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오늘은 빨간 날(?)

큰가방 2004. 1. 25. 14:10

오늘이 대한(大寒)입니다.
옛날 속담에 "소한(小寒) 추위는 꾸어서라도 한다!" 라고 하였는데 소한에는 별 추위도 없
이 그냥 넘어가더니 대한이 다가오자 대한 추위가 소한 추위까지 빌려왔는지 폭풍주의보에
대설(大雪) 주의보까지 내려서 전국을 온통 한파로 꽁꽁 얼려놓았습니다. 어젯밤 내린 눈은
제가 우편물을 배달하러 우체국 문을 나설 무렵에는 양달쪽 도로의 눈은 거의 녹았으나 응
달 쪽 도로에는 아직도 녹지 않아서 빙판 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빙판 길을 시골마을로
향하여 천천히 달리면서 "오늘이 섣달그믐 날이지!" 하는 생각이 문득 저의 머리에 스칩니
다.

 

그러면서 저는 전남 보성군 노동면 광곡리의 우편물 배달이 끝이 나고 용호리를 향하여 달
려가고 있는데 그때까지는 맑았던 하늘이 어디선가 나타난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더니 갑자
기 하얀 눈발이 날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천천히 하나 둘 씩 내리던 눈이 잠시 후에는
막 퍼붓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퍼붓던 눈이 강한 바람을 타고 저의 곁을 스쳐지나가기도 하
고 저의 몸에 부딪쳐서 깨어지기도 하고 땅바닥에 곤두박질치다가 다시 하늘로 치솟기도 하
더니 다시 논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밭고랑 사이로 숨기도 하면서 계속해서 내리더니 그
것도 잠시 내리던 눈은 그치고 저는 용호리 묘동 마을로 들어섭니다.

 

그리고 묘동 마을 첫 번째 집에서 우편 수취함에 우편물을 넣으려는데 주인 할머니께서 이
미 반 조각으로 깨어진 계란 껍질에 무엇인가를 담고 계십니다. 그래서 할머니 곁으로다가
가서 "할머니 날씨도 추운데 무엇하고 계세요?" 하고 물었더니 할머니께서는 빙그레 웃으
시며 "달구새끼 줄라고!" 하시며 계란껍질에 쌀을 채우고 계십니다. "아니 할머니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계란껍질에 쌀을 채워서 닭에게 주시려고요?" 하였더니 "계란껍떡이 아까운
께 이라고 쌀을 채와 갖고 달구새끼를 주문은 계란껍떡까지 다 묵어불드만 그랑께 그래!" 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설을 맞이하여 가정에서 계란을 많이 사용하는데 계란껍질을 그냥 버리자니 아
깝고 해서 할머니께서는 날씨가 추운데도 계란껍질에 쌀을 채워서 닭 모이로 사용하려고 하
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다시 금호리를 향하려 달려갑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또 다시 하얀 눈이 퍼붓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강한 바람과 함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내린 눈은 도로의 바닥에 쌓일 듯이 하다가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다가 논두렁으로 내려앉고 또 다시 도로위로 몰려다니다가
밭고랑 사이로 숨어버리기도 하면서 저의 주위를 어지럽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금호리 영구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는 눈은 그치고 다시 희미한 태양이나마 비
추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금호리 대여마을 마지막 집으로 오토바이를 타
고 들어가자 "아저씨 추운데 고생이 많으시네요!" 하시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씀에 "아직은
괜찮습니다! 그런 대로 견딜 만 하네요!" 하였더니 아주머니께서는 "우리는 따뜻한 방에 있
어도 추운데 밖을 돌아다니시려면 얼마나 춥겠어요?" 하십니다. "이 정도 추위는 보통으로
생각을 해야지요! 안 그러면 어떻게 집배원을 한답니까?" 하였더니 "아저씨 오늘이 빨간 날
인데도 편지배달을 하세요?" 하고 물으십니다.

 

그래서 "아니 빨간 날이라니요?" 하고 제가 다시 물었더니 아주머니께서는 "오늘이 달력에
빨간 글자가 있는 날 아니에요? 그런데 쉬지도 않고 편지배달을 하시나 봐요?" 하시기에
"예! 오늘이 휴일은 맞는데요! 내일이 설날이고 그래서 멀리에서 선물로 보내온 소포나 등
기 같은 우편물은 설 안에 받아보시라고 오늘까지 우편물배달을 하고 있어요!" 하였더니 갑
자기 아주머니께서 저의 오토바이 앞바퀴를 손으로 가르치시더니 "아저씨 오토바이에 고드
름이 주렁주렁하네요!" 하십니다. 그래서 바라본 오토바이의 앞바퀴 흙 받침에는 정말 아주
머니 말씀대로 눈이 녹으면서 튀어 오른 물이 그대로 얼어붙는 바람에 고드름으로 변하여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겁니다. "아! 오늘이 정말 추운 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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