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안

진시황 능으로 가는 길

큰가방 2005. 7. 1. 22:15
진시황 능으로 가는 길


점심식사를 마친 저의 일행은 다음 목적지인 진시황의 능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진시황의 능으로 향하여 달리는 버스는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속도를 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김복옥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진시황은 원래 중국의 7개 강국 중 진나라의 왕이었는데 진시황이 6개 강국을 멸망시켜 중국을 하나의 나라로 만들었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천하가 통일되자 진의 왕은 시황제 라는 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시황제 란 태황의 태를 떼어내고 황을 사용하고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오제에서 제를 택하여 황제로 칭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삼황오제란 중국 고대전설에 나오는 복희 씨와 여와 씨 그리소 신농 씨 세사람의 지도자를 말한다고 하는데 이들은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친 현명한 왕이었다고 합니다.

 


*사진 뒷쪽으로 가운데 길이 진시황의 능으로 올라가는 길인데 수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오제는 황제 전욱 곡 요 순이라는 다섯 사람의 성군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시황 자신이 3황 5제를 겸비하는 인물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진시황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제일 먼저 단행한 것은 문자의 통일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글자는 은나라에서 사용하던 갑골문자를 기본으로 각 나라마다 문자의 모양이 다 달랐다고 합니다. 그것이 육국(六國)문자로서 지금도 가끔 사막에서 발견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시황이 문자를 통일시키면서 전국은 말이 통하는 하나의 나라가 되었고 우리는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기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돈(貨幣)을 통일시켰다고 합니다. 처음 통일이 되었을 그 당시에는 각 지역마다 사용되던 화폐가 달랐기 때문에 중앙에서 사용하는 화폐는 지방에서 사용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황제에게 알현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군사들이 입장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러다 보니 불편한 점이 많아 하나의 화폐를 사용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도량형을 통일시켰다고 합니다. 홉(合) 되(升) 말(斗) 등의 곡식 양을 환산하는 단위와 보(步) 장(丈) 등 길이의 단위가 전국적으로 통일이 되자 각지에서 조금씩 달라서 현지에서 곡식의 양이라든가 길이를 다시 환산해야 하는 불편이 사라지면서 경제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시황제는 분명히 훌륭한 왕은 틀림없는 것 같으나 또 한편으로는 폭군으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라고 합니다. 황제 자신은 영원히 살아있기를 원하여 불로장생약을 구하러 전국에 사람들을 파견하였으나 결국 불로장생약을 구하는데 실패하였는데 불로장생약을 구하는데 실패한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이 두려워 시황제를 비방하고  도망을 쳐버렸다고 합니다.

 


*군사들이 시커멓게 분장을 하였는데 마치 로봇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에 진노한 시황제는 함양에 있는 유생들을 붙잡아 생매장하였는데 이 사건이 바로 분서갱유 사건이라고 합니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에게도 늘 부담을 주는 세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흉노족인데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북쪽 국경에 만리장성을 쌓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몽염 장군에게 30만의 군사를 주면서 그 임무를 맡게 하였는데 이 공사가 시작되면서 백성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었으며 결국은 나라가 망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합니다.


*군사들의 입장하는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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