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우체통

할머니의 사랑

큰가방 2015. 10. 17. 19:09

할머니의 사랑

 

오늘도 우편물을 배달하러 시골마을로 길게 이어지는 좁은 길을 천천히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달려가고 있는데

길 위쪽 한 아름이나 되는 커다란 상수리나무 밑에 수북이 쌓여있는 낙엽 위를 진한 황갈색 알록달록한 것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 저게 무엇일까?” 하고 잠시 오토바이를 세우고 위를 바라보았더니 조그만 다람쥐 한 마리가 먹이를 찾고 있었는지

나를 보고 쏜살같이 숲 속으로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다람쥐야! 네가 도망가지 않아도 내가 너를 잡지 않을 텐데

 

무엇이 무서워 그렇게 쏜살같이 도망가니?” 하며 도망간 쪽을 바라보자 무엇인가 빨갛고 고운 빛깔이 눈에 보여 그래서 자세히 바라보았더니

어느새 진달래꽃이 여기저기 수줍은 붉은색 예쁜 꽃을 피우고는 나를 보고 밝게 미소를 짓는 듯 보였다.

 

평소에는 길옆을 그저 무심코 지나쳤는데 오늘은 다람쥐의 안내로 진달래꽃을 만나게 된 것이다. 보성읍 택촌과 주촌 마을로 이어지는 길,

중간쯤에서 외현 마을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이 길가에 마치 엎드린 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계신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잠시 세우고 곁으로 다가가서 할머니! 어디 편찮으세요?”물었더니 손가락으로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 두 개를 가르치며

아이고! 저것을 째깐 들고 왔드만 허리가 뿌러져 불라고 아프네!”하신다. “ 저게 무엇인데요?” “우리 집 영감이 밭에 일한다

 

그래서 새껏(간식)을 잔 사갖고 온디 첨에는 한나도 안 무겁드만 여그까지 그것을 들고 올랑께 송신 나게 무겁네!”그래서

비닐봉지를 안을 들여다보니 봉지 하나에는 1.8페트병에 담긴 음료수 2, 다른 봉지에는 빵 몇 개, 간장과 식용유 조미료가 들어 있었다.

 

할머니! 그럼 이것을 그냥 마트에서 배달해 달라고 하시지 그랬어요?” “와따 그 째깐한 것을 배달해주라고 하문 쓰간디!

그 사람들도 바쁘껏인디 이것을 배달해주라고 그라문 욕을 을마나 하껏이여! 그래서 기양 내가 들고 왔어!”

 

그럼 제가 이것 집까지 배달해 드릴게요! 그 대신 배달료를 많이 주셔야 하는데요!” “그래? 그라문 배달료 많이 주께! 그란디 을마나 줘야 되까?”

많이는 필요 없고 이만 원만 주세요!” 하였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짝 놀란 목소리로 ~! 이만 원이나 주라고? 아이고! 냅 둬!

 

기양 내가 갖고 갈랑께! 이것 다 폴아도 이만 원도 안 되꺼인디!” “그럼 오늘은 그냥 배달해 드릴 테니까 다음에는 배달료를 많이 주셔야 되요!”

하였더니 그때서야 할머니께서는 빙그레 웃으며 워따~! 안 그래도 이삔 사람이 으째 이라고 이삔 짓거리만 한가 몰것네~하셔서

 

비닐봉지 두 개를 넘겨받아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싣고 외현마을로 향하면서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밭에서 일하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위하여 왕복 3km 나 되는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허리가 부러질 것 같은 아픔을 참아가며 걸어서 간식거리를 사오는

 

할머니의 할아버지를 위한 사랑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일 것이라는 생각을.

"할머니 무엇하고 계세요?" "이~잉! 쭈시 비찌락 잔 매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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