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안

화청지

큰가방 2005. 6. 29. 22:37
화청지


저의 일행은 드디어 화청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디카의 메모리 부족으로 사진촬영을 할 수 없었던 저는 임시방편으로 일회용 카메라 하나 구입하여 사진촬영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중국산 일회용 카메라가 사진이 제대로 나올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나중에 사진을 뽑아보았더니 실내에서 촬영한 사진은 한 장도 나오지 않아 상당히 실망을 해야 했습니다. 김복옥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화청지는 당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누었던 장소로 유명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돌아본 화청지는 그렇게 호화로운 궁전은 아닌 듯 했습니다. 그리고 원래의 궁은 안록산의 난(亂) 때 모두 불타버렸는데 청나라 말엽에 다시 재건이 되었으며 1950년 대 중국 정부의 대규모 복원사업으로 현재의 화청지로 복원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 무르익은 사랑의 나무라고 합니다.


화청지에는 양귀비 조각상이 있었는데 양귀비는 요즘 우리가 말하는 날씬한 미인이 아닌 조금 오동포동한 뚱뚱한 듯한 미인인 것 같았습니다. 그 시절의 미인의 기준은 어떠했는지 알려주는 사례라고 해야 할지 그리고 양귀비의 목욕탕과 용이 살았다는 구룡지 사랑의 나무 장개석 옛 대만 총통이 사용했던 건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고 그 바람에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가이드들이 소형 확성기를 통하여 중국어로 여기저기서 큰소리로 설명하는 바람에 저의 일행은 현장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나중에 버스에서 다시 설명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원래 양귀비는 현종의 아들 수왕의 부인이었으나 현종이 양귀비를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하여 자신의 부인을 삼으려고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 누각 처럼 보이는 곳이 양귀비가 목욕을 한 후에 머리를 말렸던 장소라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양귀비를 여승이 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화로 자신의 아들 수왕은 멀리 있는 나라로 보내버린 후 계획대로 부인을 삼았다고 합니다. 양귀비가 왕의 부인이 되자 그의 가족들은 자유롭게 궁궐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고 그 때문에 양귀비의 가족들은 많은 권세를 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양귀비는 안록산이라는 남자를 알게 되었고 안록산을 자신의 수양아들을 삼았는데 나중에 안록산이 양국충이라는 양귀비의 친척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난을 일으키자 현종은 양국충 일족과 양귀비와 함께 피난을 가다 양국충 일족을 모두 죽이고 양귀비는 결국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후 안록산의 난이 평정이 되자 현종은 오랫동안 양귀비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였다고 하니 당 현종의 양귀비에 대한 사랑이 어떠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 화청지 내부에 있는 옛 궁전의 건물인데 가이드에게 설명을 들었는데 잊어먹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며느리를 자신의 부인으로 삼은 현종! 제가 생각하기에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옛날 중국의 역사를 보면 여자 한 사람을 빼앗기 위하여 전쟁을 일으킨 왕들이 많았다고 하니 자신의 며느리를 자신의 부인으로 삼은 현종을 나무랄 일도 아닌 것 같았고 또 양귀비가 현종의 부인이 되자 그것을 기화로 권력을 휘두른 양귀비와 그의 친척들의 횡포 그리고 자신의 애인이었던 안록산의 난에 의하여 자살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양귀비의 운명이 어쩌면 예나 지금이나 권력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휘두르면 결국은 자신이 망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남긴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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