 저른 것도 걷어내 부러야제 안 그라고 카만히 놔 둔께 보타져 불드란께!”

“그러시겠지요! 그런데 가을걷이는 다 하셨어요?” “가을걷이? 아이고! 내가 지금 나이가 몇 살인디 지금까지 농사짓고 살것어! 인자 농사는 안 지어!” “

 

"잘하셨네요! 그럼 건강은 괜찮으세요?” “다행히 아픈디는 읍는디 귀가 잘 안 들린께 그것이 성가시단께!”

“그러세요! 그런데 이것이 할머니께 왔는데 무엇일까요?”하며 택배를 건네 드리자 “내 보청기가 왔는 갑구만!”하며 활짝 웃으신다.

 

“그럼 지금 보청기를 안 끼우고 말씀하고 계신 거예요?” “으째 보청기를 안 찡기고 있것어? 찡기고 있제!” “그럼 방금 온 보청기는 무엇인데요?”

“이거~엇! 이것은 옛날에 우리 아들이 해준 보청기고 지금 내가 귀에 찡기고 있는 것은 우리 딸이 해준 보청기여!”

 

“그럼 보청기가 두 개라는 말씀이세요?” “첨에 우리 아들이 쩌그 순천으로 가서 돈을 백 5십 만원이나 들여 갖고 해 줬는디 몇 년 쓰고 난께 안 되야 불드란께!”

“아니! 돈을 백 5십 만원씩이나 들인 보청기가 몇 년 썼다고 안 들리면 어떻게 해요?” “그랑께 말이여! 그래 갖고 우리 딸이 이참에는 광주로 데꼬 가드니 돈을 백 7십 만원을 들여 갖고 또 해주드란께!”

“그러면 고장 난 보청기는 버리신 거예요?”

 

“아니! 순천이나 광주나 보청기 회사는 똑 같다고 그라데! 그란께 이것을 고치문 또 쓸 수 있다고 그랑께 고쳐주라고 그랬제~에!”

“그러면 보청기가 두 개가 되었네요?” “으짜다 본께 두 개가 되었는디 애기들 한테 미안해서 죽것드란께!”

“물론 그러셨겠지요. 그런데 자녀분들에게는 미안하기는 해도 귀가 안 들리는 것 보다는 훨씬 낫잖아요.” “그랑께 말이여! 보청기를 마치고 있는디 거그 사람들이‘할머니는 정말 행복하신 분입니다.’그라드란께!”

 

“할머니도 생각해 보세요! 요즘 시골에서 돈 백 7십 만원을 만들려면 쌀 열가마를 내다 팔아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누가 쉽게 보청기를 하겠어요?

그래도 할머니 따님이니까 보청기를 해 주신거지요. 그러니 복도 큰 복을 받으신 것이고 정말 행복하신 분이지요. 안 그래요?”

 

“그 말을 들어본께 내가 참말로 행복한 사람이 맞기는 맞는 갑네! 잉!”하시는 할머니의 얼굴은 흐뭇한 미소가 가득하였다.

 

"보청기가 두 개니 할머니는 정말 행복하신 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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