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한 이야기

어머니와 동지 팥죽

큰가방 2014. 12. 27. 17:52

어머니와 동지팥죽

 

오늘은 휴일이어서 평소보다 조금 늦게 아침 식사를 하려고 주방으로 들어가니 집사람이 큰 냄비에 무엇인가 보글보글 끓이고 있었다.

식사준비가 끝났으면 됐지 또 무슨 음식을 만들고 있는 거야?”하자 집사람은 알 듯 말 듯 미소를 지으며 이따 가르쳐 주께!”

 

가르쳐 주려면 지금 가르쳐주지 이따가는 무슨 이따 가여! 사람 궁금하게 시리!”하고 투덜거리며 여느 때처럼 아침식사를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데 집 사람은 주방에서 음식을 계속해서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점심 때가되자

 

식사하세요!”하는 부름에 주방으로 들어갔더니 빨간 동지 팥죽을 끓여 상에 내 놓았다. “아니 동지 날 지난지가 언젠데 동지 팥죽이야?”

사실은 그제 밤 꿈에 시어머니를 만났어! 그런데 꼭 살아계셨을 때처럼 어머니가 거처하시던 큰방 아랫목에 앉아 평소에

 

즐겨 입던 옷을 깨끗하게 입고 다정스레 미소를 지으며큰 어메야! 오늘이 동짓날인데 퐅죽을 끼래서 큰 아베랑 애기들이랑 믹이제 그랬냐!

그라고 나도 묵고 싶은디 혹시 집이 퐅이 다 떨어져 불고 읍냐?”하시는 바람에 꿈에서 깨었는데 꼭 현실에서 시어머니가

 

팥죽을 드시고 싶은 것처럼 생각되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어 부랴부랴 쌀을 담그고 시장에서 팥을 사와 동지 팥죽을 끓였다고 한다.

그리고 생전에 어머니가 거처하시던 큰방에 한 그릇 가득 상에 놓아드리며 어머니! 많이 드세요! 제가 어머니께서 동지 팥죽을 좋아하시는 줄

 

깜박 잊고 올해가 애기 동지라 하기에 끓이지 않았어요! 정말 죄송합니다!”하였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 그런 일이 있었구나!”하며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나기 시작하였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귀하던 1960년 대 초등학교 시절. 바람이 몹시 사납게 불어대던

 

어느 추운 겨울날 나는 보성읍 5일 시장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허름한 판잣집에서 팥죽 파는 집을 찾아갔는데

할머니께서 생전 처음 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빨간 죽에 팥고물이 잔뜩 묻은 찰떡을 손으로 잘게 찢어 넣더니 국자로 휘 휘 저어

 

큰 그릇으로 한 그릇을 떠주며 아가야! 많이 먹어라! 참 예쁘게 생겼구나!”하며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너무나 가난했던 그 시절 팥죽이 무엇인줄도 모르던 내가 난생 처음 먹어보던 순간 그때의 그 맛은 이 세상에서 무엇하고 바꿀 수 없는

 

정말 혀까지도 삼키고 싶을 만큼 맛있는 팥죽이었다고 기억하지만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갖가지 먹을거리가 많아진

요즘 팥죽은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고 하는 그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은 음식인데 어머니께서는 살아계셨을 때 팥죽을 무척 좋아하여 가끔 끓여드리면

 

아이고! 참말로 맛있게 잘 묵었다!” 하시며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는데 돌아가신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팥죽이 드시고 싶어

 

집으로 찾아오신 것 같았다. 어머니는 이미 돌아 가셨으나 아직도 늘 내 곁에 계신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어린 시절 큰자식이 맛있게 먹던 팥죽을 기억하시고 아직도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계신 것은 아니었는지.

 

큰 자식은 아직도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팥죽을 늦게 끓여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내년부터는 정성을 다해 맛있는 동지팥죽을 끓여드리겠습니다, 부디 맛있게 드십시오! 어머니!”

 

동짓날 하루 해는 짧기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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