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이야기

IMF 그날 이후

큰가방 2005. 2. 19. 18:19
 

IMF 그 날 이후 

2001.02.21


따사로운 봄날이 계속됨에 따라 버들개지가 눈을 뜨고 양지쪽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들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 합니다. 이제는 봄이 우리는 맞아주는 것 만 같습니다. "계십니까? 계십니까? 아무도 안 계셔요?" 하고 큰소리로 주인을 부르자 "누구여" 하고 영감님께서 대답을 하십니다.


"여기가 정영길 씨 댁이 맞습니까?" 하였더니 순간 영감님의 눈이 반짝 빛이 나는 겁니다. 그리고는 "아니 정영길이 한테 편지가 왔어" 하십니다. "아니요! 서울에서 자동차 세금 고지서가 나왔는데요!" 하였더니 "그러면 다시 반납하소!" 하시며 실망스런 눈빛으로 저를 보십니다. "정영길 씨가 누구 되세요?"


"응 정영길이가 내 큰놈이여 그런디 지난번 아엠픈가 뭔가 통에 사업이 부도가 났어! 그 전에는 그래도 우리 집에 와서 용돈도 주고 그라더니 사업에 부도가 난 뒤에 집에 와서 농사나 짓는다고 한두 달 있드만 안 되것든가 다시 서울로 간다고 나간 뒤에 소식이 없어 그래도 즈그 처자도 있고 그랑께 무슨 소식이라도 있어야 하꺼인디 소식이 있어야제!"


"그러면 정영길 씨 가족은 어떻게 하셨어요?" "응 즈그 처갓집에 지 안사람하고 애기들은 보낸다드만 어쨌는가 소식도 없고 즈그 처갓집에도 연락이 없고 그란디 사람이 궁금해서 살수가 있는가? 혹시 무슨 소식이나 있는가? 했드만 오늘도 무소식이네 그려!" 하시며 실망스런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시는 영감님의 얼굴이 너무나 가여워 보였습니다.


"조금 기다리시면 무슨 좋은 소식이 오겠지요! 너무 걱정 마세요!" "금메 그랬으문 얼마나 좋것는가? 그란디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으니 사람이 답답해서 살수가 있어야제 바쁜디 어서 가보소! 그라고 그것은 그냥 보내 불소 사람도 없는디 받아 놓으문 뭣 하것는가?" 하시며 뒤돌아서는 영감님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어제 TV에서 실업자가 백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찌 보면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직장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기 때문에 말입니다. 부디 경기가 좋아져서 그 영감님의 아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오늘이라도 "아버님" 하고 대문 앞에 들어설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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