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이야기

잃어버린 예금통장

큰가방 2005. 2. 19. 18:16
 

잃어버린 예금통장         

2001.02.13


당직을 하고 나면 어쩐지 몸이 피곤합니다. 아침 5시 30분부터 아침 일찍 우체국에 가져온 신문 접수를 모두 끝내고 오늘 보성우체국에서 배달할 신문과 관내 우체국으로 보낼 우편물 발송 준비가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사 주변 청소를 하려고 빗자루를 들고 우체국 청사 앞으로 나가봅니다. "이 사람들이 뭘 먹었으면 똑 바로 버리지 아무데나 버린단 말이야!" 하면서 청사 주변을 빗자루로 쓸어나갑니다.


그런데 정문 앞 사타 옆에 어떤 할머니 한 분께서 웅크리고 앉아 계십니다. "할머니! 왜 여기에 이러고 계셔요? 날씨도 추운데!" 하며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청소하러 오셨는갑다! 아저씨 우체국 직원이 맞아요?" "예! 그런데 왜 그러세요?" "아니 다름이 아니고 내가 정신을 놔 버려서 우체국 통장을 잊어버렸단 말이요! 그란디 그것을 우리 아들이 가져간 것 같은데 으짜문 쓰것소?" 하십니다.


그래서 우선 “할머니 날씨가 추우니까 이리 좀 들어오세요!” 하면서 당직실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자판기에서 차를 한잔 뽑아 권해 드린 후 "할머니! 웬일로 이렇게 아침 일찍 오셨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께서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할머니의 말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할머니께서 젊었을 때 할아버지께서 아무런 유산도 없이 6남매를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야말로 악착 같이 자녀들을 키우고 결혼까지 시키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식들이 가끔 용돈도 드리고 해서 그럭저럭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셋째 아들이 실직을 하고 나서 할머니께 돈을 이야기하고 해서 할머니 자신도 상당히 괴로웠다고 합니다. 막내아들을 결혼시키고 난 뒤 신혼여행도 보내지 못하고 가슴이 아픈데 엊그제 또 셋째아들이 집에 와서 돈을 이야기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이십만 원 정도 줄까 어쩔까 하다가 통장에 돈도 별로 없고 해서 그냥 두었는데 어제 오후에 셋째아들이 떠난 후에 보니 통장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할머니 생각에는 분명히 셋째 아들 소행 같은데 돈을 찾아서 써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지난밤을 한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날이 밝자마자 우체국으로 오셨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체국 창구는 문이 잠겨있어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사타 옆에서 추위도 불구하고 기다리셨다는 겁니다.


"할머니 그러면 후문으로 들어오시지 그랬어요?" 하는 저의 말에 그곳은 우체국이 아닌 줄 알았다는 겁니다. "할머니! 혹시 통장을 다른 곳에 두시고 못 찾으신 것 아닙니까?" 하는 저의 물음에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무리 통장을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는데 어쩌면 좋겠느냐는 겁니다. 그리고 그 동안 누가 통장에서 돈을 빼내갔으면 그 사람을 잡을 수 없겠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할머니께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할머니 통장의 돈은 누가 함부로 빼내갈 수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통장에 돈을 찾으려면 통장과 도장 그리고 비밀번호를 알아야 하는데 도장은 할머니가 갖고 계시고 비밀번호도 그 사람은 모르니까 돈은 빼내갈 수가 없어요! 혹시 누가 돈을 빼 갔으면 제가 변상해 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집에 다시 가셔서 식사하시고 9시 쯤 다시 오셔서 통장을 다시 하나 만드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식사하시고 오세요!"


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참말로 그래요? 참! 고맙소! 고맙소!" 하시며 할머니 댁으로 돌아가시는 겁니다. 세상이 너무 맑다보니 부모와 자식간의 사이도 이렇게 돈으로 갈라지는 건가를 생각하니 마음속으로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겁니다. 부디 그 할머니께서 통장을 다시 찾으셔서 자식을 의심하는 마음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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